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미 팁토스 이야기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토끼, 피터 래빗을 창조한 영국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또 다른 동물 이야기를 보내 드려요. 우리나라의 청설모와 비슷한 회색다람쥐가 겨울을 나기 위해 열매를 모으다 벌어진 소동입니다. 다람쥐처럼 겨울잠을 자는 작은 설치류들은 실제로 가을에 얼마나 먹이를 많이 저장하느냐에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에, 서로 열매를 훔치거나 먹이터를 두고 매우 치열하게 싸운다고 해요.
옛날 옛날에 티미 팁토스(까치발 티미)라는 통통하고 태평한 회색다람쥐가 살았다. 그는 높은 나무 꼭대기 위 나뭇잎을 엮어서 만든 둥지에서 다람쥐 아내인 구디와 살았다. 티미 팁토스는 둥지 밖에 앉아 산들바람을 즐기다 꼬리를 휘휘 내젓고는 큭큭 웃었다.
“구디, 여보, 견과가 잘 익었으니 우리도 겨울과 봄을 대비해 먹을거리를 쟁여 둡시다.”
구디 팁토스는 부지런히 집 이엉 밑에 이끼를 채워 넣었다.
“둥지가 참 아늑해서 겨울 내내 곤히 잘 수 있겠어.”
“그렇다면 깨어났을 때 비쩍 말라 있겠군. 그때는 봄철이라 먹을거리가 전혀 없을 텐데.” 하고 신중한 티미가 대답했다.
티미와 구디가 견과 나무숲에 갔을 때 이미 다른 다람쥐들이 와 있었다. 티미는 웃옷을 벗어 나뭇가지에 걸어 두었다.
둘은 조용히 일을 해 나갔다. 매일 여기저기 멀리까지 나가 견과를 많이 주웠고, 자루에 담아 가져와서 둥지를 튼 나무 근처 몇몇 빈 그루터기에 착착 모았다. 그루터기들도 가득 차는 바람에 그들은 자루에 담아 가져온 견과를 딱따구리의 집이었던 높은 나무 구멍 안에 쏟았다. 견과는 나무 아래로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어떻게 다시 꺼내려고? 꼭 금고 같잖아!” 하고 구디가 말했다. “봄이 오기 전에 나는 비쩍 말라 있을 거야, 여보.” 하고 티미 팁토스가 구멍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견과를 양껏 모았다. 단 한 알도 놓칠 수 없었다!
다람쥐들은 견과를 땅속에 묻고 나서 묻은 곳이 기억나지 않아 절반 이상을 잃어버리곤 한다.
숲속 다람쥐들 중 깜빡하기로는 실버테일이 단연 최고였다. 그는 땅을 파다 말고 금세 그걸 잊어버리고 다른 곳에 땅을 파다 남의 견과를 발견하는 바람에 싸움에 휘말리고는 했다. 게다가 다른 다람쥐들도 땅을 파기 시작해서 온 숲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불행히도 그 무렵 작은 새들이 무리를 지어 이 수풀에서 저 수풀로 날아다니며 초록빛 애벌레와 거미를 찾았다. 몇몇 작은 새들이 저마다 다른 노래를 지저귀었다.
첫 번째 새는 “누가 내 견과를 파 가져갔나? 누가 내 견과를 파 가져갔나?” 하고 노래했다. 다른 새는 “쪼그만 빵 조각에 치즈가 없구나! 쪼그만 빵 조각에 치즈가 없구나!” 하고 노래했다.
다람쥐들은 새들을 따라와 노래를 들었다. 첫 번째 새가 티미와 구디가 조용히 자루를 여미는 곳에 와서 노래를 불렀다.
“누가 내 견과를 파 가져갔나? 누가 내 견과를 파 가져갔나?”
티미 팁토스는 대답하지 않고 일을 계속했고, 작은 새도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듯했다. 그저 나오는 대로 노래할 뿐 아무 의미도 없었다.
하지만 다른 다람쥐들은 그 노래를 듣고는 티미에게 달려와 그를 퍽퍽 때리고 할퀴었고, 그의 견과 자루를 뒤집어엎었다. 정작 이 모든 소동을 유발한 천진한 작은 새는 깜짝 놀라 날아가 버렸다! 티미는 쫓기고 쫓기다 방향을 틀어 둥지를 향해 달음질쳤고, 다람쥐 떼가 그를 뒤쫓으며 소리쳤다.
“누가 감히 내 견과를 파 가져갔어?”
그들은 그를 붙잡아 작고 동그란 구멍이 난 그 나무 위로 끌고 올라가서는 그를 구멍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 구멍은 티미 팁토스의 몸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작았다. 그들은 그를 억지로 쑤셔 넣었는데, 갈비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녀석이 자백할 때까지 여기 가둬 두자.”
다람쥐 실버테일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구멍 안으로 외쳤다.
“누가 감히 내 견과를 파 가져갔어?”
티미 팁토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나무 안을 반쯤 채운 그의 견과 더미 위로 굴러떨어져 기절한 채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구디 팁토스는 견과 자루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티미를 위해 차를 끓였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티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구디 팁토스는 외롭고 불안한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구디는 견과 나무숲으로 티미를 찾으러 나갔지만 다른 불친절한 다람쥐들이 그녀를 쫓아냈다. 구디는 온 숲을 돌며 외쳤다.
“티미 팁토스! 티미 팁토스! 아, 어디 있어, 티미 팁토스?”
그사이 티미 팁토스는 정신이 들었다. 사방이 캄캄했다. 그는 이끼 침대에 누워 있었고, 온몸이 쑤셨다. 땅 밑인 것 같았다. 티미는 갈비뼈가 아파서 기침을 하고 끙끙 앓았다. 찍찍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작은 줄무늬 얼룩다람쥐가 등불을 들고 나타나 좀 어떠냐고 물었다. 얼룩다람쥐는 티미에게 극진했고, 수면 모자도 빌려주었다. 그 집에는 살림살이와 먹을거리가 가득했다.
얼룩다람쥐는 나무 꼭대기에서 견과가 비 오듯 쏟아졌다고 말했다.
“땅에 묻힌 것들도 발견했어요!”
녀석은 티미의 사연을 듣고 하하 낄낄 웃었다. 티미는 침대에서 꼼짝할 수 없었고, 얼룩다람쥐는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
“하지만 살을 못 빼면 어떻게 저 구멍으로 나가겠어요? 내 아내가 많이 걱정할 텐데!”
“한 알만, 아니 두 알만 더 먹어 봐요. 내가 쪼개 줄게요.” 하고 얼룩다람쥐가 말했다. 티미 팁토스는 갈수록 뚱뚱해졌다!
한편 구디 팁토스는 혼자 일하기 시작했다. 딱따구리의 나무 구멍 안에는 견과를 넣지 않았다. 다시 꺼낼 마땅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디는 견과를 나무뿌리 밑에 숨겼다. 견과는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굴러갔다. 그러다 구디가 꽉 찬 아주 큰 자루를 비웠을 때 선명한 찍찍 소리가 났다. 구디가 다시 꽉 찬 자루를 비우자 작은 줄무늬 얼룩다람쥐가 허겁지겁 안에서 기어 나왔다.
“아래층이 점점 차고 있어요. 거실이 꽉 차서 견과가 통로로 굴러떨어진다니까요. 내 남편 치피 해키(까칠이 발끈이)는 나를 두고 달아났어요. 대체 왜 견과들이 비 오듯 쏟아지는 거예요?”
“용서를 구해야겠네요. 나는 여기에 누군가 사는지 몰랐어요.” 하고 구디 팁토스 가 말했다.
“그런데 치피 해키는 어디 있어요? 내 남편 티미 팁토스도 달아났어요.”
“치피가 있는 곳은 알고 있어요, 작은 새가 말해 줬거 든요.” 하고 치피 해키의 아내가 말했다.
그녀는 딱따구리의 나무로 길을 안내했고, 그들은 구멍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 아래에서 견과 깨는 소리, 회색 다람쥐의 굵은 목소리와 얼룩다람쥐의 가는 목소리가 합창하는 노랫 소리가 들려왔다.
“꼬마 아저씨도 나도 여기 떨어졌으니
이 일을 어찌 할꼬?
어떻게든 해 봐요,
어떻게든 나가요, 꼬마 아저씨!”
“댁은 저 작은 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겠네요.” 하고 구디 팁토스가 말했다.
“그럼요.” 얼룩다람쥐가 말했다.
“하지만 내 남편 치피 해키가 나를 물걸요!”
아래쪽에서 견과를 깨고 씹는 소리가 들렸고, 굵은 회색다람쥐 목소리와 가느다란 얼룩다람쥐 목소리가 함께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디들럼 데이를 위하여
데이 디들 덤 디!
데이 디들 디들 덤 데이!”
구디는 구멍 안을 들여다보고는 아래를 향해 외쳤다.
“티미 팁토스!”
그러자 티미가 대답했다. “당신이야? 구디 팁토스? 맞구먼!”
그는 올라와 구멍 사이로 구디에게 키스했지만 살이 너무 쪄서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치피 해키는 그다지 뚱뚱하지 않았지만 나오려 하지 않고 그냥 아래에서 킬킬 웃기만 했다.
그 후 보름이 지났다. 거센 바람에 나무 꼭대기가 부러져 날아가자 구멍이 열리면서 비가 들이쳤다. 그제야 티미 팁토스는 밖으로 나와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갔다.
하지만 치피 해키는 고생을 무릅쓰고 한 주 더 야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곰이 숲을 어슬렁어슬렁 거닐었다. 아마도 견과를 찾는 모양인지 킁킁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치피 해키는 황급히 집으로 갔다! 치피 해키는 집에 도착했을 때 감기에 걸려 머리가 지끈거리는 바람에 계속 고생했다.
이제 티미와 구디 팁토스는 견과 곳간에 작은 맹꽁이자물쇠를 채워 둔다.
그리고 그 작은 새는 그 얼룩다람쥐를 볼 때마다 이렇게 노래한다.
“누가 내 견과를 파 가져갔나?
누가 내 견과를 파 가져갔나?”
하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 베아트릭스 포터, 황소연 옮김, 「티미 팁토스 이야기」,
『피터 래빗 전집』 중에서
지난 연휴에 저는 둘레길을 걸었는데요. 온 산이 새 소리를 빼면 고요해서 다람쥐 청설모들 겨울잠을 자고 있겠거니 했는데, 베아트릭스 포터가 그린 가을의 숲은 떠들썩하네요! 같이 걷는 이는 겨울산은 뱀 만날 걱정이 없어서 좋다고 하고, 저는 겨울잠 자는 동물들을 막연히 부러워했는데 가을 먹거리 준비가 이렇게 치열하다는 걸 미처 생각 못했어요. 문에 낄 만큼 견과류를 섭취할지언정 우산은 꼭 받쳐 쓰는 티미 팁토스의 투닥투닥 빙글빙글 먹고사는 이야기는 제목은 느긋하지만 실로 치열한 삶의 현장 취재기인 우리 팀의 책을 떠올리게 하고요…….(1레터1홍보)
청설모가 화내는 소리를 들어 보셨나요? 언젠가 공원 같은 데서 빵 조각을 들고 가던 청설모가 나무 위에서 제 앞에 먹이를 떨어뜨린 일이 있었는데요. 자기 실수로 그래놓고 어찌나 소리를 깩깩 지르고 발을 탁탁 구르면서 화를 내던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만큼 먹이는 중요한 문제란 거겠죠. 언뜻 보면 서로 어울려 노는 것 같지만 사실 열매 도둑을 처절하게 응징하고 있는 회색다람쥐의 모습을 잘 포착한 BBC 다큐멘터리 영상도 추천합니다. 회색다람쥐들이 말 그대로 ‘날아 차기’를 얼마나 잘 하는지 알게 될 거예요!
“얘들아, 들판에 나가거나 길을 따라가는 건 좋지만 맥그리거 씨 텃밭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네 아버지는 멋모르고 거기 들어갔다가 맥그리거 부인의 파이가 되었단다.”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집에서 문학과 미술을 공부한다. 작가가 되기 전 왕립식물원에서 버섯을 연구했는데, 그녀의 논문은 당시 여성의 가입이 금지되었던 ‘영국 린네 협회’의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식물학자가 되는 걸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좌절이 결코 실패는 아니다. 우연한 기회로 어린이들을 위한 동물 이야기를 쓰게 된 포터는, 많은 출판사들로부터 번번이 거절당해 첫 책을 자비로 출판하였는데 그 즉시 동이 나서 예약판매를 8000부나 받고 결국 정식 출판을 하게 된다. 가장 유명한 『피터 래빗』을 비롯하여 여러 작품이 모두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래지 않는 고전이 되었다.
『피터 래빗』이 탄생한 빅토리아 시대 말기는 아직 엄격한 신분제와 고지식한 도덕관념이 사회를 경직시키면서 동시에 산업화로 인한 급속한 사회 변화로 몸살을 앓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러한 때 자연 친화적인 동물들이 펼치는 생존을 향한 귀여운 이야기는 실체 모를 두려움 앞에서 불안한 도시인들에게 평안과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도 우리가 『피터 래빗』을 읽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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