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

 

 

청나라 말 북경 찻집의 풍경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자어 ‘중독(中毒)‘의 색다른 쓰임와 함께 편지를 시작해 봐요. 오늘날 ‘중독’하면 ‘스마트폰중독’, ‘쇼핑중독’, ‘약물중독’ 등 물질이나 행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중독’에는 ‘어떤 사상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는 의미도 있어요.

 
2주 전 있었던 ‘중독’ 두 번째 세미나에서 국문학자 노경희 선생님은 바로 이 의미의 ‘중독’ 용례를 제시합니다. 바로 송나라의 유학자 주희가 자신의 학설과 다른 것에 빠진 사람에 대해 ‘중독되었다’라고 표현한 것인데요. 17세기 조선의 사상가 송시열도 이처럼 반대편 사상을 지지하는 학자들을 두고 ‘중독’이라며 비난했다고 하죠. (하지만 노경희 선생님이 꼽은 조선 최고의 중독자는 바로 송시열이었답니다. )
 

하나의 진리가 존재하고 나머지는 모두 ‘독’, 유해한 것이라는 생각은 모두가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오늘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타협점 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온라인의 댓글창을 보고 있으면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요. 

 

그렇지만 모두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된 지는 사실 얼마 안 됐죠. 말 한마디 잘못해 ‘불순분자’로 체포되기도 했던 긴 세월이 있었고요. 이런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서민들의 일상을 보여 주는 희곡 한 편을 소개해 드려요. 중국의 3대 문호로 꼽히는 라오서의 『찻집』입니다. 
 
『찻집』은 1898년 청나라 말부터 1945년 중일전쟁 이후의 시기까지 50여 년의 시간을 다룬 작품인데요. 어지러운 시대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찻집을 찾아와 차도 마시고 여러 소식들을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빈민이 생계를 위해 딸을 팔고, 한마디 말 때문에 누군가 불순분자로 체포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찻집에는 곳곳에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라는 글씨가 붙어 있어요. 
1898년 베이징 찻집의 풍경을 함께 살펴봐요.
막이 열린다. 이렇게 큰 찻집은 이제 거의 볼 수 없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성마다 적어도 한 곳씩은 있었지만 말이다. 여기서는 차도 팔고 간단한 간식과 식사도 판다. 새 기르는 사람들은 매일 지빠귀, 카나리아 들을 놀리고 나서는 여기 와서 다리도 쉬고 차도 마시고 또 새들 노랫소리 자랑도 한다. 사업을 논의하는 사람도, 중매쟁이도 이리로 온다. 그때는 늘 패싸움이 있었으나, 또 늘 누군가 친구가 나서서 화해를 시키곤 했다. 이러니저러니 하고 화해를 시키면, 사오십 명 되는 싸움패들이 모두 차 한잔 마시고 난육면(爛肉麵, 대형 찻집의 특별한 메뉴로 값도 싸고 빨리 나온다.) 한 그릇 먹고, 싸울 일도 평화롭게 끝내곤 했다. 어쨌든 이곳은 매일매일의 아주 중요한 장소여서 일이 있든 없든 와서 반나절쯤 앉아 있을 만하다.


여기서는 어느 곳의 큰 거미가 어찌어찌 요정으로 변했다가 벼락을 맞았다든가 하는 가장 황당한 소식도 들을 수 있다. 또 해변에다 큰 담을 쌓으면 양놈 군대가 뭍으로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괴상한 견해도 들을 수 있다. 여기서는 또 어떤 경극 배우가 최근에 무슨 새로운 작품을 공연했다는 것이라든가, 아편을 만드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등에 관해서도 들을 수 있다. 또 누가 새로 얻은 진귀한 물건 — 새로 출토된 옥 부채 장식이나, 당삼채 코담배 단지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여긴 정말 중요한 곳이며, 심지어 문화 교류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러한 찻집을 보고 있다.


문을 들어서면 바로 계산대와 화덕이다. — 일을 좀 덜기 위해, 우리의 무대에는 화덕을 두지 않아도 된다. 뒤에서 냄비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정도면 족하다. 실내가 아주 높고 넓어서, 길거나 네모난 탁자들, 길고 짧은 등나무 의자들이 놓여 있으니, 모두 차 마시는 곳이다. 창 너머로는 후원이 보이는데, 높이 차양을 쳐 놓고 그 아래에도 탁자들을 놓았다. 실내와 차양 아래에 모두 새장 거는 곳이 있다. 또 곳곳에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라는 글씨가 붙어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손님 둘이 한창 눈을 게슴츠레 뜨고 고개를 끄덕여 가며 박자에 맞춰 나지막이 창을 하고 있다. 역시 이름을 알 수 없는 두어 손님은 질항아리에 든 귀뚜라미를 넋을 놓고 들여다보고 있다. 회색 장삼을 입은 두 사람 — 송은과 오상이 나지막한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보아하니 그들은 관에서 나온 특무인 듯하다.


오늘 또 한 무리 패싸움을 한 자들이 있다. 듣자 하니, 한 마리 집 비둘기 때문에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분쟁이 생겼다 한다. 정말 싸울라치면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싸우기로 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궁궐 수비대와 국고 수비대 병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모두 만만찮은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말 싸우게 되지는 않았으니, 쌍방이 싸울 사람들을 다 정하기 전에 조정자가 나타난 까닭이다. — 지금 쌍방이 여기서 만나는 중이다. 수시로 둘씩 셋씩 싸울 사람들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무술을 하는 이들의 간소한 복장으로 들어와 후원 쪽으로 간다.


마 대인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는 구석에 혼자 앉아 차를 마신다.


찻집 주인 왕씨는 높직한 계산대에 앉아 있다.


당철취가 신발을 탈탈 끌며, 아주 길고 아주 더러운 긴 홑웃옷을 입고 귀 뒤에는 돌돌 만 종이쪽지 몇 장을 끼고 들어온다.
 
 
 
─ 라오서, 오수경 옮김『찻집』, 15~18쪽에서
 
 

표지의 무대 사진과 상세한 무대 묘사를 함께 보니 규모가 크고 웅성웅성 이야깃소리가 들리는 찻집의 모습이 그려져요. 그 경쾌함으로 미처 가려지지 못한 긴장감도 느껴지고요. 그저 잘먹고 잘살고 싶은 소시민부터 혁명에 투신하는 젊은이, 다양한 계급 출신의 사람들이 모인 찻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찻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희곡이니 분명 갈등이 폭발할 텐데…… 책을 펼쳐 보니 이런 대사가 보여요. 세 노인이 그동안 살아온 괴로움을 토로하는 대목인데요.
왕이발   사람은 어쨌든 살아야 하잖소? 내가 온갖 방법을 다 쓰며 여기까지 온 것도 다 살기 위해서 아니었겠소! 그래요, 뇌물 줘야 할 땐 봉투도 내밀고. 그래도 난 정말 못된 짓이나 도리에 어긋난 짓은 해 본 일이 없다고요. 그런데 왜 살아갈 길까지 막는 거지? 내가 누구에게 잘못했나? 대체 누구에게? 황제인지 마마인지 그 개 같은 연놈들은 잘만 사는데, 난 찐빵 하나 제대로 먹을 수 없으니, 어떻게 된 셈판인가 말이오?
상 대인   바라고, 바라고, 그저 다들 옳은 거 옳다 하고 남 속이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살기를 바랐는데, 내 두 눈으로 친구들 하나하나 굶어 죽지 않으면 잡혀 죽는 꼴을 보게 되니, 이젠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오! 송 대인 그 친구는 굶어 죽었소. 관짝도 없어서 내가 구걸을 하다시피 하여 마련해 줬지! 그는 그래도 나 같은 친구라도 있어서 널판 관짝이라도 마련했지만, 나는? 난 우리 나라를 사랑했어. 그런데 누가 날 사랑해 주지? 보게, (광주리에서 지전을 꺼내며) 장사 치르는 집을 만나면, 지전 몇 장 집어 두었지. 수의도 없고, 관짝도 없고, 지전이나마 좀 준비해 두려고, 허허, 허허!
진중의   상 대인, 우리 스스로 제사나 지내 둡시다. 지전 뿌려서, 우리 세 늙은이 몫으로!
─ 라오서, 오수경 옮김『찻집』, 111~112쪽에서
 
 
 

‘늙은이’ 상 대인은 자기 제사를 손수 준비하려고 상을 치르는 집에 갈 때면 지전을 슬쩍해 뒀다고 하네요. “난 우리 나라를 사랑했어. 그런데 누가 날 사랑해 주지?” 이런 대사라뇨.  흔히 정치 중독이라는 표현을 쓸 때는 자기 자신을 잃을 만큼 온갖 뉴스에, 중앙 정치의 소용돌이에 빠진 사람들을 가리키는데요. 세 사람의 말에서는 나랏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란 “찐빵 하나 제대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이라는 게 드러나요.

휴…… 찻집에 애초에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라고 붙어 있는 이유가 있겠죠. 모이면 그 얘기를 도저히 안 할 수 없으니까 아니겠어요! 저도 요즘 자꾸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정치, 선거, 대통령, 한국 등이 계속 떠오르는데요. 그 거대한 에너지도 그렇지만, 모든 것이 한 곳으로 소용돌이처럼 빨려 들어가면서 많은 이야기들이 휘발되고 또 어떤 목소리는 묻혀 버리고, 이런 과정 역시 충격으로 남았네요. 남들과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피곤함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결국 정치란 폭력이 아니라 말과 설득을 통해 결정된다는 말도 떠오르고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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