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정치는 아슬아슬해

 

 

“약속한 것을 내어놓아라”
지난 주 레터에서 탐구 시리즈 신간 3종 중 첫 번째, 『온라인의 우리 아이들』을 소개해 드렸죠. 탐구 시리즈의 신간이 기대된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곧 출간될 책과 학술대회에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아이들이 직접 말하는 온라인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보이지 않으면 모른다 하잖아요.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될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도 생각났어요.” 이 피드백은 오늘 소개해 드릴 책과도 이어지는데요, 바로 ‘정치와 약속’을 탐구하는 정치학자 조무원의 『우리를 바꾸는 우리』예요.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개인들이 동등하게 약속을 맺는 일이 가능할까요? 특히 힘의 크기가 다른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서 말이에요. 처음 공개하는 서문을 함께 읽어 봐요.
약속이 명시적이고 정교한 계약의 언어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몇몇 단어들의 첫 글자만 말하기 시작한 만 두 살의 아가도 약속의 의미를 안다. 나는 고향에 사는 조카가 빨간 헬리콥터가 나오는 영상을 즐겁게 시청하는 모습을 보고 빨간 헬리콥터 장난감을 하나 사 주겠다고 약속한 적 있다. 당시 나는 이 말이 어떤 의미에서 약속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다른 급한 일로 본가에 가게 된 어느 날 그 사실을 깨달았다. 집에 도착해 방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조카가 따라 들어와서는 내 가방을 가리키며 손으로 헬리콥터 모양을 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갸갸갸갸. 순간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조카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난번에 약속한 것을 내어놓아라.”
정치란 약속이다. 이 말은 우리가 태어난다는 자연스러운 일을 계약이라는 부자연스러운 일로 바꿔서 이해해 보자고 요청한다. 날 때부터 맺는 계약의 본질은 동등하지 못한 관계를 동등하게 만드는 데 있다. 약속의 매력은 식은땀이 나는 순간에 발휘된다. 약속을 맺은 우리는 서로에게 그것을 잘 지켰는지 확인하고 물을 수 있다. 그때 서로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다. 약속은 우리의 관계가 지닌 현실과 이상을 이어 주기도 하고, 반대로 약속을 맺는 이들 간의 힘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일상에서 약속을 지키는 일은 대개 약자의 몫이 된다.
식은땀이 나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힘과 위계를 확인한다. 이때 우리는 폭력을 사용할지 아니면 다시 새로운 약속을 맺을지 결정해야 한다. 식은땀이 드러내는 진실은 힘의 차이만은 아니다. 식은땀은 어떤 윤리적 감각의 결과다. 우리는 약속을 지킬 수도 있지만 어길 수도 있다. 힘이 센 사람에게는 약속을 어기는 쪽이 더 편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킨 약속은 쉽든 어렵든 힘을 내서 노력한 결과다. 약속이란 우리가 동등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윤리적 사건인 셈이다. 약속은 언제나 아슬아슬하다. 정치가 단지 힘이나 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규범이 되게 만드는 힘이 여기에 있다.
― 조무원, 『우리를 바꾸는 우리』,
‘들어가며’에서
어린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있는 힘센 어른도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받는 순간 식은땀을 흘릴 거라는 이야기. 약속은 사실은 동등하지 않은 이들에게 동등할 것을 요구하고, 약속을 지킬 때 우리가 비로소 평등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 어떤가요?
어린이를 동료 시민으로 맞는다는 것, 우리를 우리가 바꾼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도 같이 읽어 봐요. 독자 피드백에서 언급된 『어린이라는 세계』도 인용되어 있네요.
아이들은 국민이지만 자율과 보호의 경계 위에 있다. 아이들은 동의할 수 있지만 대개 그 동의는 사회적으로 온전한 동의로 간주되지 않는다. 미성년은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존재다.
하지만 성년이 된다고 이야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출몰할 때 곳곳에서 벌어진 실랑이들을 생각하면 성인이 진정으로 자율적인 존재인지 의심스럽다. 감염병이 지속되는 가운데 마스크를 가장 충실하게 쓴 것
은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열차에서 문화시민들을 겪을 때만큼이나 노란 버스에서 마스크를 한 아이들이 줄줄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른과 아이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소박한 진실을 알려 준다. 아이들이 글자를 익힐 때의 경험과 우리가 성인이 되어서 외국어를 익힐 때의 경험을 겹쳐 보여 주는 대목에서는 어른과 아이의 차이가 단지 선후배의
차이 정도로 느껴진다. 아이는 늘 변화하고 성장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변화와 성장이 멈췄다고 느끼는 성인들보다 오히려 더 정치적인 존재인 것 같다.
“어린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과 스스로 구한 것, 타고난 것과 나중에 얻은 것, 인식했거나 모르고 지나간 경험이 뒤섞인 존재다. 어른이 그렇듯이.”
우리가 정치적 존재라는 사실은 일정한 변태를 수반하는 일이다. 그리고 인민이 불확실한 경계를 지니는 한, 인민의 일부가 됨으로써 정치적 존재가 되는 우리는 언제나 변화의 과정에 있다. 성인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경계 위를 오가는
존재다.
― 조무원, 「어린이를 동료 시민으로 맞이하기」,
『우리를 바꾸는 우리』에서
갸갸갸갸(“약속을 지켜라!”) 소리 내며 다가오는 조카 분과의 일화를 마냥 남의 일처럼 볼 수 없는 건 저 역시 초등학생 조카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나는 조카와 어떤 약속을 했더라? 식은땀을 흘린 적은 있었나?’ 옛 기억을 더듬어 보니 문득 몇 년 전 일이 떠오릅니다.
하루는 조카와 둘이 서울 모처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다 조카에게 어떤 책을 좋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사서 함께 읽고 감상을 나눈다는, 어디에나 나올 법한 독서교육법을 실천할 요량이었죠. 조카가 원한 것은 『마법천자문』이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예상대로 되어 버린 상황에 저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같이 쥐어 주며 말했습니다. “나중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 얘기도 하자!” 몇 개월 뒤 책은 어땠느냐고 물으니 혀만 빼꼼 내밀더라고요.
사실 당연한 반응입니다. 『마법천자문』이 필요한 조카는 약속하는 척했을 뿐, 저의 제안에 진실로 동의한 적이 없으니까요. “아이들은 동의할 수 없지만 대개 그 동의는 사회적으로 온전한 동의로 간주되지 않는다.”를 과거의 제가 인지했다면, 조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을 빌미로 제가 원하는 것을 하자고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조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 느낀 막막함이 이런 식은땀의 다른 형태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의 우리는 속절없이 맺은 불공정 조약에 끌려다니며 사회계약과 정당정치라는 추상적인 정치적 개념들의 그림자를 봅니다. 내가 동의하지 않은 조항 때문에 억울함과 분노가 쌓이는 세상에서 서로의 동등함을 유지하는 약속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가장 가까운 조카와의 약속에서 ‘우리’를 바꾸기 위한 단초를 보는 저자의 자세에 저 역시 일상 속 약속의 무게를 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투표권을 갖지 못한 여성, 헌법에 동의하지 않은 채 헌법의 주인이 된 국민까지 사회계약의 협상 테이블에 없었던 여러 주체를 불러모으는 정치학 연구자의 탐구를 어서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민음사TV 유튜브에서도 웅장하게 소개했어요. 이미지 클릭!
아, 표지 무척 멋져요! 안쪽에서 찢고 나온 듯한 이미지가 제목과 한 몸처럼 보여요. 우리를 바꾸는 우리. 우리를 바꾸는 건 우리.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우연이 아닌 우리의 만남…… 유진아 디자이너의 표지 시안이 들어왔을 때 마음이 뒤흔들렸던 기억이 나네요. 이 책의 제목을 짓기까지 무척 긴 대화가 필요했는데, 시안을 보면서 제목을 한 단어씩 지었잖아요. 우리를, 바꾸는…… 정치? 약속? 만남? 아슬아슬? 분노? 사랑? 싸움? 우리……
저는 편지를 닫으면서 ‘우바우’ 저자와 붉은얼굴 편집자 두 분의 첫 번째 작업이었던 《한편》 6호 ‘권위’를 펼쳐 봐요. “인간은 자신을 공격해서 힘으로 목숨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에게 저항할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라는 제사가 먼저 보이네요. “권위자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라고 말하는 편집자의 발간사가 이어지구요. “저항할 권리”라는 홉스의 표현과 ‘쉽지 않은’ 현실 사이. 이 사이에서 저자는 ‘권위’ 호의 첫 번째 글을 이렇게 닫고 있어요. “우리는 개인들 간에 이루어진 아슬아슬한 약속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정치적 신체를 창조해야만 한다.”(38쪽) 이 아슬아슬한 정치에 관해 1년에 걸쳐 쓴 글이 이제 책으로 나오는 것이죠. 어서 입고되었으면……
알약 편집자님이 말한 ‘막막함’을 곱씹어 보자면, 신중한 저자와 침착한 편집자 곁에서 『우리를 바꾸는 우리』 원고를 함께 읽으며 저는 막막함 견디기를 터득하는 중이네요. 아슬아슬한 얼음 위에 서 있다고 해서 당황해 발 구르지 않기 정치란 아슬아슬한 약속이니, 언제든 자연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에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는 걸 이해하자 차라리 여유가 생긴 거예요. 이런 이해가 왜 중요한지를, 오늘날의 이슈들과 어떻게 이어지는 것인지를 만나서 이야기할 겨울 학술대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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