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시간을 사랑하는 법

 

흐르는 시간을 온전히 내 편으로 만들기

흔들리는 꽃망울에게 보내는 정여울 작가의 따뜻한 인문학 편지, 정여울의 블루밍 레터입니다.  『모모』 이야기를 이어 들려 드릴게요. 해야 할 것도, 눈길을 빼앗아 가는 것도 정말 많은 현대인은 같은 문제를 갖고 있을 거예요. 시간이 너무 없다는 문제죠. 시간에 쫓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사랑하는 방법을 살짝 알려 드릴게요. 
 
사진  이승원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재주였다. (……)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미하엘 엔데, 한미화 옮김, 『모모』에서
 

타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어주는 것이 전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모. 누가 찾아와도 그 사람과 함께 있는 동안은 오직 그 사람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만 집중하는 모모. 이토록 해맑은 모모 앞에서는 ‘시간이 곧 돈이다.’라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무너져버린다.
모모는 시간을 돈으로 사고파는 법을 전혀 모른다. 설령 그것을 이해하더라도, 결코 시간과 돈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모모는 시간의 장작을 남김없이 태워 온 우주를 향해 날려버린다. 모든 시간의 의미를 소중히 심장에 아로새기는 삶. 시간의 찌꺼기가 전혀 남지 않도록, 시간의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불태우는 삶. 모모는 이토록 소중한 시간을 돈 따위와 바꾸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임을 알기에, 모모는 시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시간을 계산하는 법 따위는 잊어버린 것만 같다. 모모는 돈을 버는 시간, 시험을 보는 시간, 노동에 지친 시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 동네 아이들과 미친 듯이 노는 시간, 별과 벌레와 새와 나무의 이야기를 한없이 들어주는 시간을 살아간다.

요하네스 샤프 감독, 영화 「모모(Momo)」 (1986)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 현대인은 ‘시간이 돈이다.’라는 문장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살아간다. 뭔가 흥미로운 것에 이끌려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다가도, ‘이러다가 시간을 낭비하면 어쩌지’라는 조바심으로 또다시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 일상으로 복귀한다. ‘시간이 없어’, ‘너무 바빠’라는 말을 자주 되뇌며, 시간의 속살을 향기롭게 음미하는 삶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모모와 함께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은 이 작은 소녀를 통해, 흐르는 시간을 온전히 내 편으로 만드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은 모모와 놀면 이상하게도 시간이 빨리 가고, 미친 듯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른들은 자기들끼리 온갖 복잡한 일로 멱살 붙들고 싸우다가도 모모의 해맑은 눈빛 앞에서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으면 모든 갈등이 그야말로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음을 깨닫는다.
나는 모모를 통해 오늘도 배운다. 시간의 압박에 시달리는 줄 알았던 내가 실제로 붙들려 있었던 올가미는 ‘시간’ 자체가 아니라 ‘내 안의 회색 신사’였음을.

내 안의 회색 신사, 우리 안의 회색 신사는 이미 우리의 일상 도처에 깔려 있다. 별 생각 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두세 시간이 휙 지나가 버릴 때,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가면을 쓴 회색 신사의 마수에 걸려든 것이다.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희생하고 자신의 건강마저 해치며 앓아누울 때, 우리 현대인은 오직 돈밖에 모르는 회색 신사의 주도면밀한 덫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 위에 돈이나 성공이나 인기 같은 자본주의적 가치를 올려둘 때마다, 모모가 오래전에 소탕한 줄로만 알았던 회색 신사는 재기의 기회를 엿보며 호시탐탐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의 목을 조를 준비를 한다. 모모가 살던 시절의 사람들이 한 명씩 나타나는 회색 신사의 비교적 단순한 공격을 받았다면, 지금 우리 현대인은 미세먼지처럼 우리의 숨결 하나하나로 숨어드는 더욱 악랄한 회색 신사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모모의 회색 신사가 ‘사람’ 단위로 인간을 공격했다면, 현대의 회색 신사는 ‘세포’ 하나하나만큼이나 작은 입자로 잘게 바수어져 우리의 의식을 점령하고 있다. 현대의 회색 신사는 더욱 교묘하고 악착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여, 우리 현대인을 ‘막상 시간이 생겨도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로 만들어가고 있다.

요하네스 샤프 감독, 영화 「모모(Momo)」 (1986)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모모는 홀을 빙 둘러보고 물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시계들을 갖고 계신 거예요? 한 사람마다 한 개씩요. 그렇죠?”
 
아니야, 모모. 이 시계들은 그저 취미로 모은 것들이야. 이 시계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속에 갖고 있는 것을 엉성하게 모사한 것에 지나지 않아.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장님에게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하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멀고 귀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미하엘 엔데, 한미화 옮김, 『모모』에서
ⓒ 정여울, 2021.
 
다음 편지에서 미하엘 엔데의 『모모』 이야기가 완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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