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외모를 둘러싼 읽을거리들

 

 

한편 9호 목차 대공개
태풍이 지나가자 북쪽에서 찬 공기가 내려와 가을 평년 기온을 회복했는데요. 오늘 $%name%$ 님 출근길 룩은 어땠나요? 머리 스타일은요? 화장법은요? 이번 가을겨울 《한편》은 늘 하든, 잊고 지내든 ‘외모’ 이야기를 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 눈에 쌍꺼풀이 있는지 없는지만이 아니라 성형수술, 인체개조, 메타버스, 체면치레, 시각예술 등등 멀리멀리까지 가는 이야기들을요.  선공개하는 10호 ‘외모’ 차례와 함께 읽을거리를 소개해 드릴게요. 
《한편》 8호 ‘중독’ 편을 만들면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에는 없는 많은 단어를 중독 앞에 넣어 봤다. 외모도 빠질 수 없었다. 외모와 함께 딸려 오는 것은 강박, 자기관리, 꾸밈 노동, 사회적 압력, 수치심, 비교, 비하, 허기와 관련된 말들이다.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욕구를 가지고 늘 하는 행동”인 “체중 재기, 치수 재기, 계산하기, 감시하기, 꾹 참았다 과하게 보상하기” 등이 내게도 친숙하다.(캐럴라인 냅, 『욕구들』)
지난 몇 년간 외모와 몸을 둘러싼 담론과 운동과 경험을 고백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주목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다. 외모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무엇일까. 인문잡지는 고백과 공감의 장 위에서 외모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까.
‘중독’과 ‘콘텐츠’ 호를 흐르는 ‘주의 산만’에 덧붙는 나의 맥락은 ‘보는 나’와 ‘보이는 나’가 좀체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서 비롯한다. 먹고 말하고 전시 보고 운동하고 사랑할 때의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를 의식할수록, 내 외모를 ‘이상적’ 기준에서 볼수록 삶은 몰입과 멀어진다. 그렇다면 그저 굴레일까? 외모를 언급하지 않고, 외모의 차이를 인지할 수 없는 세상이 살기 더 좋을까?
─ 조은,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자」
《한편》 ’9호를 펴내며’에서
‘중독’ ‘콘텐츠’ ‘외모’까지 2022년 동안 한편에서 탐구한 주제들은 과연 통하고 있어요. 뭔가 강박적인 마음의 상태와, 또는 강박적으로 손을 뻗게 되는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요.  외모 편에서 제가 이해하게 된 것은 외모 강박이 강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외양의 힘이에요. 이번 호를 강렬하게 여는 김원영 작가의 「외모라는 실체에 관하여」는 이 겉모습이 왜 중요한지, 어째서 무시할 수 없는지를 논증하고 있죠. 저는 이 글을 통해서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게 만든 걱정까지 끌어안는 반론을 내놓을 수 있게 됐어요. 필독 추천…….
겉과 속, 외면과 내면, 껍데기와 본질, 이미지와 실재…… 하는 식으로 반복되는 대립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뮬라시옹』도 이번에 펼쳐 봤는데요. 1981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이미지가 글자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시대의 허무함을 직시하고 있는 듯했어요. 9호의 제사가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그럼 다른 편집자님도 한 편씩 추천해 주실래요?
더 이상 무대가, 사건들이 사실성의 힘을 취하도록 해 주는 극소의 환상조차도 없다. 정신적 혹은 정치적인 연대감의 무대가 없다: 칠레가, 비아프라가, 보트 피플이, 볼론뉴 혹은 폴란드가 우리에게 뭐가 중요한가? 이 모든 것은 텔레비전 화면 위에서 제거되기 위하여 온다. 우리는 결과 없는 사건들의 시대에 있다.(그리고 결과 없는 이론들의 시대에)
의미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을 말한다: 의미는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위에서 의미가 자신의 일시적인 지배를 강요하기 위하여 제거한다고 생각했던 것, 즉 외양들은 죽지 않는 것들이며, 의미 혹은 비-의미의 허무주의에 다치지 않는 것들이다.
바로 여기서 유혹이 시작된다.
─ 장 보드리야르, 하태환 옮김,
「허무주의에 관하여」, 『시뮬라시옹』, 252쪽에서
저의 출근길 ‘룩’을 물으신다면…….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여름옷과 가을옷 사이를 추구하려 한 실용룩이라고 답하겠어요. (멋보다 기능에 충실한 후줄근 차림새였다는 뜻 ) ‘패션과 내면’ 편집자님이 이번 호를 통해 겉모습의 잠재력에 다시금 주목했다면, 저는 운동이나 성형수술같이 외모를 바꾸는 행위의 의미를 탐구해 보았답니다.
여느 또래 여성처럼 늘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평일 저녁 ‘생존 운동’을 하는 것도 버겁습니다. 일상생활을 극도로 통제해야 하는 바디 프로필 사진 촬영, 오랜 회복 기간을 요하는 성형수술은 언감생심이죠. 이런 자기 관리 행동은 현재의 자신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강한 욕망 없이는 감행하기 어려워 보여요.
한편 그 허들을 넘은 후 찾아오는 또 다른 현실은 ‘더 멋있어지고 싶다’ ‘더 예뻐지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이 늘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일 텐데요. 오늘날 한국 성형수술이 지향하는 아름다움에 관한 한편 「K-성형수술의 과학」과 ‘보이는 나’와 끊임없이 협상을 벌이는 ‘어떤 성형수술 후기’를 공유하고 싶네요.

수술 후 붓기가 어느 정도 빠지니까 코만 하면 예쁠 것 같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여기서 코가 더 높아지면 정말 100퍼센트 완벽한 미인이 될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거다. 이미지로서의 몸은 실재의 몸과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 그렇게 얼굴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예뻐지기는커녕 원치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을 거다. 그동안 내가 스타일을 완성하겠다고 미용실을 자주 드나들면서 얻은 것은 완벽한 스타일이 아니라 손상된 머리카락이다. (……) 재미있는 건 며칠 전 우연히 머리에 신경을 못 쓰고 나왔을 때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는 거다. 그날 깨달았다. 수술한 지 이제 네 달이 넘었지만 난 아직도 내 새 얼굴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리고 사람들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새로운 내 얼굴 자체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먼 길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내 몸은 내 것이면서 또 내 것이 아니다. 성형수술의 과정 내내 내 몸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내 것이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모든 감각과 고통, 불안, 그리고 책임이 나만의 것이라서 외로웠다. 그러나 내 몸을 온전히 내 뜻대로 움직이거나 나조차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성형수술은 내가 수십 년 동안 내 몸과 맺어 온 관계를 뒤흔드는 사건이었고 나는 내 몸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수많은 협상을 해야 했다. 그 협상의 과정에서 내 몸은 내 뜻에 저항하기도 하고 내 뜻에 순순히 따라 주기도 했다. 어떤 몸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 어떤 몸은 아무리 노력해도 꿈쩍하지 않다가 어느 새 슬며시 사라지기도 했다. 마치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 임소연, 「어떤 성형수술 후기: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닌 나의 몸」

《릿터》 8호 ‘몸-테크놀로지’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글이 많아서 고민에 빠졌어요…… 리트리버 편집자님과의 수미상관을 기대하며 마지막 글 「외모 통증 생존기」를 추천해 봐요. 대구의 청소년 페미니스트 활동가인 일움 선생님의 글인데요. 외모 강박으로부터 자유롭자는 선언 뒤에 들러붙는 ‘아름답지 않음이 기어코 슬퍼지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자유롭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은 결국 못생김에 번뜩 까무러치는 순간에 자주 도달하고야 말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제 외모에 대한 감정들을 애써 모른 척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글은 ‘외모 통증’을 절박하게 내보이면서 그래도 “외모에 대해 말하자”라고 선언해요. 어떤 외모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또 다른 외모 쳇바퀴로 굴러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보고 보여 주는 일을 멈출 수는 없으니 외모에 대한 말하기는 멈출 수 없죠. 외모 통증을 공유하는 동료들과 함께 말하고 행동하는 해방감을 느끼고 나면, 말하기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길 거예요.
민음사
1p@minumsa.com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1길 62 강남출판문화센터 5층 02-515-2000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