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이가 진짜 행복해지려면?

 

흔들리는 꽃망울에게 보내는 정여울 작가의 따뜻한 인문학 편지, 정여울의 블루밍 레터입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어른의 보호와 통제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요. 아이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원칙 아래, 사회적 통념과 아이가 원하는 행복의 모습이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언 매큐언의 소설『칠드런 액트』를 같이 읽어 봅시다.
 
사진  이승원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을 심하게 야단치는 엄마들을 볼 때 가슴이 너무 아프다. 아이들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에는 아이를 때리는 엄마까지 보았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나조차도 당황하여 그 엄마를 말리려고 하는데, 사실 엄마가 너무 화가 나 있는 상태라 어른인 나조차 무서울 정도였다. 아이가 많이 아픈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이가 엄마한테 가서 덥석 안겼다.
 
“엄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가느다란 목소리로 흐느끼며 엄마에게 안기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더욱 시려왔다. 아이는 엄마에게 그렇게 얻어맞고도 달려가 안 길 데가 엄마 뿐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듯 무표정했다. 아이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하지 않은 엄마 곁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엄마를 무서워하면서도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아이들은 온전한 사랑과 보호를 필요로 하지만, 그런 크고 깊은 사랑은 그냥 저절로 우러나오지는 않는다. 부모 자신이 행복하거나(그럴 때는 그 넘치는 행복으로부터 사랑이 우러나올 것이다.) 부모에게 내 아이만은 지켜야 한다는 강한 믿음이 있을 때, 아이를 향한 사랑 또한 커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소설 『칠드런 액트』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 포스터
 
아이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칠드런 액트』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의 화두 중 하나는 ‘미성년자를 보호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이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영국의 아동법에서 최고의 가치는 ‘아동의 복지’다. 그런데 바로 그 아동의 복지를 실현하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아동의 의지를 따르는 것이 아동을 위하는 것인가, 아니면 어른들이 보기에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동의 복지일까. 
 
아동법에 있어 최고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판사 피오나는 아직 미성년자인 아담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죽음을 선택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백혈병에 걸린 아담이 수혈을 거부하는 이유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신념을 따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부모조차 아담의 결정을 지지하자, 병원의 의사들은 판사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의사들을 비롯한 주변의 어른들에게는 아담이 마치 열혈투사가 된 것처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려 하고, 과도한 영웅주의적 열정에 휘둘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열여섯 살 소년이 ‘종교적 신념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하게 만든 그 믿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수혈만 받으면 살아날 수 있는데, 생명을 포기하면서까지 신앙을 따르려 하는 이 소년의 무시무시한 열정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어른의 입장, 아이의 입장
이 책을 어른의 입장, 판사 피오나의 시선에서 읽을 때와 미성년자인 아담,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청소년의 시선에서 읽을 때의 느낌이 무척 다르다. 어른의 입장이나 판사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에게 완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종교적 신념을 따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려 하는 청소년 아담을 어떻게든 구해주는 것이 맞다. 아직 미성년자인 아담은 백혈병에 걸렸고, 수혈을 받지 못하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종교적 신념 때문에 수혈을 거부하고 있으니까. 
 
청소년의 시선에서 보면,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싶어 한다. 어른들이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의 의사 결정을 방해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어른들이 자신을 진정으로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 속상하다.
 
그런 아담의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판사인 피오나가 직접 아담의 병실에 찾아온 것이다. 아담이 정말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수혈을 거부하는 ‘주체적인 결정’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종교단체나 부모의 억압적 시선에 짓눌려 ‘강요된 결정’을 하고 있는지, 피오나는 진심으로 알고 싶었던 것이다.

직접 병실에 찾아가 만난 아담은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 시를 잘 쓰는 아이, 문학적 감성이 뛰어난 아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할 자격이 있는 아이였다.
 
아름다운 아이, 아담
피오나가 아담을 직접 만나보겠다고 하자, 이 역사적인 판결 앞에서 취재 경쟁을 하던 언론사의 기자들까지 놀란다. 그동안 판사들은 눈앞에 주어진 자료들만으로 상황을 판단할 뿐이었지, 병원에 누워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 직접 찾아가서 의견을 듣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피오나는 엄청난 분량의 증거 자료들을 눈앞에 두고도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가 없었기에 직접 발걸음을 뗀다. 
 
과연 이 아이는, 아니 이 청소년은, 아니 이 사람은, 어떻게 불러야 할지 헷갈리는, 이 아담이라는 존재는 왜 이러는 것일까. 종교적 신념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단 말인가. 그런 판단을 열여섯 살 어린아이에게 맡겨도 된단 말인가. 병실로 찾아간 피오나는 아담의 파리하지만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아담의 행복’이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아담은 다른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 시를 잘 쓰는 아이, 문학적 감성이 뛰어난 아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할 자격이 있는 아이였다. 우리 어른들이 아직은 지켜줘야 할 평범한 아이였던 것이다.
여기서 ‘판사로서의 피오나’와 ‘인간으로서의 피오나’가 둘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굳은 표정으로 병실을 찾았던 피오나는 아담을 만난 뒤 한결 부드럽고 따스해진 표정으로 병실을 나간다. 판사 피오나의 ‘이성’으로 이 병실을 찾았지만, 나갈 때는 인간 피오나의 ‘심장’을 되찾은 채 병실을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판사 피오나’와 ‘인간 피오나’가 둘이 아닌 하나일 때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고 느꼈다.

굳은 표정으로 병실을 찾았던 피오나는 아담을 만난 뒤 한결 부드럽고 따스해진 표정으로 병실을 나간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사랑
아담은 자신의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은 피오나를 바라보며 마치 여신을 만난 듯, 수퍼스타를 만난 듯 환호하고 기뻐한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신앙 공동체 바깥 사람을 만난 적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어린 소년이 보기에 피오나는 얼마나 눈부신가. 세상을 쥐락펴락할 것 같은 힘을 가진 존재, 언론에 여러 번 대서특필 된 적이 있는 훌륭한 판사가 바로 자신을 위해 병실로 찾아온 것이다. 아담은 피오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신기하기만 하다. 저런 멋진 사람이 나를 위해 여기까지 찾아와 주다니.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판사 피오나의 따스한 마음을 알게 된 아담의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가족이 아닌 존재에게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담은 예이츠의 시를 노래로 불러주는 피오나의 목소리와 따스한 표정에 반해버린다. 아담의 마음속에 가족이나 종교단체의 지인들이 아닌, ‘완전한 타인’이 처음으로 자리한 것이다. 아담의 심장에는 ‘판사로서의 피오나’에 대한 존경을 넘어, ‘인간으로서 피오나’를 향한 동경조차 뛰어넘어, ‘여성으로서의 피오나’에 대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사랑이 아담의 심장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 정여울, 2021. 
 다음 편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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