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소감 – 서효인「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198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했으며 시집『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이 있다. 현재 ‘작란(作亂)’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막다른 골목 끝에 작은 집이 있었고 그 집의 끝에 세를 들어 살았다. 세계는 그곳에서 시작했다. 새빨간 대야에 앉아 어머니가 연탄불에 물을 다 데울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 세계지도를 생각했다. 더운 물에 때를 불리며 전쟁을 생각했다. 지도의 어디쯤엔가 벌거벗은 몸이 차갑게 식고 있었다. 그것은 나였으며 동시에 당신이었다. 어머니 말고 당신들 말이다.

지금의, 이곳의 세계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광장과 크레인, 자동차와 열아홉, 김수영과 시, 쥐와 돼지, 우연과 필연, 병신과 머저리, 몸과 가래, 방사능과 손가락들. 기억의 세포를 죽이지 않으려는 헛된 갈망이 시로 화했다. 기억이라는 녀석은 얼마나 엉망인가. 2011년처럼 엉망이다. 세계는 비관 덩어리였다. 시는 비관 덩어리 진액이다. 쓰디씀으로 바닥을 쳤다. 시 말고 세계 말이다.

시인의 이름이 주는 무거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에게 혼날 것 같아 무섭다. 그를 살아 만났다면 나는 그를 슬그머니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이여, 우리에게 복된 훈장은 말이 아니라 세계고, 그것의 모방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한 창조다. 지금은 자유롭지 않다. 앞으로 그럴 것이다. 당신 말고 시 말이다.

그랬구나. 같은 시대를 같은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슬픔을 우리는 함께 품고 있구나. 같이 일어나고 같이 눕겠구나. 그것이 더욱 비극이구나. 여럿이라서 기꺼한 비극이라면, 괜찮겠구나. 이렇게 말하고 손뼉을 툭툭 친다. 마주칠 당신의 손을 기다리면서. 당신, 세계, 시 모두를 말이다.

[세계의 문학 1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