극문학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희랍 비극은 아테나이의 디오뉘소스 축제에 기원을 두고 있다. 주신(酒神) 디오뉘소스를 찬미하며 한해의 풍작과 다산을 기원하는 이 축제는 기원전 6세기경 국가적 행사로 자리 잡았고, 최고 집행관과 보좌관 둘, 감독관 열 명의 철저한 주관 아래 총 닷새간 펼쳐졌다. 이 화려한 축제의 꽃이라 불린 최고 인기 프로그램은 셋째 날부터 벌어진 비극 경연 대회였다. 세 명의 시인이 각각 비극 세 편과 사튀로스극(디오뉘소스를 따르는 반인반수 사튀로스를 흉내 내는 짧고 우스꽝스러운 희극) 한 편을 하루씩 선보였는데, 우승자는 개선장군만큼 큰 명예를 얻었다. 오늘날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문학상들에 비할 만한 이 대회를 통해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등 희랍의 삼대 비극 작가가 모두 등단했다.

한데 이 경연 대회에서 시인들이 서로 겨룬 것이 ‘염소 노래’이고, 소포클레스가 ‘염소 노래’ 경연 대회를 통해 등단한 것이라면?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아주 엉뚱한 소리는 아니다. 일단 비극이라는 말이 가진 뜻밖의 어원을 살펴보자. 비극은 희랍어로 tragodia인데, ‘염소’를 뜻하는 tragos와 ‘노래’를 뜻하는 oide가 더해진 합성어이다. 어째서 염소의 노래가 비극이 되었을까? 염소의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구슬퍼서일까? 사실 디오뉘소스를 상징하는 동물이 바로 염소이다. 디오뉘소스는 몇 번인가 염소로 변해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다. 이러한 연관성을 근거로, 디오뉘소스를 찬미하는 축제이니만큼 대회 초반에 ‘염소’를 상품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초기 비극에서 하반신이 염소인 사튀로스들이 등장해 극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비극이 상연될 때 염소를 제물 삼아 디오뉘소스에게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등 다양한 설이 제기되고 있다.

어쨌거나 이 경연 대회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누가 뭐래도 소포클레스일 것이다. 그는 비극을 가르쳐 준 스승 아이스퀼로스를 꺾고 스물여덟 살에 첫 우승을 거둔 이후 동시대 작가들 중 가장 많은 우승을 거머쥐었으며(아이스퀼로스가 열세 번, 후배 에우리피데스가 다섯 번 우승한 반면, 소포클레스는 스물네 번이나 우승했다.) 가장 오래 왕성하게 활동했다. 처음에는 배우로 활동했으며, 이후에도 단순히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배우들의 연기, 노래, 안무를 지도하고 직접 무대를 연출하는 등 멀티플레이어의 면모를 발휘했다. 부유한 집안의 잘 배운 도련님이자 수려한 외모와 멋진 노래 솜씨로 축제 때마다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을 법한 고대 희랍의 아이돌 소포클레스. 행여나 그의 우승 전적이 외모나 배경에 혹한 심사위원들의 편파 판정으로 인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완벽한 비극의 전범”이라 칭송했던 소포클레스의 위대한 작품들과 직접 만나 보라.

[민음사 편집부 우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