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사랑받고 싶고 누구보다도 튀고 싶지만 특별할 것 하나 없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춘기 소녀 페니.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마주치는 특별한 손님들. 그들은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 『주홍글씨』의 헤스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셰를 비롯해 JD 샐린저의 프래니, 마담 보바리, 라푼젤 등이다. 까칠하고 욕구 불만으로 폭발할 것 같은 페니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점차 엄마와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과 대면할 준비를 하게 된다. 아일린 페이버릿의 소설 『여주인공들』에 등장하는 주요 여주인공들의 출신 성분과 면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우슈네흐 가 아들들의 운명』 ―아일랜드 문학의 모체가 되는 얼스터 전설

아일랜드의 전설적인 미녀 데어드르는 코노르 왕이 찍은 여자지만 우슈네흐의 아들 니샤와 사랑에 빠져 스코틀랜드로 도망간다. 그러나 코노르 왕의 꾐에 빠져 아일랜드로 돌아온 니샤는 살해당하고, 데어드르는 결국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목숨을 끊는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이 전설은 『여주인공들』의 주인공들과 독자를 모두 의문에 휩싸이게 한다. 페니네 민박집으로 도망 나온 데어드르가 배신이네 뭐네 하니까 페니의 엄마 앤마리는 그녀가 IRA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데어드르를 따라온 코노르 왕은 『여주인공들』의 진짜 여주인공 페니를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 『폭풍의 언덕』 ―예리한 감수성과 시적인 강렬함이 돋보이는 영문학 3대 비극의 하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1847)은 언쇼 가문에 들어온 고아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오만한 캐서린은 야성적인 히스클리프를 무시하면서도 그에게 열정적으로 빠져 들지만, 결국 이웃 지주의 아들인 에드거 린튼과 결혼을 결심한다. 히스클리프는 상처받고 떠나지만 언쇼와 린튼 두 가문 모두에 앙심을 품고 다시 돌아와 에드거의 동생과 결혼하여 복수를 꾸민다. 『여주인공들』에서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린튼 사이에서 열병을 앓을 때 당시 캐서린 또래였던 앤마리를 찾아온다. “린튼에 대한 나의 사랑은 숲 속의 나뭇잎과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 변할 거예요. 히스클리프에 대한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을 땅속의 바위와 같아요!” 한편 캐서린을 따라온 히스클리프는 이 소설의 플롯의 비밀을 푸는 키워드다.

★ 『마담 보바리』 ―낭만주의로부터 사실주의 시대를 선포한 ‘보바리즘’

『마담 보바리』(1857)에서 플로베르는 보바리의 몽상을 통해 낭만주의의 과도한 꾸밈과 감상주의에 일침을 가했으나 “공중도덕 및 종교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법정에 서는 해프닝을 겪는다. 소설 속 낭만적 사랑에 심취한 엠마 보바리는 남편을 외면하고 로돌프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 버림받는다. 낙심한 엠마 보바리는 페니네 민박집에 찾아와 로돌프가 자기의 우상이라는 둥 자기는 로돌프의 노예라는 둥 헛소리를 한다. ‘보바리즘’은 여주인공 엠마 보바리처럼 현실을 외면하고 몽상 속에서 살려는 경향을 가리키는 ‘과대망상’을 뜻하게 된다. 한편 소파 뒤에 숨어 엿듣던 페니가 징징거리는 보바리를 참다못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로돌프는 돌아오지 않아요, 그는 당신을 이용했을 뿐이에욧!” 이 사건으로 페니는 난생처음 엄마에게 따귀를 맞는다.

★ 『위대한 개츠비』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을 그린 현대 미국 문학의 걸작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1925)의 주인공인 가난한 개츠비는 상류사회의 옛 연인 데이지를 잊지 못하고 금주법 시대에 술 밀매로 돈을 번 후 그녀의 곁을 맴돈다. 그런데 유부녀가 된 데이지는 남편의 정부를 실수로 차에 치여 죽게 한다. 바로 이 시점에서 데이지는 고단한 심신을 이끌고 페니네 민박집에 와서 오랜 시간 목욕을 했다. 결국 개츠비는 데이지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열정으로 교통사고의 책임을 지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개츠비적(Gatsbyesque)’이라는 말은 이처럼 비극적인 삶이지만 ‘낭만적 환상’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려는 경향을 가리키게 된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0세기 최고 히트 소설의 하나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의 전설적인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전쟁 통에 페니네 민박집을 찾아온다. 부유한 농장주로 태어났으나 남북전쟁으로 남부의 전통이고 뭐고 죄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스칼렛과 연약한 이상주의자 애슐리와의 사랑, 그리고 현실주의적인 레트 버틀러와의 애증을 그리고 있다. 『여주인공들』에서 아름답지만 강인한 스칼렛은 처음으로 ‘생존’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 페니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과거의 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현실에 적응 못하는 인물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47)에서 블랑슈는 미국 남부의 몰락한 지주의 딸로 남편이 자살하자 방탕한 생활을 하다 동네에서 쫓겨난다. 블랑슈는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무덤’ 선으로 갈아탄 후 ‘극락’ 역에서 내려 동생 스텔라를 찾아오지만, 결국 동생의 난폭한 남편 스탠리에게 겁탈당하고 파멸하여 정신병원에 갇힌다. 블랑슈가 페니의 민박집에 찾아온 건 정신병원에 갇히기 전 극도의 신경쇠약 증세를 보일 때다. 페니는 늘 술에 절어 있는 블랑슈가 여주인공이라는 걸 나중에 학교에서 희곡 시간에 배우게 된다. 블랑슈는 예민하고 교육받은 여자지만 과거의 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을 대변한다.

[민음사 편집부 양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