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유령이 나타났다!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콘텐츠’ 호 마감의 마지막 능선을 넘고 있는 지금, 새로 선보이는 배너와 함께 깔 맞춤(?) 책을 소개해 드려요. 임선우 소설가의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입니다. 물음표와 느낌표, 손가락과 바람개비가 흩어진 배너 이미지에 여러 귀여운 유령들이 떠돌아다니는 표지가 겹쳐 보여요. 유령의 이미지가 우리 곁을 떠돌면서 우리를 유혹하고 위로하는 수많은 콘텐츠들과 닮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평범한 일상에 찾아온 환상적인 이야기, 유령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의 한 대목을 소개해 드려요.
한가로운 오후, 나는 빵집 카운터에 엎드려 있었다. 한낮인데 이렇게 어두운 것을 보니 곧 비가 쏟아지려나, 생각하면서 창밖을 보던 중 짧게 숨을 들이켰다. 무언가가 몸 밖으로 쑤욱 빠져나가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내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나는 카운터에서 일어나 창고로 갔다. 창고 구석에는 작년 겨울에 쓰던 담요가 접혀 있었고, 나는 먼지를 털 겨를조차 없이 그것을 몸에 둘렀다. 아직 나뭇잎도 푸르른 9월이었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잔뜩 움츠린 몸으로 창고를 나오면서는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 카운터에 내가 눈을 감은 채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나는 멍하니 서서 내 몸을 바라보았다. 굽은 어깨와 벌어진 입이 남들 눈에는 저렇게 흉했구나, 생각하면서. 죽은 것이 딱히 억울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평소에 지병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전조 증상도 없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죽을 수가 있나?
내가 정수보다 먼저 죽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수는 2년째 병원에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내 남자 친구다. 정수도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몸에 두르고 있던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동시에 카운터에 엎드려 있던 내가 눈을 떴다. 나도 모르게 뭐야, 하고 소리쳤다. 죽었는데 어떻게 눈을 뜨지? 안 죽었으니까. 그것이 대답했다. 생김새뿐 아니라 목소리도 소름 끼칠 정도로 나와 똑같았다. 그럼 너는 누구야? 내가 묻자,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나는 너야. 그러면서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는데, 서로 가까워질수록 추위가 점차 사라졌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와 똑같이 생긴 유령은 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내 몸을 빼앗으러 온 것도 아니고, 원하는 것도 없다고 했다. 자기가 왜 생겨났는지는 자기도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기 또한 나라고 했다. 그럼 나에 대해 네가 아는 걸 말해 봐. 내가 말했다. 과거에 대해서라면 아무것도 몰라. 나는 지금 막 생겨났으니까. 그것이 말했다. 나는 그냥 네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있어. 기쁨이나 슬픔, 그런 거.
― 임선우, 「유령의 마음으로」,
『유령의 마음으로』 중에서
한가로운 오후에 나타난 나와 똑닮은 유령.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유령이 나타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어요. 이 소설집에서는 요상하고 환상적인 일들이 턱턱 일어나 버리는데요. 한 남자가 집 안에서 나무로 변해 버린다거나, 사람이 겨울을 나는 곰처럼 긴 잠에 빠지는 일들이에요. 그래서 이 소설집을 읽는 동안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출퇴근을 하면서도 작고 웃기는 상상들을 하곤 했답니다.
또 모르죠. 화요일 밤 이 레터를 작성하고 있는 제 옆에 스윽 하고 제 일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느끼는 유령이 나타날지도요. 생각하다 보니 정말 그런 유령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싶은데요. 한편으론 저의 마음은 외면할 수 없는 콘텐츠를 무한 공급하는 제 유튜브 알고리즘만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시시하면서도 무서운 생각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