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다시 콘텐츠의 세계에 빠지기

 

 

《한편》을 같이 읽어요! 지난 주 편지에서 서울국제도서전 현장 분위기, 살펴보셨을까요? 첫날의 《한편》 북토크를 시작으로 5일 동안 이어진 노란빛 시간이 오늘밤 꿈에도 나올 것 같은데요.
여러분의 한 주는 어떠셨나요? 저는 한 차례 폭풍이 지난 뒤 오랜만에 텅 빈 머리를 채우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그동안 잘 안 보던 장르의 책도 들춰 보고, 정주행만 벼르고 있던 만화책을 옆에 잔뜩 쌓아 두고 읽고, 최애 아이돌 무대 영상도 다시 보고, 영화관도 두 번이나 찾고……. 그야말로 콘텐츠에 흠뻑 빠진 상태였어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정지돈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스크롤!』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콘텐츠 충전의 시기에 두 번이나 읽은 책이거든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금보다 조금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가상 현실에 기반을 둔 복합 문화 단지 ‘메타플렉스’에 소속된 서점 ‘메타북스’ 점원들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뤄요.
메타북스의 직원이자 드라마 작가 지망생인 한 인물은 시트콤 「프렌즈」처럼 세계적으로 대박난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의 필명을 ‘프랜’으로 짓습니다. 그러나 프랜은 가상과 실재의 구분이 어려워진 세상 속에서 곧잘 정신을 차릴 동력을 잃고 맙니다. 그의 두 장면을 함께 읽어 보아요.
프랜은 열두 시간 정도 푹 자고 일어나 플라톤의 동굴 같은 어두침침한 반지하 원룸을 빠져나와 에스프레소 바에서 라떼를 마시켜 멍하니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손에 잡히는 책을 아무거나 들고 나왔는데 지금 보니 무슨 책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The Waste Book.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 게오르그 리히텐슈타인의 메모 노트로 뉴욕 리뷰 북스에서 나온 영어 번역본이었다. 이게 왜 내 손에 있는 거니. 프랜은 아무 페이지나 펴서 읽었다. 88. If tax had been imposed on thoughts at that time the tax would certainly have become insolvent. 만약 세금이 생각에 부과되었다면 세금이 파산했을 거라고? 구절들은 맥락 없이 쓴 단상이었고 해석이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단어나 문장이 어려워 해석이 불가능하다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의미는 알 수 있지만 그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게 프랜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저자와 프랜 사이에 놓인 거리가 의미를 미아 상태로 만들어 버린 걸지도 모른다. (143~144쪽)
프랜은 인생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기에는 이른 나이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달라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었는데 그래서 기대된다거나 설레는 것도 아니었다. 프랜이나 정키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삶을 이룰지 그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어떤 형태일지 무슨 의미일지 짐작할 수 없었다. 프랜은 가족을 만들 생각이 없었고 직업적인 목표도 없었다. 부자가 되고 싶지도 않았고 사회적인 대의가 있지도 않았다. 대체로 진보적인 의견에 동조했지만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예를 들면 환경 문제 같은 것. 우주가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크고 역사가 오래되었다면(입자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라는 개념은 코미디였지만) 지구가 사라지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프랜이 답답한 건 그에 비해 훨씬 지엽적인 불의였지만 이것을 대의나 목표, 의미와 연결할 수 없었다. (…) 프랜은 거리를 두고 일상의 평온함, 조금의 쾌락과 여유를 즐기고 싶었지만 사회는 책임감 없는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프랜은 자신의 성향이 개인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키와 공돌이, 지우와 즤는 어떤 삶을 살까. 마흔 살, 쉰 살, 그 이후 우리의 삶을 지금 중장년층의 삶과, 지금까지의 세계와 등치시킬 수 있을까. 프랜은 그 사이에서 어떤 연속성도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165~166쪽)
― 정지돈, …스크롤!』 중에서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의 파편들을 두고 혼란에 빠진 프랜의 모습에 제 자신의 일상을 겹쳐 보게 되는데요. 습관적으로 볼 거리를 챙기고서도 정작 나가서는 현실의 문제부터 떠올리게 되는 경험, 나의 현재와 너무 먼 이야기를 하는 작가에게 괜시리 소외감을 느끼는 경험, 이 모든 이야기들이 세상는커녕 나 자신을 변화시킬지 의심부터 하게 되는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한편》 ‘콘텐츠’ 호에 실린 이솔 선생님의 글, 「산만한 나날의 염증에 관하여」의 이 문장을 떠오르기도 하고요. “산발적으로 튀어 오르는 만 개의 목소리들이 말하는 것은 더 이상 진리도 진실도 아닌 제각기의 서사들이다.”
콘텐츠에 흠뻑 빠지고 오고선 너무 염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도 싶네요. 하지만 오히려 콘텐츠에 충분히 몰입했기에 평소와 다른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한편》 북토크의 한 참가자께서 ‘콘텐츠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을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취지의 질문을 하셨는데요. 저의 대답은 “일단 충분히 쉬지 않으면 몰입도 불가능합니다!”였답니다. 지금 내가 콘텐츠를 편안히 감상하기 어려운 상태라면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몸을 맡기는 순간의 염증도, ‘핫플’에 가고서도 왠지 마음 한 구석은 뜨뜻미지근한 느낌도 일단은 흘려 보내는 게 맞다는 생각이에요. 엄청난 대의나 목표를 이룰 수는 없더라도 언젠가는 조그마한 연속성과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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