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 섹스턴(Anne Sexton, 1928–1974)
20세기 미국 시문학사에서 실비아 플라스, 에이드리언 리치 등과 더불어 여성의 이야기를 대범하게 그린 작가.
매사추세츠 주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엄격한 훈육과 정서적 결핍으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고, 평생 우울증, 양극성장애, 죽음충동과 맞서 싸워야 했다. 아내이자 엄마, 가정의 천사로서 여성의 역할이 중시되던 시기에, 몸에 대한 예민한 인식, 성, 섹스, 자살, 낙태, 불륜, 욕망, 정신질환 등 그동안 시에서 잘 다루지 않던 금기된 소재를 과감하게 드러내어 큰 공감을 얻었다. 시집 『살거나 죽거나(Live or Die)』로 ‘퓰리처 상’(1967년)을 받았고, 시인으로서 빛나는 성취 가운데 있었으나 아쉽게도 마흔여섯의 나이에 죽음을 택한다.
‘홀린 마녀’처럼 시대의 금기와 씨름하며 걸어온 삶의 길에서 시가 생을 지탱하는 치료제였고 힘이었다. 가부장제의 틀 속에 매여 있으나 마음은 새로운 영토를 꿈꾸는 여성들, 사랑을 받고 사랑을 품어 나누어주는 엄마이자 딸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속울음과 갈망과 상실의 목소리를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낸 시인은 시문학사에서 많지 않다. 앤 섹스턴은 지금 시대 우리가 경청해야 할 여성의 목소리, 시의 목소리이면서 동시에 주어진 생에 정직하게 최선을 다한 삶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