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좋은’ 중독이 있을까?

 

 

몰입과 중독 사이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정지음 작가님의 『젊은 ADHD의 슬픔』과 함께 레터를 시작해 봐요. 『젊은 ADHD의 슬픔』 은 성인 ADHD인 저자가 자신의 질병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 낸 에세이인데요. 저자가 ADHD 진단을 받게 된 계기는 바로 흡연중독이었다고 합니다. 

맨 처음 나를 정신과로 이끈 건 흡연 문제였다. 몹시 어릴 적부터 담배를 피웠는데 일단 시작하자 어느 순간에도
끊을 수 없었다. 나는 중독 성향을 경계했다. 동시에 중독을
경계하면서 중독되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흡연으로
인해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자 담배 따위를 떨쳐 내지 못하는 인생이 누추해 보였다. 

돌이켜 보면 흡연보다, “담배를 끊느니 널 끊겠다.”라며
패악을 부린 게 나빴다. 그러나 그는 갔고 나는 재떨이가 된
기분으로 혼자 남았다. 내 계획은 애인과도 담배와도 멋지게 이별해 가벼워지는 것이었으나 홍수 같은 흡연 욕구를
몇 시간도 참아 낼 수 없었다. 굳게 결심할수록 구리게 실패하는 삶 때문에 결국 정신과를 찾게 되었다.
가면서도 정신과가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가는 곳인지 잘 몰랐다.(궁금하지도 않았다.) 방문도 충동적이었고 내
안의 정신과 이미지 역시 부정확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는 그곳을 대충 ‘음울한 사람들의 마법 상점’ 정도로 여겼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믿기로 하면 비타민이든 홍삼캔디든 쥐여 주는 곳 말이다. 
 
첫 방문 때는 오히려 ADHD
얘기가 곁다리였다. 내 상상 속 ADHD는 어쩐지 알레르기
같은 느낌이었다. 개인 체질이지만 조심하고 약을 복용하면
어떻게든 피할 수 있고, 자극원과 멀어지면 병증과도 안녕일 것 같았다. 그래도 내게 무슨 병이 있다면 약을 쓰고 싶었으므로 상담 직전 전반적인 삶과 애로 사항을 글로 적어
갔다.
“혹시 제가 ‘그거’라서 담배를 끊기 어려운 건가요?” 묻기 위해서였다. 그때 ADHD가 아니라는 확신이 필요했던 건지, 아니면 너무 ADHD여서 금연 또한 노력의 문제가 아님을 확인받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담배를 못 끊는
이유는 궁금했고, 삶을 통틀어 내가 ‘매번 왜 이러는 건지’도 궁금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보고 정지음 님은 담배를 끊는 것
보다 ADHD 쪽이 훨씬 문제 같다고 했다. 자세한 건 검사를 해 봐야겠지만 거의 확실해 보인다는 진단이었다. 그리고
금연 약 따윈 없다고 못 박았다. 굳이 찾자면 비슷한 뭐가
있긴 한데, 다른 용도로 쓰이는 약의 부작용을 작용으로 삼을 뿐 해결책은 못 된다는 거였다.
 
―정지음, 『젊은 ADHD의 슬픔』, 29~30쪽에서

‘중독을 경계하면서 중독되는 것에 익숙해졌다’라는 표현에 무척 공감하게 되네요. 나의 문제를 ADHD라는 이름으로 정의해 버리고 싶은 욕망과 정상이라는 진단을 받고 싶은 바람을 오가는 마음도요. 여하간 진단 결과 담배를 끊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뇌에 있었고, 그렇게 치료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지음 작가님은 인터뷰에서 글을 쓰게 된 계기로 ‘스마트폰 중독’을 꼽기도 했어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면 생산적인 일을 해 보자! 결심하고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요. 스마트폰에 자꾸 손이 가지만 유튜브로 고양이 영상만을 보는 저에게 생산성은 멀기만 한데요. 무엇이든 중독되는 마케터님께 여쭤보고 싶어요. 좋은 중독도 있을까요? 

“‘좋은 중독도 있을까요?”

네…… 저는 뭐든 잘 중독되는 편입니다. 쇼핑중독, 유튜브중독, SNS중독, 탄수화물중독…… 끝도 없어요. 처음엔 이런 중독들을 그냥 끊어 내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고 늘 실패만 거듭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스마트폰중독을 글쓰기로 승화시킨 작가님처럼 저도 중독이라는 에너지 흐름들에 작은 생산성 장치들을 더했어요. 그러고 나니 죄책감과 집착을 조금씩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쇼핑하고 리뷰 남기기, 유튜브 시청 후 트렌드 파악하기, SNS중독이면 나도 포스팅으로 참여하기, 요리 직접 해 먹기 등등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중독과 몰입의 양상이 어느 정도는 닮아 있는데요. 좋은 중독의 힌트가 거기 있지 않을지!

중독이라는 에너지 흐름에 생산성 장치를 더한다는 관점이 좋아요. 게다가 마케터님의 많은 중독들은 일과 이어지기도 하네요. 

저도 중독이라는 키워드를 처음 봤을 때 ‘몰입’이란 단어를 떠올렸어요. 한편 7호 ‘중독’에 실린 글 「불멸에 이르는 중독」에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사상가부터 돌, 책, 여행, 그림 등에 빠졌던 이들까지 18세기 조선의 다양한 중독자들이 등장하는데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나를 무너뜨리는 것과 나를 지탱하는 것, 독과 약은 정말 한끝 차이일 수 있겠다 싶어요.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한편, 중독될 만큼 기꺼이 빠져드는 것에서 뭔가를 해 볼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을 것 같고요. 저도 중독 행위에 작은 ‘생산성 장치’들을 어떻게 더할지 고민해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