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초서 뒤로

‘영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초서는 에드워드 3세 치하의 궁정에서 주류 취급 및 관리를 맡은 아버지 존 초서와 십 대 때 시작한 얼스터 백작부인의 시종 생활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귀족 사회 및 궁정과 인연을 맺었다. 1366년 여왕의 시종인 필리파와 결혼했고,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이자 당시 영국 내 최고 실력가인 곤트의 존 경으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1368년에는 중요한 신분 상승을 의미하는 왕의 향사 직책을 맡았고, 그해 초기에 대작인 『공작 부인의 서』를 출간했다. 1370년 이후 국왕의 외교 특사로 유럽을 자주 왕래하며 프랑스 문학의 영향을 받아 『장미의 로망』을 번역했고, 외교 사절로서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새들의 의회』,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더』, 『철학의 위로』 등을 저술했다. 1374년 런던항 세관리로 임명된 초서는 정부 관료 및 외교 사절로서 바쁜 일정을 보내다, 1385년 켄트의 치안판사로 임명되고, 1386년 켄트 대표로 의회에 진출한다. 1387년 부인이 죽자 천직인 시작(詩作)에만 주력하여 평생 『캔터베리 이야기』를 집필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흔히 중세 시대를 비추는 거울 혹은 중세 시대 축약도(縮約圖)라고 불리며, 초서는 근대 영어의 모태가 되는 중세 영어의 정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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