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김초엽이라는 현상

 

 

SF 소설의 매력 속으로
저번 깜짝 번외 편지 어떠셨어요? 심완선 평론가의 서문을 보내 드렸지요. 작가의 맞은편에 앉아 이야기를 끌어내는 심완선 평론가의 따뜻하고도 담담한 시선이 좋았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인터뷰만큼이나 좋은 서문으로]
“문장 하나하나가 아주 좋았어요. 번외편이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추천해 주고 싶은 편이네요!”
“‘우리는 모두 자신을 위한 1인용 맞춤형 타임머신이다.’라는 문장이 심장에 와서 콱 박히네요. 각자의 시간에 맞춰 흘러가며 SF를 보고 느낄 수 있는 편지였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삶을 살아 가는 타임머신이라는 말이 참 좋지요. 책을 읽고 쓰는 행위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나누는 이 모든 과정이 우리 타임머신의 속도와 방향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줄 거예요!

 [나, SF 좋아하냐]
“전 이제 막 SF라는 장르에 물들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최근에 처음으로 이러한 이야기들에 매력을 느꼈고 점차 제 독서 범위를 늘리고 있습니다. 이 책이 나올 때쯤에는 농도 짙은 SF 이야기를 사랑하고 있으면 좋겠네요!”
SF라는 장르가 아직은 생소하신 분들도 있겠지요? 선뜻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조금 어색한 느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 편지를 벌써 여기까지 받아 보신 분이라면 아시지요? SF가 꼭 그렇게 낯설고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을요! 이번 인터뷰의 여섯 작가들이 각양각색이듯 수많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답니다.
오늘 편지의 주인공은 최근 한국 SF의 놀라운 ‘현상’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많은 분들에게 SF로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작품을 폭발적으로 선사하고 있는 작가, 김초엽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곧 나올 인터뷰집 단행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간 여러 상이나 타이틀을 받으셨는데요. ‘올해의 작가’ 같은 거요. 솔직히 자랑스러워하는 타이틀이 있나요? 이건 진짜 기쁘다, 뿌듯하다, 싶은 거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신간알리미 등록’ 기능이 있어요. 그 작가 신간이 나오면 알림을 받는 기능이에요. 제가 신간알리미 등록 1위였어요. 엄청나게 뿌듯한 거예요. 그만큼 누가 날 기다려 준다 싶어서.
 
외부 활동과 글쓰기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겠어요. 강연 등을 집중적으로 겪으면서 경험이 많이 쌓였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재미있었던 경험이 있나요?

강연하면서 들어오는 질문에 답을 잘하면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들어서 재미있어요. 사실 질문이 유사한 경우가 많잖아요. 점점 답변이 척척 나오는 기분이에요. 독자분들 만나는 것도 재미있죠. 한 독자님께 마리모 인형을 선물 받은 적이 있어요. 편지를 넣어주셨는데, 마리모가 행운을 선물하는 의미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살아 있는 마리모를 전하면 생명을 소홀히 다루는 기분이라 인형을 사셨다고요. 너무 귀여운 거예요. 그렇게 소소한 좋은 기억들이 있어요.

 

 

 예상 독자의 모습이 있나요?

지금은 없어요. 예전에는 나름대로 상상했는데, 다양한 독자가 존재한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없어졌어요. 전에는 성인 독자를 주로 상상했는데요. 알고 보니 청소년이나 20대 초반 독자가 정말 많더라고요. 쓰면서 머릿속에 그분들을 앉혀놓고 쓰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생각하는 독자의 모습이 변하긴 했어요.

 

 

 명실상부한 전업 작가이신데요. 작가라는 정체성을 형성한 시기를 꼽아본다면 언제인지요.

저는 직업으로서의 작가 정체성이 확고해요. 데뷔 이후 글로 원고료를 벌면서 조금씩 형성이 됐어요. 대중 독자를 향해 글을 쓰는 직업 작가라고 스스로를 정의해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작가들이 문학의 예술성이나 사회적인 역할을 고민하셨다면, 저는 그쪽은 제게 아직 와닿는 질문은 아니에요. 다른 데서 인터뷰를 하면 작가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많이 질문하시더라고요. 2021년의 작가는 무엇이어야 하느냐고요. 그때그때 생각이 달라져요. 고민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작가가 되어서 좋은 점이 많아요. 창작은 만드는 사람이 주체가 되잖아요. 나의 즐거움과 일이 맞닿아 있어요. 글을 쓰는 게 나의 직업이고, 누군가 나의 글을 기다려 줘요. 되게 만족하고 있어요.
“글을 쓰는 게 나의 직업이고, 누군가 나의 글을 기다려 줘요. 되게 만족하고 있어요.”
 최근 출간한 첫 장편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연재 때와 바뀌었다는 말이 후기에 있었는데요. 주의해서 고친 부분이 있나요?

처음 발표한 버전은 스토리는 같지만 사건의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퍼즐이 풀리지 않은 부분 등이 있어서, 앞에서 던져둔 요소를 다 풀어 내질 못했거든요. 그런 점을 고쳤어요. 그리고 액자식 구성의 이야기잖아요. 액자 바깥에서 아영과 식물 연구원들이 하는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였어요. 도입부가 아쉬워서 많이 수정했고요. 중반부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선공개를 하면 아무래도 독자 반응을 바로 보게 되잖아요. 좋아하시는 부분이 있고 아쉽다고 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이 소설은 연재를 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정식 출간 전에 세세하게 피드백을 받은 거죠. 그걸 보면서 고치니까 저에겐 특이한 경험이었어요. 

식물 생각을 많이 하셨을 텐데, 다른 인터뷰에서 선인장이 인상 깊었다고 하신 걸 봤어요. 자료를 보면서 이거 진짜 재밌다, 혹은 대단하다고 느꼈던 점이 있나요?

우리는 자아에 집착하잖아요. 나는 하나의 사람이고, 내 안과 밖의 경계를 확고히 하죠. 식물은 인간과 달리 개체성이 불분명해요. 인간도 물론 장내 미생물 등이 있지만, 식물은 정말로 미생물과 곰팡이 등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식물끼리 뿌리로 연결되어 네트워크를 이루기도 하고, 그냥 잘라서 심으면 새로운 개체가 되기도 하고요.
죽음의 개념도 인간과 달라요. 죽음이 인간만큼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할까요. 애초에 죽어도 다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서 죽기도 하고요. 예전에 아버지가 꽃에 대해 하신 말씀이 있어요. 꽃이 시들면 사람들이 살리려고 애를 쓰는데, 그냥 보내 주고 다시 새로운 화분을 들이는 쪽이 식물의 생활에 맞는 방식이라고요. 식물의 삶을 보다 보면 우리의 사고방식을 다른 방향에서 보게 돼요.

 연구에 필요한 글과 소설에 필요한 글이 충돌한 적은 없는지도 궁금해요. 학교를 계속 다니셨으니까요. 아니면 반대로 둘이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고요.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논문을 쓴 건 아니어서요. 논문을 제대로 쓰려면 박사과정을 해야 하는데 저는 졸업논문 정도만 썼죠. 아카데믹한 글쓰기와 소설이 충돌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았죠. 자료를 검색하는 방법이나 요약하는 방법에 어느 정도 훈련된 상태라 편했어요.

어떤 분들은 제 글의 어느 부분이 너무 논픽션처럼 읽힌다고 하세요. 소설이면 보통 인물의 시점에서 대화나 행동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야 하는데, 저는 설명이 많다는 거죠. 그런데 그게 제 취향이라 어쩔 수 없어요. 설명이 재미있잖아요. SF 장르의 팬들은 설명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요. 「인지 공간」 같은 작품에서는 시스템을 설명할 때 제일 재미있었어요. 인지 공간에서 수업하는 장면 있잖아요. 설명할 때 정말 짜릿해요. 희열감이랄까.
 
울산 사람으로서
, 울산의 경험을 소설에 넣은 적이 있나요? 캐빈 방정식은 울산 관람차가 배경이지만, 이외에는 없나요?

 

딱히 없어요. 울산은 좀 재미없는 도시 같아요. 20대는 포항에서 많이 보냈고 포항은 약간 애증이 있어요. 싫은데, 캠퍼스에서 걸었던 기억이나 재미있었던 기억이 많고, 거길 벗어나면 다시 싫고. 울산을 떠난 뒤에는 쓸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죠. 곧 이사를 가기도 하고요.

 

“식물의 삶을 보다 보면 우리의 사고방식을 다른 방향에서 보게 돼요.

 작가로서 처음과 달라진 점은?

 

압박감이 덜해졌어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냈을 때는 제 책이 한 권뿐인 거니까, 뭔가 증명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있었죠. 내가 운으로 잘 된 게 아니라고 보여줘야 한다고요. 출판계에는 워낙 한 번 반짝하고 사라지는 사람이 많고, 제가 그렇게 될 수 있잖아요.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었어요. 작년에 책을 여러 권 내면서 그런 압박에서 자유로워졌어요.

 

물론 좋은 작품을 쓰려면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반드시 필요해요. 하지만 증명해야겠다는 초조함이 아니라 나의 내면의 기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나에게 중요한 글을 써야겠다. 나한테 너무 재미있는 글을 써야겠다. 이런 기준점을 찾아가는 일을 전보다 조금 잘하게 됐어요.

 

 현실의 이슈와 닿아 있는 주제를 다루는 소설이 여러 편 있는데요. 예를 들어 단편 「순례자들」에서는 태아를 유전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면서 선별적인 임신중단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배경인데, 장애와 임신중단권을 둘러싼 복잡한 논의를 떠올리게 합니다. 소설에서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초엽 님의 다른 글에서도 그렇고요.

소설가의 장점이면서 비겁한 부분이, 제가 답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거죠. 저는 그래서 소설이 좋아요. 논픽션에서는 제가 어떤 생각인지 잠정적으로라도 결론을 지으려 해요. 반면 소설에서는 결론을 비우려고 하고요.

 

「순례자들」에서 선별 낙태에 대한 릴리의 고민은 김원영 변호사님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 나오는 이야기와 관련있어요. 잘못된 삶이라며 소송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났는데, 산전 검사에서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나를 그대로 태어나게 한 의사가 문제이므로 손해를 배상하라’ 하고요. 여기서 착상을 얻었어요. 많은 부모가 아이가 장애인이면 아예 태어나지 않는 쪽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손상 자체보다 손상을 가진 사람이 불행하게 살도록 하는 사회가 문제라면, 현실에서는 사회를 직접 바꾸기가 어렵지만, SF는 개인이 사회를 바꾸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하잖아요. 그런 사고실험을 해본 거죠.

 

 

 한번 문제를 알고 나면 그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기가 힘들죠. 초엽 님도 장애 당사자로서 경험과 견해가 있으실 텐데, 혹시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입장을 만난 적이 있나요?

 

단편 「로라」가 트랜스에이블을 보고 쓴 글이에요. 흔히 ‘비정상’이나 ‘장애’라고 하는 몸으로 변하고 싶어 하는 사람 이야기죠. 로라는 세 번째 팔을 달고 싶어 해요. 전에 어떤 사람들이 “트랜스젠더가 가능하다면 트랜스장애인도 가능하겠네” 하는 걸 보고 썼어요. ‘트랜스장애인 실제로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았지만 트랜스에이블 사례가 있어요. 장애 당사자들과 충돌하는 경우도 있고요.

 

정체성을 횡단하고 가로지르는 것에 관해 제게 생각을 물어본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할 거예요. 하지만 소설로는 써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트랜스에이블 이야기라고 알아차린 분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냥 가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SF는 범위가 넓은데 특정 이미지만 강조되는 측면이 있죠. 별로일 거라고 지레 꺼리는 분들이 계시고요. 그런 점에서 SF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SF를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SF가 좀 어려운 장르는 맞죠. 진입 장벽이 높아요. 그 장벽을 아무렇지 않게 넘는 분들이 있고, ‘아니다’ 하고 돌아서는 분들이 있고요. 물론 장벽을 낮추는 작품도 많죠. 제 작품도 그런 스타일이고요.

 

어쨌든 나의 취향을 조금 내려놓으면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는 거잖아요. 마음의 장벽 너머에 재미있는 작품이 많을 거란 말이에요. 내가 좋아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작품을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 있죠. 그런 순간이 우리의 세계를 넓혀주고요. 저는 살면서 그런 순간이 매우 즐거웠기 때문에 독자분들에게도 권해 보고 싶어요.

 

 

식물 SF 읽어 봤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나, 땅을 헤집고 다니는 벌레들, 바다와 호수의 조류, 축축한 곳마다 균사를 뻗치는 균류, 아영은 그렇게 느리고 꾸물거리는 것들이 멀리 퍼져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천천히 잠식하지만 강력한 것들,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정원을 다 뒤덮어 버리는 식물처럼. 그런 생물들에는 무시무시한 힘과 놀라운 생명력이, 기묘한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영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요즘 반려식물에 빠진 분들이 많다고 하지요? 아름다운 식물을 가꾸는 시간, 그리고 그 초록색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치유와 위안의 역할을 한다지요. 하지만 또 작은 텃밭이라도 가꿔 본 분이라면 잘 아실 거예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속도와 힘으로 공간을 장악하는 잡초의 강인함을요.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본격 식물 SF라고 할 만큼, 식물의 역할이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류 대멸종 이후 60년이 지난 먼지투성이의 세계에서, 이상한 푸른 빛의 잡초가 증식하기 시작합니다. 멸망 이후의 디스토피아 세계에서도 결국 세계를 다시 구할 수 있는 강인함이란 의외로 천천히 조용하게, 그렇지만 절대 지치지 않고 뿌리와 가지를 뻗어 나가고 씨앗을 뿌려 나가는 식물의 힘뿐이지 않을까요?
빛나는 성취를 이루고 있는 젊은 작가, 그의 첫 장편 소설을 동시대에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행운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우연이 이루어 낸 마법같은 일이니까요. 팬데믹 시대에도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한 김초엽 작가의 첫 장편 소설,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지구 끝의 온실』 (자이언트북스, 2021)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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