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토록 아름다운 색깔

 

 

받기만 하던 아이가 어른이 될 때

안녕하세요? 흔들리는 꽃망울에게 보내는 정여울 작가의 따뜻한 인문학 편지, 정여울의 블루밍 레터입니다. 지난 편지에 이어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 이야기를 마저 들려 드릴게요. 차이로부터 피어나는 색색의 아름다움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사진  이승원

갈등 없는 평온은 때론 죽음과 같은 권태일 수도 있다. 갈등은 때론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갈등이 있기에 조화와 화해를 향해 나아가려는 인간의 노력이 빛을 발한다. 그러나 조너스가 사는 이 가상의 미래세계에서는 갈등은커녕 ‘차이’ 자체가 사라진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임무해제’를 당해 어디론가 사라진다. 사람들은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라 믿지만, 실은 이 가상의 미래세계에서 장애를 가진 아기들은 살해당하는 것이다. 심지어 쌍둥이 중에서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아이 또한 임무해제 당한다. 노인들도 병이 들거나 기력이 쇠하면 기념식을 치른 뒤 임무해제 당한다. 오직 건강하게, 효율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인구만이 살아남는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의 현실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소설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 노인들에 대한 차별, 형제자매끼리도 능력에 따라 차별 당하는 사회의 참혹한 알레고리인 것이다. SF소설은 가상의 미래를 보여주지만 현실의 알레고리기도 하다.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통해 ‘이미, 지금 비극을 품어안고 있는 현실’을 비추어주는 거대한 거울이 되는 것. 그것이 SF소설의 예언적 이미지다.
 

기억 전달자(the Giver)와 기억 보유자(the Receiver)의 관계는 일방적인 주고 받음의 관계다. 즉 기억 전달자는 기억을 주기만 할 수 있고, 한 번 자신의 기억을 기억 보유자에게 선물하면 자신에게는 그 능력이 없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 전달자는 기억 보유자 조너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려고 한다. 
 
조너스가 가장 놀란 것은 ‘색깔’이라는 존재의 아름다움이었다. 자신이 풋풋한 설렘을 느끼기 시작한 친구 피오나의 머리카락이 붉은 색으로 빛난다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 아직 색깔을 보는 능력을 완전히 되찾지 못해 잠깐씩만 그 붉은 색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간. 조너스는 이토록 아름다운 빨간색을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조너스는 지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조너스를 매료시킨 것은 바로 색깔들이었다.
 
“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볼 수는 없나요? 왜 색깔들이 사라졌나요?”
 
기억 전달자가 어깨를 한 차례 으쓱해 보였다.
 
“우리들이 그쪽을 선택했어, ‘늘 같음 상태’로 가는 길을 택했지. 내가 있기도 전에, 이 시대보다도 전에,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말이야. 우리가 햇볕을 포기하고 차이를 없앴을 때 색깔 역시 사라져 버렸지.”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었지.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들은 포기해야 했단다.”
 
조너스는 아주 격렬한 어조로 소리쳤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 로이스 로리, 장은수 옮김, 『기억 전달자』(비룡소, 2007)에서 
 
필립 노이스 감독, 영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The Giver)」 (2014)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단지 기계적 평등과 획일적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이토록 아름다운 세계를 통째로 버리다니. 기억 전달자는 자신이 그 모든 통제된 세계의 ‘너머’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그 능력을 남김없이 기억 보유자 조너스에게 넘겨주려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아름다움은 ‘받기만 하던 사람’이 더 이상 받기를 거부하는 순간에 더욱 빛난다. 조너스는 모든 용기와 힘, 지식에 대한 기억을 전수받고도 ‘음악’만은 받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음악이야. 난 정말 놀라운 무언가를 듣기 시작했어. 음악이라는 거야. 내가 죽기 전에 네게 조금 전해 주마.” 
 
조너스가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전 기억 전달자님께서 그 기억을 간직하시길 바라요. 제가 떠난 후에도 계속 간직하세요.” 
 
기억 전달자에게 음악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에 대한 기억만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조너스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힘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은 어른이다.

조너스는 마침내 온갖 위험을 뚫고, 아기 가브리엘을 자전거에 태워 이 무정하고 냉혹한 도시를 탈출한다. 도착할 그곳이 어디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우선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 어느덧 정이 들어버린 갓난아기 가브리엘을 향한 애착이 조너스를 훌쩍 자라게 한 것이다. 입양한 동생 가브리엘이 너무 많이 울어댄다는 이유로 ‘임무 해제’시키려는 어른들의 결정을 막는 방법은 탈출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출은 여행 같은 것이 아니다. 한 번 떠나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조너스의 평생, 조너스의 모든 것이 다 이곳에 있다. 이곳 전체를 버리고 간다는 것은 조너스에게 사회적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게다가 조너스는 기억 전달자라는 엄청난 특권을 지니고 있다. 그 모든 특권을 버릴 정도로, 조너스는 동생 가브리엘을 사랑했던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생길 수 없도록 틀어막은 권력자들의 정책은 실패했다. 조너스는 입양한지 몇 달 되지도 않은 동생 가브리엘을 더없이 사랑했고, 자신의 머리카락 빛깔이 빨간색임을 알지도 못하는 피오나를 사랑하며,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억 전달자를 사랑한다. 얌전한 모범생이었던 조너스를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멈출 수 없는 본능이었다. 
 
조너스는 천신만고 끝에 가브리엘을 업고, 안고, 뛰고, 기고, 숨기면서 끝내 탈출에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조너스는 기억 전달자로부터 받은 모든 기억, 그러니까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지혜와 노동의 결정체를 가브리엘에게 전달해준다. 추울 때는 ‘따뜻했던 기억’을 전달하여 가브리엘을 추위에서 구해내고, 자신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당국의 정찰비행기가 이들을 수색할 때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를 주입한다. 기억 전달자로부터 기억을 받은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자신의 모든 것을 가브리엘에게 조금씩 주는 것이다. 
 
사랑스러운 아기 가브리엘을 살리기 위한 조너스의 용기는 어쩌면 기억 전달자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조너스의 생의 에너지, 조너스의 삶, 그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필립 노이스 감독, 영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The Giver)」 (2014)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조너스는 손을 가브리엘 등에 대고 힘을 주면서 햇볕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잠시 동안 어떤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능력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듯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갑자기 어떤 느낌이 왔다. 불길처럼 작은 열기가 솟아 얼어붙은 발과 다리로 스며드는 걸 느꼈다.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르는 동시에 차갑게 굳은 손이 서서히 풀려 가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 동안, 조너스는 무엇에도 그리고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그 느낌을 유지하면서 일광욕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가자 지금 품에 있는 사랑스러운 존재와 따스함을 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잠시 갈등 때문에 고통받으면서, 조너스는 팔에 안긴 채 추위에 떠는 가녀린 몸뚱이에 따뜻함의 기억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다시 가브리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눈 속에서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따스함을 즐기면서 힘이 솟을 때까지 서로를 안은 채 서 있었다. 다음 순간 조너스는 언덕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억은 괴로울 정도로 짧았다. 밤 속으로 불과 몇 미터도 걸어가지 않았는데 기억은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두 사람 몸이 다시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너스는 이미 정신이 바짝 들어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따스한 기운을 느끼자 무기력과 체념은 가라앉고 기어이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되살아났다.
 
─ 로이스 로리, 장은수 옮김, 『기억 전달자』중에서 
 
기억이 나를 습격할 때도 있고, 기억이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순간도 있다. 때론 나쁜 기억만 쏙쏙 골라내어 말끔하게 편집하는 기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나쁜 기억의 아픔을 상쇄하는 좋은 기억의 아름다움을 안다. 고통을 이겨내어 끝내 긍정적인 기억 또한 나쁜 기억의 어둠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생긴 것임을 깨닫는다. 슬픈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들 때도 당황하지 말자. 그럴 땐 잊지 말자. 아픈 기억조차도 결국 나의 나다움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일부임을. 기억을 글로 쓰고, 기억을 영화로 만들고, 기억을 문학과 음악과 미술로 빚어내어 온갖 방법으로 저장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우리 인류는 지금까지 그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전진해 왔음을. 
 
당신의 기억은 당신의 적이 아니다. 창조적인 사람은 나쁜 기억조차도 좋은 기억과 버무려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제3의 기억으로 만들 줄 안다 .그 어떤 아픈 기억들조차도 결국 나를 빚어내는 정신의 토양으로 만드는 마음의 기술, 그것이 진정한 내적 성장의 비결이다. 
 
(끝)
ⓒ 정여울, 2021.
 
다음 편지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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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곽은주
    2021.5.28 11:17 오전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내용이 너무 좋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