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3월의 마지막 편지네요. 이 정도면 ‘시간이 참 빠르다’를 표현할 한 단어가 있어야만 할 것 같아요.지난 주에 저는 책 미팅을 겸해 광주에서 있었던 『삶을 위한 혁명』 북토크에 다녀왔어요. 활동가, 문화예술 기획자,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모이는 허브이자 사랑방 같았던 ‘소년의서’와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에서 삶과 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혁명’에 대해서 삶을 흔드는 것, 불안한 것, 감내할 것이라고 해 주신 게 기억에 남고, 삶에 대해서라면…… 모두가 혁명 중이다…….
북토크에서 『삶을 위한 혁명』의 구절들을 함께 읽으면서 새삼 곱씹게 된 문장들이 있어요.
“단순한 붕괴가 아닌 혁명을 보고 싶다면, 우리는 낡은 것의 틈새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 이것은 사실적인 규칙을 조합해서 지금 형태의 부서지기 쉬운 틀을 수리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연결로 그것을 덮어야 한다. 거칠고 이동 가능하며 자유로운 연결.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연결. 그 누구도, 그 어떤 생명도 더 이상 폭력적으로 배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배제하는 원은 열고, 제공하는 원은 닫는다면 균형이 무너지고 균열이 생긴다.”(169쪽에서)
『삶을 위한 혁명』에서 말하는 “일상화된 패턴을 바꿔 나가는” 방법은 제가 ‘쉼’ 호에서 알아가 보고 싶은 것인데요. 패턴 바꾸기가 나의 문제로 고이지 않고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역시 연결이 중요하겠어요. 지금 읽고 있는 정치학자 채효정 선생님의 『먼지의 말』에는 “생명의 그물”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네요.
한편 지금 저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에 어떻게 참여할까?’ 들여다보는 《릿터》 4월호를 마감 중인데요! (정치 참여 꿀팁이 한가득) 커버스토리에 실리는 미류 활동가의 글은 『삶을 위한 혁명』과도, 『우리를 바꾸는 우리』와도 통하고 있어요.
정치에서 ‘우리’는 동사다. 정치 영역에서 어떤 의제가 다루어지는지, 어떤 집단이 권리의 주체로 등장하고 보호의 대상으로 등장하는지 등에 따라 누가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지가 달라진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억압된 갈등을 드러내며 배제된 구성원들을 정치의 한가운데로 초대하는 투쟁이다. 지금의 정치를 넘어서기 위한 힘을 가지려면 개인으로서 투표하는 유권자를 넘어서 주권자가 되기 위한 공동의 세력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세계를 함께 그려야 한다.
― 미류, 「’우리’가 되어 가기, 새로운 정치의 시작」에서
아아, 광주 북토크 사진도 보여드려요. 이틀 동안 나눈 이야기가 너무 많고 여러분에게 또 전하고 싶은 후기가 너무 많은데요. 무엇보다도 이 한편의 편지를 보고 북토크에 찾아와주신 독자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보고 계세요?!)
두 차례 북토크에서 독자님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아주 중요했어요. 왜냐하면 세영 편집자님의 말처럼 삶에 대해서라면 모두가 혁명 중인 이야기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저로서는 함께해 준 역자, 동료 편집자, 저자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은 게 중요했어요. 나와의 관계 속에서는 다 들려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낯선 사람들 앞에서, 책을 매개로 털어놓는 모습을 보았거든요. 그 이야기들은 모조리 새롭게 연결되었고…… 이게 바로 독서 모임의 놀라움. 에바 폰 레데커는 이 연결의 놀라움을 묘사하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노벨상 연설을 인용하죠.(책갈피)
“토카르추크는 통찰력과 관점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내적 시야에 관심을 기울인다. 밀접하게 결합된 지리학. 세계 내부를 바라보는 관점. 그녀는 자신이 불러내는 목소리를 “4인칭” 또는 “다정한 서술자“라고 부른다. ‘이것은 중심이며, 이것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관점이다. 모든 것을 본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그들 사이의 연결을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의 전체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궁극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삶을 위한 혁명』 135~136쪽 중에서)
이제 저자 에바 폰 레데커의 목소리만 들으면 됩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 독자들의 이야기를 저자에게 직접 전하고 말 것이니 『삶을 위한 혁명』 저자와의 만남에 꼭 꼭 꼭 와주세요.
저는 요즘 세라 폴리의 에세이 『위험을 향해 달리다』를 읽고 있어요. 무척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2011)의 감독과 각본을 맡은 창작자로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작은 마을의 여성들에게 일어난 집단 폭력과 그에 대한 대처를 다룬 영화 「위민 토킹」(2022)의 감독과 각본을 맡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북미에서는 캐나다의 소위 국민 여동생으로 통했던 아역 배우 시절이 어쩌면 많은 이들에게 더 익숙한가 봅니다.
이 책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미디어 산업 종사자로서의 경험에 대한 고통스러운 회고담이자 2020년대를 살아가는 여성, 창작자, 시민으로서 자신이 세계를 인식하는 관점이 변화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2010년대를 지나며 미투 운동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수많은 여성과 남성의 관점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느낄 수 있어요. 이런 면에서 내 삶에서의 혁명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어요.
그가 아홉 살에 테리 길리엄의 영화 「바론의 대모험」에 출연했던 경험을 이제 성인 여성이 되어, 비슷한 처지의 위험에 여전히 놓여 있을 수 있는 다른 어린이들을 걱정하는 입장에서 다시 이야기하는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말 그대로 눈물을 마구 쏟고 있는데요…….
내가 테리의 책임을 면해준 것은 내가 어릴 때부터 ‘악동 감독’(통제 불가 미치광이 백인 남성 천재)이라는 개념에 현혹된 탓이다. 이것이 적어도 부분적인 이유다. 천재성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영화계를 지배해 온 신화를 나도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계가 특정 남성들의 충동 조절 장애 행동을 천재의 증상으로 해석하는 것을 평생 목격했다. (……)
엄마는 제작 팀에게 딸이 그 숏을 찍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조감독 한 명이 나를 울고 있는 엄마의 품에서 그야말로 들어냈다. 내가 달려 내려갈 때 폭약이 사방에서 터졌고, 엄마는 딸의 작은 몸이 혼돈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조니 오빠는 엄마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 말을 반복했다고 했다. “내 품에서 애를 빼앗아 갔어. 내가 울면서 잡았지만, 그 사람들이 애를 움켜잡고 그대로 내 품에서 들어냈어.”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기뻤다. 엄마가 나를 위해 싸웠다는 것을, 상황을 막으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뻤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당시에 인식하지 못한 순간들이 어쩌면 많다는 것이, 나를 보호할 의무 앞에 우리 부모가 도미노처럼 무너지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설사 그때 딱 한 번뿐이었다 해도, 엄마는 나를 보내지 않으려 했다.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엄마의 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기뻤다. 엄마는 적어도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필요를 느꼈다. 의미 없는 일일지 몰라도 의미가 있었다.
― 세라 폴리, 이재경 옮김,
『위험을 향해 달리다』 242~244쪽에서
또 한편으로는 이번 호 《한편》 ‘집’의 발간사에도 썼지만,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저는 재작년 아이를 낳은 후 출산과 양육, 그리고 그에 따른 변화에 대한 엄마들의 이야기를 읽고 보는 데 매우 집착하는 편인데요. 트라우마 회상인지 비가역적 변화에 대한 일반적인 수용 과정인지 모르겠지만요. 혹시 저와 같은 분이 또 계실까요?
어쨌거나 이 책은 그런 점에서도 또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서로 다른 수많은 엄마들의 이야기에 이끌리는 분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나는 임신하기 전까지 내가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엄마의 죽음에 얼마나 분노하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는 내 아이와 2년 반을 함께 살았고, 그동안 서로에 대해 형언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지식을 쌓았다. 그 근본적인 앎의 강도를 느끼며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201쪽에서)
– 좋았습니다. 잠시 생각의 여행을 떠나는 시간이 소중해요 마음챙김과 명상에 대한 글 유독 많이 머물렀어요 목록에 하나하나 쌓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