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결혼, 꼭 해야 할까?


로맨스 서사의 끝판왕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결혼, 꼭 해야 할까요? 요즘은 이런 질문도 너무 낡은 것 같죠. 그렇지만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19세기 당시 영국 여성의 삶에서 결혼이란 엄중한 현실로, 도저히 흔들리지 않는, 어떤 질문도 던질 수 없는 단단한 기반과도 같았지요. 그 유명한 『오만과 편견』 속 인물들이 나날이 대면해야 했던 ‘여성의 삶이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촘촘한 질서의 면면을 함께 살펴보아요.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여보, 네더필드 파크에 세 들 사람이 정해졌다는 소식 들으셨어요?” 어느 날 베넷 씨의 부인이 남편에게 물었다. 베넷 씨는 못 들었다고 대답했다.

“정해졌답니다.” 하고 베넷 부인이 말을 받았다. “롱 부인이 방금 왔다가 다 이야기해 주고 갔다고요.” 

베넷 씨는 대꾸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지 알고 싶지 않아요?” 부인은 조바심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말하고 싶은가 본데, 못 들어줄 거야 없소이다.”
이 정도 반응이면 충분했다.

“글쎄 여보, 당신도 알아둬야지요. 롱 부인 말로는, 네더필드 파크에 들어오기로 한 사람은 잉글랜드 북부 출신 청년이라는데, 대단한 재산가래요. 월요일에 사두마차(四頭馬車)로 와서 집을 둘러봤는데 아주 만족해하며 바로 모리스 씨와 계약했대요. 미가엘 축일(9월 29일이며, 대개 가을이라는 뜻 ― 옮긴이) 전에 입주하기로 했고, 다음 주말까지는 하인들 몇이 먼저 와 있기로 했대요.”

“이름은 뭐라고 합디까?”

“빙리랍니다.”

“기혼이요, 미혼이요?”

“아유! 여보, 미혼이에요, 아무렴요! 갑부 총각이라고요. 연 수입이 4, 5천은 된대요. 우리 애들한테 얼마나 잘된 일이에요!”

“아니 왜? 그 애들하고 무슨 상관이기에?”

“아이 참 한심한 양반이네!” 하고 부인이 대꾸했다. “그 총각이 우리 애들 중 하나랑 결혼할 거라는 소리지요, 뭘.”

“그럴 속셈으로 이리 온다는 거요?”

“속셈이라니요! 세상에, 어떻게 그런 말을! 그렇지만 뭐 우리 애들 누구하고 연애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이사 오는 즉시 방문하셔야 해요.”

“내가 가야 할 이유가 없지. 당신이 애들을 데리고 가보든가, 아니면 애들끼리 보내든가 하구려. 그래, 그게 훨씬 낫겠군. 당신 미모야 애들 못지않으니, 빙리 씨가 당신을 제일 마음에 들어하면 어떻게 해.”

“여보, 괜히 치켜세우지 마세요. 저도 뭐, 미모라면 빠진 적은 없지만요, 이젠 어디 빼어난 미모라고까지야 할 수 있나요. 다 큰 딸이 다섯이나 되는 여자라면 자기 미모야 접어두어야지요.”

“그런 경우엔 접어둘 미모도 없는 여자가 대부분이지.”

“아무튼 여보, 빙리 씨가 이사 오면 꼭 찾아가 인사를 해야 해요.”

“그런 약속은 못하겠으니, 그리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 딸들을 생각해야지요. 걔들한테 얼마나 훌륭한 결혼이 될지 한번 생각해 봐요. 윌리엄 루카스 경 내외분도 방문할 작정입디다. 순전히 그런 이유로 말이에요. 당신도 아시잖아요, 그분들이 새로 이사 온 사람 집에 좀처럼 방문하지 않는 거 말이에요. 정말 가셔야 해요, 당신도 안 가는데 우리끼리 찾아갈 순 없잖아요.”

“당신 너무 소심하구려. 내 장담하지, 빙리 씨는 당신을 보면 반가워할 거고, 또 내가 당신 편에 몇 자 적어 보내겠소. 우리 딸과 결혼하는 데 진심으로 동의한다, 그중 누구를 골라잡아도 된다고 말이오. 귀염둥이 리지를 추천하는 말 한마디쯤 더 끼워 넣게 되겠지만.” 
“제발 그러지 마세요. 리지가 다른 애들보다 나은 데가 어디 있어요? 제인 반만큼도 예쁘지 않고, 리디아 반만큼도 사근사근하지 않은데. 그런데도 당신은 언제나 리지만 편애하시니.” 
“걔들한테는 뛰어난 구석이 하나도 없소. 하나같이 다른 집 애들과 매한가지로 어리석고 무식해. 그렇지만 리지는 제 동기들보다 영리한 데가 있거든.” 베넷 씨가 대답했다. 
“여보, 어쩜 우리 아이들을 두고 그렇게 마구잡이로 말하세요? 날 화나게 하는 게 재미있나 보죠? 내 약한 신경이 불쌍하지도 않나 봐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부인. 내가 당신 신경을 얼마나 존중하는데. 나한텐 오랜 벗이지. 신경증이 도진다 소리에 측은해한 지도 어언 20년은 되었지, 아마.” 
“아! 당신은 몰라요, 내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하지만 부디 그 고통을 이겨내서 연 수입 4천짜리 젊은이들이 근처로 많이 이사 오는 걸 볼 때까지 살아 있도록 해요.” 
“그런 젊은이 스무 명이 와도 우리한테 무슨 소용이 있나요, 당신이 방문도 안 할 텐데.” 
“그럼 내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스무 명이 되면 한꺼번에 다 방문하겠소이다.” 


베넷 씨는 재기, 냉소적인 기질, 내성적 성격, 변덕 등이 워낙 기묘하게 뒤섞여 있는 사람이라, 23년을 겪어보고도 그의 부인은 남편의 성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인 편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다. 그녀는 이해력이 떨어지고, 아는 것도 없고, 기분이 들쭉날쭉한 여자였다.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는 신경증이 도진다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그녀 평생의 사업은 딸들을 출가시키는 것이고, 낙이라고는 이웃집을 방문해서 수다 떠는 것이었다. 
베넷 씨는 빙리 씨를 가장 먼저 예방(禮訪)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실은 진작부터 찾아가 볼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아내에게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지 않겠다고 못을 박아두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방문한 날 저녁때까지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날 저녁,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경위는 이렇다. 둘째 딸이 모자에 장식을 달고 있는 것을 보다가, 베넷 씨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빙리 씨가 그것을 좋아하면 좋겠구나, 리지야.”

“방문도 안 할 텐데, 빙리 씨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게 될 턱이 있나요.” 어머니가 골이 나서 말했다.

“잊어버리셨나 봐요, 엄만. 무도회 때 만나게 될 거고, 롱 부인께서 소개해 주시기로 약속했잖아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롱 부인은 그런 일을 해줄 위인이 아니야. 자기 조카도 두 명이나 있잖아.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여자야. 그 여자한텐 기대 안 해.”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하고 베넷 씨가 말했다. “그 부인에게 빌붙지 않을 거라니 기쁘오.”
베넷 부인은 대꾸할 생각조차 없었지만, 그만 참지 못하고 딸 하나를 야단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침 좀 해대지 마라, 키티. 제발 빈다! 내 신경 좀 생각해 주렴. 아주 갈기갈기 찢어놓는구나.”
“키티는 기침을 조심성 없이 하고 있어. 때를 못 가리는군그래.” 아버지가 말했다.

“누군 재미로 기침하나요, 뭐.” 키티가 짜증을 내며 대꾸했다.

“다음 무도회가 언제냐, 리지야?”

“보름 후예요.”

“맞아, 그렇다니까.” 하고 어머니가 목청을 높여 말했다. “롱 부인은 그 전날에나 돌아올 거고, 그러니 그 여자가 그 사람을 소개해 줄 수는 없지. 자기도 그 사람을 모를 테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여보, 당신 쪽에서 도리어 롱 부인한테 빙리 씨를 소개해 주면 되잖소.”

“말도 안 돼요, 여보, 나부터가 모르는 판에 그게 말이나 돼요. 어쩜 그렇게 사람 약을 올리세요?”

“당신 사려 깊은 것은 알아 모셔야겠소. 보름 정도 알고 지낸 거야 분명 약소하지. 정말 어떤 사람인지를 보름 만에 알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안 하더라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할 거고, 결국 롱 부인과 그 조카들도 기회를 얻게 될 거야. 그러니 당신이 그 일을 마다하면, 내가 직접 나서도록 하겠소. 롱 부인에게 친절이나 베풀 겸.”

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베넷 부인은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라고만 말했다.

“말도 안 된다는 그 말, 그거 도대체 무슨 뜻이오?”라고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소개의 절차요, 아니면 그렇게 절차를 따지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거요? 난 그 점에서는 당신에게 조금도 동의할 수 없소. 너라면 어떻게 말하겠니, 메리야. 넌 생각이 깊은 데다가, 훌륭한 책도 많이 읽고, 또 중요한 구절은 따로 적어두지 않니.”
메리는 무언가 그럴싸한 말을 하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메리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에.” 하고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린 빙리 씨 이야기로 돌아가기로 합시다.”

“빙리 씨라면 이제 신물이 나요.” 부인이 소리쳤다.

“거 참 유감이구려. 그렇다면 왜 진작 말해 주지 않았소? 오늘 아침에만 알았더라도, 절대로 그 사람을 방문하지 않았을 텐데. 일이 꼬이긴 했지만, 어쩌겠소, 벌써 방문해 버렸으니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알고 지내야겠소.”

그가 바라던 바대로 식구들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아마도 베넷 부인이 누구보다도 더 놀랐을 터이다. 그럼에도 한바탕 환희의 소용돌이가 잦아지자, 그녀는 진작부터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참 좋은 분이세요, 여보! 그래도 제가 끝내는 당신을 설득하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당신처럼 딸들을 사랑하시는 분이 그런 사람과 알고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몰라라 하지 않으시리란 걸 말이에요. 정말이지, 너무너무 기뻐요! 어쩜 그렇게 잘도 속이세요. 오늘 아침에 다녀오고도 지금까지 한마디도 안 하시다니.”

“그럼 키티야, 이제 마음대로 기침하렴.” 베넷 씨는 이렇게 말하고서, 아내가 기뻐 날뛰는 모습에 넌더리를 내며 방을 나갔다.

“얘들아, 너희들은 참 훌륭하신 아버지를 두었어.” 문이 닫히자 그녀는 말했다. “너희들이 아버지의 자애로우신 마음에 도대체 보답할 수나 있는지 모르겠구나. 뭐 그 점에서는 나도 그렇고. 우리 나이쯤 되면 매일같이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단다. 그렇지만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거다. 우리 귀여운 리디아, 네가 제일 어리긴 해도 엄마가 보기엔 빙리 씨가 다음 무도회에서 너하고 춤을 추실 게 틀림없다.”

“아이! 난 겁나지 않아. 제일 어리긴 해도, 키는 내가 제일 크거든.” 리디아가 씩씩하게 말했다.

그날 저녁에는 빙리 씨가 베넷 씨의 방문에 얼마나 빨리 답례할 것인지를 추측해 보고, 식사 초대를 언제로 하는 것이 좋을지 의논하는 일로 남은 시간을 보냈다.

베넷 부인이 다섯 딸의 도움을 받아 아무리 물어보아도 남편에게서 빙리 씨에 대한 만족할 만한 묘사를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를 공략했다. 노골적인 질문을 하기도 하고, 기발한 추측을 하기도 하고, 빙 돌려서 떠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기술을 모두 피해 갔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이웃 루카스 부인에게서 간접적인 정보를 얻는 도리밖에 없었다. 부인의 보고는 아주 반가운 것이었다. 윌리엄 경은 그를 무척 좋게 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아주 젊고, 굉장한 미남인 데다, 대단히 상냥했으며, 금상첨화 격으로 다음 사교 모임에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 작정이라는 것이었다. 이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춤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길에 한 발짝 발을 들여놓는 것과 진배없었다. 다들 빙리 씨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희망에 부풀었다.
“우리 딸들 중 하나가 네더필드에서 행복하게 가정을 꾸미고, 다른 아이들도 모두 그에 못지않게 시집을 잘 가는 걸 볼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베넷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며칠 후 빙리 씨가 베넷 씨를 답례 차 방문해서 10분 정도 서재에 머물렀다. 그는 미인으로 소문난 이 댁 딸들을 한번 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품긴 했으나, 부친만 뵈었다. 아가씨들 쪽은 조금 더 운이 좋았다. 위층 창문을 통해서 그가 푸른색 외투를 입고, 검은 말을 타고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이어 곧 정찬 초대장을 보냈다. 그리고 베넷 부인은 벌써 자기의 살림 솜씨를 뽐낼 수 있는 식단까지 짜놓았는데, 답장이 와서 그 모든 계획이 연기되었다. 빙리 씨가 다음 날 런던에 가야 할 일이 있어 영광스러운 초대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베넷 부인은 당혹스러웠다. 그녀는 그가 하트퍼드셔에 오자마자 곧바로 런던에 무슨 볼일이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 그가 언제나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만 하고, 네더필드에 눌러 살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마땅히 눌러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루카스 부인이 그가 런던에 간 것은 순전히 무도회에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한 거라고 해서 조금 마음을 놓았는데, 과연 빙리 씨가 숙녀 열둘과 신사 일곱을 데리고 올 거라는 소식이 바로 뒤따랐다. 아가씨들은 여자 수가 너무 많다고 걱정했으나, 무도회 전날 그가 런던에서 데려온 사람은 열둘이 아니라 여섯뿐이며, 자기 누이 다섯 명과 사촌 한 명이라는 말을 듣고서 안심했다. 그리고 막상 무도회장에 들어섰을 때 보니, 모두 합쳐 다섯뿐이었다. 즉 빙리 씨, 그의 두 누이, 큰 누이의 남편, 그리고 다른 젊은 남자였다.

빙리 씨는 잘생겼고 신사다웠다. 유쾌한 용모에, 편하고 가식 없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누이들은 상류층 티가 나는 훌륭한 여성들이었다. 그의 매부인 허스트 씨는 그냥 보통의 신사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친구인 다아시 씨는 멋지고 훤칠한 몸매와, 잘생긴 이목구비, 고상한 태도로 금방 방 안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가 들어온 지 5분이 지나지 않아 그의 연 수입이 만 파운드나 된다는 말이 온 방 안에 퍼졌다. 남자들은 그의 인물이 출중하다고 했고, 여자들은 빙리 씨보다 훨씬 미남이라고 내놓고 말했다. 그는 그날 저녁 시간이 절반 정도 지날 때까지는 찬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으나, 이윽고 그의 태도로 인해 혐오감을 자아냈고 그것이 인기의 퇴조를 초래했다. 그가 거만하고, 남들을 무시하고, 까다롭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더비셔에 있다는 그의 거대한 영지도 아무 도움이 안 되었던지, 그는 너무나 역겹고 불쾌한 인물로 전락했고, 자기 친구와 비교될 가치조차 없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빙리 씨는 그 방에 있던 주요 인물들과 기꺼이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활발하고 스스럼이 없었으며, 한번도 빼지 않고 춤을 추었고, 무도회가 너무 일찍 끝난다고 화를 냈으며, 네더필드에서 자기가 무도회를 한번 열겠다는 말도 했다. 이런 사랑스러운 자질들은 저절로 드러나는 법이다. 그와 그의 친구는 얼마나 대조적인지! 다아시 씨는 허스트 부인과 한 번, 빙리 양과 한 번 춤을 추었을 뿐, 다른 여자를 소개받는 것을 거부했고, 그날 저녁 남은 시간 동안은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가끔 자기 일행에게만 말을 걸었다. 그의 성격은 더 볼 것도 없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거만하고 불쾌한 인간이었고, 누구나 그가 다시는 그 고장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를 가장 극단적으로 싫어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베넷 부인이었는데, 그의 모든 태도가 싫기도 했지만 자기 딸들 중 하나가 그에게 무시당한 탓에 특히 더 분개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베넷은 신사의 수가 부족했던 탓에 춤이 두 번 진행되는 동안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사이 마침 다아시 씨가 가까이 서 있어서 그와 빙리 씨 사이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빙리 씨는 춤추는 무리에서 잠시 빠져나와 친구에게 같이 추자고 권하던 차였다.
“자, 다아시, 춤을 추어야지.” 하고 그는 말했다. “자네가 혼자 이렇게 멍하니 서 있는 것이 보기 싫네. 춤추는 게 훨씬 좋을 걸세.”

“안 추겠네. 내가 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잖나, 아주 친한 파트너하고가 아니면 말이야. 이런 무도회에서는 춤추기가 어렵군. 자네 누이들한테는 벌써 파트너가 있고, 다른 여자하고 춤춘다는 건 나한테는 벌이나 마찬가지야.”

“원, 세상에, 자네처럼 까다로운 인간은 처음 봐!” 하고 빙리가 소리쳤다. “정말이지 내 평생 이렇게 괜찮은 아가씨들을 오늘 저녁만큼 많이 만나본 적은 없어. 그리고 자네도 보다시피 드물게 예쁜 아가씨도 몇 명 있고 말이야.”

“이 방에서 미녀라고는 바로 자네와 춤추는 아가씨 하나뿐인걸.” 다아시 씨는 베넷 집안의 맏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야!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 그렇지만 저 아가씨 동생 하나가 바로 자네 뒤에 앉아 있는데, 퍽 예쁘게 생겼고, 뭐, 성격도 아주 좋아 보이네. 내 파트너한테 자네 소개를 부탁하지.”

“누구 말이야?” 그러고는 몸을 돌려 잠시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눈길을 거두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럭저럭 봐줄 만은 하군. 그렇지만 내 구미가 동할 만큼 예쁘지는 않아. 그리고 난 지금 다른 남자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여자들을 우쭐하게 해줄 기분이 아니네. 자넨 돌아가서 파트너의 미소나 즐기라고. 괜히 나하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말이야.”
빙리 씨는 그의 충고를 따랐다. 다아시 씨는 다른 쪽으로 가버렸고, 엘리자베스는 그에 대해서 그다지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는 사람들한테 그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해주었다. 무엇이든 우스꽝스러운 일을 보면 재미있어 못 참는 활기차고 장난스러운 성격이었던 것이다. 
     
─ 제인 오스틴, 윤지관, 전승희 옮김, 
『오만과 편견』, 9~21쪽 중에서

아아, 결혼이란 무엇인가……. 여는 글을 보면서는 심각하게 들어왔는데, 좋은 기회로 읽게 된 『오만과 편견』은 소문대로 재미 만점이네요.(처음 읽어 본 사람 ) 베넷 부인의 자제분들 중에 누가 그 유명한 다아시 씨와 연결되는지 모르기 떄문에 더 스릴 있어요.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는 사실 엊그제 출간한 책에서도, 오늘 보는 교정지에서도 만나고 있는데요. 그토록 권위 있는 결혼 제도가 얼마나 요절복통할 소설 같은 일인지 21세기 스타일로 소화한 작품 또한 권해드려요.

처음부터 베넷 부부 사이에 속도감 있게 이어지는 대화가 너무 재밌죠! 한편으로는 성격 차이겠지만, 어머니 베넷 부인은 저렇게 애달파하고 안절부절 못하는데 남일인 양 구는 베넷 씨가 짜증나기도 해요. 젊은 여성에게 결혼을 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기능할 수 없는 정도의 압박이 존재하는 현실에 눈감고 있는 듯하기도 하고요. 여자에겐 촘촘한 질서지만, 아버지라도 남자에겐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거겠죠. 『오만과 편견』은 근대적 로맨스 서사의 가장 완성된 형태라고도 불리는데요. 오만한 남자와 편견에 찬 여자는 어떻게 불멸의 공식이 되었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여성 주인공의 탄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 책에서 좀 더 깊이 확인해 보시길 권해 드릴게요.

  •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성 작가로 꼽힌 제인 오스틴
  • 영국 BBC의 ‘지난 천년간 최고의 문학가’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를 차지
  • 제인 오스틴의 예리하고 풍자적인 묘사와 섬세한 감각의 코미디
  • 완전히 새로운 번역, 원문에 충실한 정확한 번역으로 만나는 『오만과 편견』!

18세기부터 현대까지 영국의 가장 대표적이고,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성 작가로 꼽힌 제인 오스틴(1775~1817)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오역과 표절 등으로 점철되었던 기존의 번역본들과 달리, 원문에 충실한 정확한 번역을 목표로 옮긴이 윤지관과 전승희는 10여 년에 걸친 기간 동안 철저한 원문 대조를 통해 원래의 의미와 문체를 생생히 살려 원작의 가치와 재미를 그대로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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