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송재(松齋), 본관은 대구(大丘)이다. 전남 보성 출신으로 미국에 귀화하여 필립 제이손(Philip Jaishon)이라 했다. 어릴 적 한학을 수학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교서관(校書館)의 부정자(副正字)로 벼슬을 시작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국방 근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듬해 일본의 도야마(戶山) 육군학교에 유학했다. 1884년 갑신정변에 가담하여 신정부의 병조 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정변이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컬럼비아 의과 대학(Columbia Medical College)을 졸업하고 미국 철도우편사업의 창설자 조지 뷰캐넌 암스트롱(George Buchanan Armstrong)의 딸 뮤리얼(Muriel)과 결혼했으며 워싱턴에서 병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1895년 12월 말 귀국하여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다. 개화 정책을 추진하고 국민 계몽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이어 독립 협회를 창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광복 후 미군정청 최고정무관으로 귀국하여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미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