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누군들 집주인이 되고 싶지 않으랴!

 

 

조물주 위의 건물주, 될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편》 ‘중독’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부동산중독’을 생각하며 읽어 보면 좋을 세계문학전집 소설 한 권 추천할게요! 프랑스 작가 외젠 다비의 『북호텔』을 함께 읽으며, ‘세입자가 아니라 집주인이 되고 싶은 마음’을 들여다봐요. 

《한편》 ‘중독’에서 지리학 연구자 정진영의 글 「집으로 돈 버는 세계에서」는 ‘쪽방, 고시원, 반지하와 같은 열악한 주거 공간이 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공급자(건물주 혹은 집주인)의 사정을 들여다봅니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가 아니라, 세입자보다 조금 나은 처지의 ‘가난한 집주인’은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요? 
 

세입자의 가난, 공급자의 가난
 
자금이 넉넉지 않아 적정주거의 집주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비적정주거로 눈을 돌린다. 부동산 투자 관련 팁을 알려주는 책이나 영상은 비적정주거가 매력적인 대안이라고 말한다.
“반지하에도 분명 사람은 살고 있으며, 누군가는 살게 되어 있다. (……) 가진 돈은 적지만 투자는 꼭 하고 싶다면, 반지하는 선택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 이재범, 『부동산 경매 따라잡기』(글수레, 2019), 261쪽에서
실제로 반지하를 매입한 투자자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200~300만 원 받는 월급쟁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물건은 1억 미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정가가 1억 미만이 아니고 입찰할 수 있는 그 구간대가 1억인 물건들을 찾았어요. (……) 싸게 받는 걸 제가 한번 전체적으로 부동산을 검색을 해 봤는데 그중에 눈에 들어오는 게 반지하가 있었어요.”
─ 유튜브 후랭이TV, 2018년 8월 6일, ‘반지하 빌라에 투자해도 괜찮을까?ㅣ반지하 빌라 장점ㅣ반지상 2부’에서
세입자의 가난과 동시에 공급자의 상대적 가난은 주거 공간의 비적정성을 유지하면서 이러한 공간을 증가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이들은 비적정주거 매입 후 해당 공간을 약간 보수하여 임대 수입을 얻는다. 보수를 거의 하지 않고 재개발, 재건축을 기다리며 개발 이익이 실현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비적정주거를 사고팔고 임대하는 실천이 비적정주거를 유지하고 순환하는 동력이 된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집주인들은 위험과 부담에 직면한다. 주택 시장은 늘 불안정성을 동반한다. 집이 팔리지 않을 가능성, 임대되지 않을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가운데, 하자 상품을 보유한 집주인들이 그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다. 상품과 비상품의 경계에서 열악한 환경의 집일수록 팔리거나 임대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지하 상품이 임대되지도 팔리지도 않을 때 그 부담과 불안을 오롯이 떠안는 사람은 집주인이고, 가난한 집주인일수록 심해진다. 정부에서 빚내서 집을 사는 것을 권장했고, 집주인이 되면 노후 걱정은 없다고들 했지만, 위험은 개인이 진다.
 
 
─ 정진영, 「집으로 돈 버는 세계에서」,
《한편》 7호 ‘중독’ 177~179쪽에서

외젠 다비의 소설 『북호텔』의 첫 부분은 바로 이 ‘가난한 집주인’의 마음이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1920년대 파리 외곽 남루한 호텔을 운영하는 가난한 노부부와 그곳 세입자들의 사는 모습을 다룬 이 소설은 작가의 부모가 실제 운영했던 호텔을 배경으로 했다고 해요.

평생 남의 밑에서 일하고 남의 집을 빌려 살았던 에밀과 루이즈 르쿠브뢰르 부부는 호텔을 인수해 방세를 받으며 살면 노후가 편안하리라 생각하고, 매물로 나온 ‘북호텔’을 보러 갑니다. 그들은 더럽고 열악한 상태의 방에 경악하는 한편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이 돌아가는데요…… 
 

호텔 안을 두루 살펴보는 일이 시작되었다. 2층으로 올라가려면 좁고 곧은 계단을 통해야만 했다. 한가운데 빛이 새어 드는 들창에서 계단은 굽어 있었다. 층계참부터 복도가 펼쳐졌고 그 복도에 줄지어 붙은 방들이 보였다. 광선이 조그만 안뜰에서 흘러 들어오고 있었으나 사람들이 구름다리로 뜰을 넘어서자 복도는 컴컴했다.
에밀 르쿠브뢰르는 걱정이 돼서 말했다.
, 여보시오……. 터널 속에 들어온 것 같은데요.”
캄캄해서 방문에 있는 방들의 번호도 읽을 수가 없었다. 구테 씨는 지금은 2월이니까 해가 빨리 져서 그렇지만 여름이 되면 복도는 아주 밝은 데다가 눈이 부시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거기다가 전등이 여기저기 있고…….” 구테 씨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화장실에도 전등이 있으니까요.”라고 했다.
루이즈 르쿠브뢰르는 방을 보여 달라고 말했다.
구테 부인은 약간 새침하게 대답했다.
물론 보여 드리죠. 방은 아주 밝아요……. 여보, 필립, 당신이 열쇠를 갖고 있죠?”
구테 씨는 닥치는 대로 방문을 하나 연 모양이었다. 방이 하도 협소해서 겨우 한 사람밖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은 여섯 명이 차례차례 들어가기로 했다. 루이즈 르쿠브뢰르는 그 방을 두루 살피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회색빛 광선이 찢어진 커튼에 스며 있었고 퇴색해서 바래 버린 꽃무늬 벽지는 벽을 서글프게 장식하고 있었다. 칠하지 않은 나무로 만든 침대는 장롱과 세면대 사이에 비좁게 끼어 있었다. 쓰레기통 옆에는 헌 신 한 켤레가 버려져 있었다. 협소하고 궁상맞고 냄새나는 그곳은 불쾌감을 일으켰다. 루이즈 르쿠브뢰르는 얼른 그곳에서 뛰쳐나왔다. 루이즈는 지금 본 그 방만으로 충분했다.
에밀 르쿠브뢰르는 이 정도의 궁핍쯤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전쟁 통에는 그보다 더 심한 궁핍을 겪어 보지 않았던가? 또한 방세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게 아닌가. 글쎄 그 가격으로 더 이상 어떤 것을 제공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곳곳의 더러움도 숙박하는 사람들이 청결이라는 데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닌가. 이러한 불편이 결코 숙박인들을 불쾌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숙박인에게 방이란 무엇인가? 잠을 자기 위한 곳 아닌가. 그 이상은 아니다.
구테 씨가 말을 걸어왔다.
, 그리 어렵게 생각 마세요. 곧 습관이 되어서 살 수 있게 될 겝니다. 이 고장은 공장 지대여서 착실하고 돈 잘 치르는 노동자들만이 고객이랍니다. 하지만 방세를 외상으로 밀리게 해서는 안 되죠. 그러면 이 장사는 망합니다……. 집의 겉모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신통치가 않지요……. 깨끗한 칠을 멋지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요새 같아서는 잠깐 묵는 손님들뿐이라 초벽 칠 값을 치를 수입밖에 안되지요……. 여기 손님들은 노동자들, 젊은 처녀들, 그리고 4층에 살림살이하는 부부들, 물론 아이들은 없죠……. 아주 알뜰한 가족이죠……. , 잊어버렸군요. 또 있어요. 노인들이 몇 있는데 일생을 이 호텔에서 지내려는 사람들이죠.”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제기랄, 그 늙은이들 어떻게나 궁한지 방세를 올려 받을 수도 없어요.”
 
─ 외젠 다비원윤수 옮김북호텔』, 8~10쪽에서 

가진 자본이 부족하다면, 좋지 못한 상태의 ‘상품’, 하자가 있는 ‘상품’을 살 수밖에 없겠죠. 게다가 방세를 걷어 편안한 노후를 살고 싶다는 게 아주 특별한 욕망인 것 같지도 않고요. 부부는 그렇게 일종의 ‘비적정주거’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북호텔을 인수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집주인이 되어 돈을 벌고 싶어 하지만 애초에 승리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라는 정진영 연구자의 지적처럼, 이들 부부가 북호텔을 통해 무사히 연금을 받는 편안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을지는……? 여러분은 어떤 결말이 예상되시나요?
루이즈는 그러한 환경에서의 생활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이상한 일에 부닥치고 마는 것이나 아닐까? 아냐! 어떠한 생활이라도 살아 볼 만한 값어치는 있는 것이야. 그리고 미지의 세계란 노상 재미없고 해로운 것도 아니니까. 우리들은 여태껏 지나칠 만큼 경멸을 당해 왔다. 왜냐하면 지붕 밑 셋방에서 생활을 해 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친척 친지라곤 아무도 없는 가난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어. ‘모든 것이 다 변할 거야, 이제부터는.’ 하고 그녀는 생각한다.
르쿠브뢰르는 눈을 떴다. 아주 멋진 꿈을 꿨다. 그들이 제마프 둑에 이사를 하자마자 그의 호텔은 찾아드는 손님들로 비좁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호텔을 증축했다. 르쿠브뢰르는 이 길조에 미소를 띠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은 상쾌하고 자신감이 가득 차올랐다. 밤이 그렇게 조언을 하였던 것이다. 그 집을 사도 좋다고!
9시에 그는 부동산 중개인 집에 도착했다.
중개인 메르시에 씨가 정직한 사람이어서 다행이었다. 읽으라고 내보여 준 서류들을 거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도 계약서에 이르러서는 더욱 막연하고 복잡해서 열네 개의 조항의 문구가 정말 알아볼 수 없는 글씨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는 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불안을 털어 버리기나 하듯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진땀이 솟고 있었다. 드디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참담해진 그는 모든 것에 합의를 보고 계약을 하고 말았다.
메르시에 씨는 일어나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아, 이제 당신은 주인이 됐습니다……. 노다지지요. 그 호텔은…….”
그래요! 나도 처남의 돈을 떼먹지 않게 되도록 바라고는 있습니다만.”
그 계약의 중대성은 그의 정신을 뒤집어 놓았다. 메르시에 씨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8년이 지나기 전에 당신은 연금을 받는 사람이 될 겁니다…….”
─ 외젠 다비원윤수 옮김북호텔』, 18~20쪽에서 

민음사
1p@minumsa.com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1길 62 강남출판문화센터 5층 02-515-2000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