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결국은 사람을 만나는 일


신간 『나의 덴마크 선생님』 이야기

$%name%$ 님, 안녕하신가요? 코로나19바이러스가 대유행한 지도 2년이 넘었습니다. 오미크론 변이로 대유행이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요즘 불안하고 힘드네요. ‘어떤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괜찮지, 어떤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괴롭지’ 하는 생각을 그만두고 그냥 힘들다! 도대체 이 모든 게 언제 끝나지? 하는 시기예요. 팬데믹 시기를 지탱하는 배움을 구하는 마음이 됩니다. INTP 편집자를 울게 하는 소중한 신간 『나의 덴마크 선생님』의 한 대목을 《한편》 ‘중독’과 함께 읽어요.

청소년 약물 중독
치료센터

“덴마크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나라예요. 그래서 이 나라 젊은이들은 실패했을 때 온전히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이나 불공정한 사회 구조를 탓할 수가 없는 거죠.” 
헬싱외르 청소년 약물 중독 치료센터에서 일하는 플래밍 씨의 말이다. 지금 육십 대인 그는 젊은 시절 교사로 일하다가 치료사로 직종을 전환했다고 한다. 
“어림잡아 덴마크 청소년 열두 명 중 한 명이 마약 중독
과 관련한 문제를 겪고 있어요. 심각한 편이죠. 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잊기 위해서예요. 센터 사람들은 약물 중독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결국은 사람을 만나는 게 이 일의 핵심이에요. 
우리는 아이들이 마약을 끊게 돕지는 못해요. ‘끊어야 해!’라고 말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자기 일상을 잘 꾸려 나갈 수 있도록 도와서 건강한 삶을 되찾는 것이 목표예요.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학교와 협의 후 이곳에 와서 공부를 계속하고 졸업까지 할 수 있어요. 수업을 듣고 식당에서 밥도 해 먹을 수 있죠. 만약 한 아이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센터에 오면 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요.
아이는 아침부터 부모님이 자기한테 화를 냈다고 해요. 이야기를 더 하다 보면 아이가 늦잠을 잤고, 어젯밤 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을 했다는 걸 알게 되고요. 아이는 자연스럽게 오늘 아침이 엉망이 되어 버린 이유를 발견하게 되지요. 친구 관계에서 생기는 어려움도 마찬가지예요. 함께 이야기하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 갈 수 있어요.” 
센터를 찾은 학생 중 50~80퍼센트는 다시 자기 삶을 찾아 간다. 보람 있는 일이라는 말이 맞으리라고 생각한다. 평생을 이 일로 보낸 그의 느릿한 말투에서 연륜과 느긋함이 비쳤다. 나는 귀가 시간 넘게 기숙사에 돌아오지 않는 학생을 찾아 피시방이 있는 면 소재지를 향해 꼬불꼬불한 지리산 길을 운전해 가던 때를 떠올렸다. 게임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또 피시방에 가 버리고 마는 학생과 소통하는 일이 당시 교사 생활의 큰 과제였다.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등교한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기는 나도 일상적으로 했던 일이다. 아침이면 반 학생들과 매일 차를 마시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 해도 있었다. 
3층 규모의 약물 중독 치료센터에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소파와 휴게 공간이 곳곳에 있다. 지하로 내려가니 앞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적힌 알록달록한 쪽지가 가득 붙어 있다. 실행에 옮긴 활동이 적힌 종이들은 다른 칸으로 옮겨 붙인다. 반대쪽 벽에는 단풍 든 오솔길 풍경이 담긴 커다란 사진이 벽지처럼 붙어 있고, 그 앞에 연보라색 쿠션이 얹힌 자주색 소파가 있다. 소파 옆에 자그마한 나무 불상이 하나 앉아 있기에 플레밍 씨에게 물어보았다. 
“여기에서 명상도 하나요?” 
“네, 직원 중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어서요.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요.” 
작은학교에서도 학생들과 명상을 했다. 작은학교에서는 이곳에서 하고 있는 대부분의 활동을 했다. 그런데도 나는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나는 그 이유가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은 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 정혜선, 『나의 덴마크 선생님』, 149~151쪽에서

덴마크와 한국을 오가며 팬데믹 시기를 지탱하는 배움을 얻은 저자의 기록인데요. 한국에서는 선생님이었던 저자가 학생들과 문제를 풀지 못한 이유로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고 확인하는 부분이 기억에 오래 남아요. 
그런데 떠들썩한 모임도 없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기회도 거의 없는 팬데믹 시기에 어떻게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새로운 취미를 만든다, 봉사 활동을 알아본다, 외국어를 배우러 간다(어디로?) 같은 모범 답안을 떠올리며 집에서 ‘나는 솔로’만 봤네요. 엠티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비대면 상황에서 어떻게 사람을 만나죠?”

한때 저녁 8시에 시작해서 아침 8시에 컴퓨터 전원을 끄는 게임에 빠진 생활을 해 본 적이 있는 저로서는 함께 이야기하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다”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저도 그렇게 함께해 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더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사회적 에너지가 빨리 소진되는 편이라 현재의 비대면 상황이 편한 저이지만… 결국 사회적 동물이라 그런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문득 외롭다는 생각도 들었어요요즘은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SNS로 소통을 하곤 해요이따금씩 온라인 미팅 프로그램을 활용해 각자 맥주 한 캔 챙겨서 수다를 떨기도 하구요 그래도 역시 사람은 직접 마주 봐야 좋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혼자가 편한 것 같기도해요) 

덴마크에서 청소년 약물 중독을 치유하는 과정을 보며, 아이들과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소통하는 것에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 인상 깊어요. “맞아, 결국은 다 사람 만나는 일이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솔직히 저는 팬데믹 시기 이전부터 ‘비대면’을 선호했어요. 아무래도 제 모임의 주는 만나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 영화 등 작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온갖 망상을 곁들인 수다 떨기여서 그럴지도 몰라요.  항상 온라인에서 사람들과 소리 없이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실은 올해 4~5월에 오픈 에정인 민음북클럽에서도 커뮤니티를 개설하기로 했어요. 민음북클럽 회원만 입장과 활동이 가능한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할 예정이에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낼 밀도 있는 재미와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답니다! 부디 한편 뉴스레터를 읽는 독자분들 중에도 이 공간에 중독되실 분이 나오길 바라며…….

온라인으로 맥주 마시기, 온라인으로 책 읽기! 저도 내내 하고 있는데,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원하는 건 비대면 모임 개수 늘리기라는 점이 분명해졌어요. 망상에 빠져 밤잠 설치는 마케너 님이 영업하신 민음북클럽 커뮤니티에 저도 잠입해…… 여러 분들과 접촉면을 넓혀 갈 계획입니다. 그리고 무슨 수단을 동원해도 해결되지 않는 고통은 “묵묵히” 버티고요. 

덴마크 세계시민학교(IPC) 전경

IPC 교사들의 고민 
교사회의는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풀어 가는 장이다. 선생님들은 학생들과의 고민을 나누며 지혜를 구한다. 언젠가 한 선생님은 이런 의견을 냈다. 
“동성애자인 친구가 방을 함께 쓰는 룸메이트의 눈치를 보며 위축되어 있는 것 같아. 룸메이트는 성소수자 인권에 열려 있는 사람이 아니고, 그도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는 성격이 아니라서 움츠러들어 있어. 나는 우리 학교에서 학생이 자신의 성적 지향 때문에 떳떳하지 못한 것은 용납이 안 돼.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면 좋을까?” 
그러자 다른 선생님이 말했다. 
“그 학생이 성적 지향 때문에 위축되어 있다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어? 단지 느낌만을 가지고 무언가를 한다는 건 섣부르지 않을까?” 
처음 문제를 제기한 선생님이 말한다. 
“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전교생을 대상으로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다시 하는 건 어떨까? 내가 맡아서 진행해 보고 싶어.” 
또 다른 선생님은 담임 학생 하나가 아침에 늦잠을 자서 청소 시간에 못 나오는 것이 고민이었다. 한 학생이 불참하는 일은 콘택트 그룹원 전부에게 영향을 미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유럽 학생들은 누군가 청소 시간에 나오지 않더라도 크게 마음 쓰지 않고 자기가 맡은 일을 했고, 한국과 일본 학생들은 자신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그룹원을 바라보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 IPC 생활이 1년쯤 되니 문화권에 따라 다른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늦잠 자는 학생에 대한 고민에 한 선생님이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작년까지는 학생 방으로 직접 찾아가서 깨웠는데, 그 방법이 영 신통치가 않아서 올해부터는 늦잠 자는 학생과 친한 친구를 방으로 보낸다. 때로는 학생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누가 너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니? 네가 청소 시간에 나오도록 도와주기에 적합한 친구는 누굴까?” 
어떨 때는 학교가 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일은 교사라는 사람의 한계를 훌쩍 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덴마크 교사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줄 수 있는 도움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어떻게 그의 큰 고통을 치유할 수 있을까.” 
그들도 그런 날들을 묵묵히 살아 내고 있었다.
― 정혜선, 『나의 덴마크 선생님』, 286~287쪽에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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