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편지 결산 #4

 

 

재미있는 코멘트 잔치

매주 수요일 분홍빛 《한편》의 편지를 보내드린 지 벌써 네 달째예요.  4호 ‘동물’ 출간 이래로 노벨상 수상 작가, 유럽의 철학자, 근대 한국의 청년, 2021년의 연구자 등등이 들려주는 인간과 동물 이야기를 1만 1229명의 구독자 여러분과 함께 읽었는데요. 오늘은 편지 중의 편지, 레터 오브 레터를 꼽아 보는 시간입니다.
가장 많이 열어 본 편지
#51 ‘호랑이의 사랑’에서 #66 ‘폴란드 외딴 마을의 살인 사건’까지, 열두 통의 레터 중에서 가장 높은 오픈율을 기록한 건 바로 #60 ‘여자가 행복해지는 방법’이었습니다. 35.9%를 달성했네요.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옛 가전제품 광고를 떠올리면서, 진정한 여성 행복의 길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뽑은 글이었는데요. “수천 년 동안 신하와 첩과 노예로 가축처럼 길러졌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는가?”라는 강한 일갈을 구독자 여러분이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아, 전국의 자매 여자들이여! 수천 년 동안 신하와 첩과 노예로 가축처럼 길러졌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는가? 때가 왔도다, 때가 왔도다. 다행히 이때에 태어났도다. 속히 수업을 받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며 행복한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희는 입에 밥을 넣지도 몸에 옷을 걸치지 못할 것이요, 고삐 잡히고 재갈 물려 끌려다니는 일이 지난날보다 더욱 심할 것이니, 내 말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 동양과 서양 과학자의 이론, 명철한 스승들의 경험과 격언을 현 상황에 참작하여 거친 글을 얽고 피를 토하며 기원하노니, 아, 나라를 다스리는 당국자는 여자 교육을 급선무로 삼을지어다.
 
  
─ 김하염, 「시급한 여자 교육(女子敎育의 急先務)」 중에서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편지
《한편》의 편지함에 댓글이 달리면 편집자 어깨에 춤이 깃든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가운데, 이번 시즌 가장 많은 댓글을 얻은 편지는 바로 지난 주의 #66 ‘폴란드 외딴 마을의 살인 사건’이었습니다. (대댓글 포함) 여섯 건이네요! 한번 읽기 시작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매력 덕분입니다. ’동물 영상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랜선집사 편집자’ 님의 큐레이션은 늘 많은 댓글을 얻고 있지요. 
 
“그 남자는 자신의 개를 종일 헛간에 가두고 있어요. 헛간에는 난방 시설이 없어서 개가 추위에 떨며 울부짖고 있다고요. 이 문제를 경찰이 해결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개를 그자에게서 떼어 놓고 법으로 처벌함으로써 본보기를 보여 주는 거죠.”
 
서장은 침묵 속에서 잠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처음에 내가 파악한 그의 성향, ‘무시’라고 표현했던 감정이 이제는 그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입가 끝자락이 아래로 살짝 처지고 입술이 짜증으로 인해 뿌루퉁해졌다. 나는 그가 자신의 표정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억지스러운 미소로 경멸의 기색을 간신히 감추면서 니코틴 때문에 누렇게 된 이를 드러냈다.
 
“그것은 경찰이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부인. 개는 개일 뿐이에요. 시골이 그냥 시골인 것처럼요. 대체 부인은 무엇을 기대하는 거죠? 개는 개집에 넣고 쇠사슬로 묶어서 길러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경찰에 신고하는 건 악행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서가 아니면 대체 어디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죠?”
 
서장이 목청껏 웃음을 터뜨렸다.
 
“악행이라고요? 신부님에게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는 자신이 내뱉은 유머에 만족하는 듯했지만, 자신의 농담을 내가 전혀 재미있게 여기지 않음을 깨달았는지 얼굴빛이 금방 진지해졌다.
 
동물을 돌보는 협회라든지, 아무튼 그와 비슷한 단체가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전화번호부를 찾아보세요. ‘동물 보호 연합,’ 거기가 부인께서 찾아가야 할 곳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경찰입니다. 브로츠와프에 전화하십시오. 거기에 아마 동물 보호 단속반이 있을 겁니다.”
 
 
― 올가 토카르추크, 최성은 옮김,
 
 
차차** 님의 코멘트
 

오랜만에 정독했네요!! 사실 노벨 문학상 받은 작가라도 다 제 취향은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인터넷서점에서 이 책 광고 많이 봤어도 별 관심 없었는데 한편에서 보내준 편지 보니까 정말 잘 읽힐 것 같은 흐름이라서 꼭 한번 5월 연휴때 읽어봐야겠어요!

차차** 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의 정독…정진하겠습니다…
여름에 읽는 범죄 스릴러! 너무 좋네요.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와 함께 즐거운 연휴 보내셨으면!
 한번 다시 읽어보실래요 편지
새로 개설된 코너입니다. 지금 레터를 쓰고 있는 당번의 특권, <이 편지 그냥 지나치셨다면 다시 한번 읽어보실래요> 코너! 제가 권하고 싶은 레터는 #53 ‘세계의 종말이 임박할 것이다‘입니다. 세계문학전집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의 작가인 알프레트 되블린의 단편 소설 한 편을 전문 실어두었거든요. ‘언젠가는 읽어야지’ 페이지 또는 출력물로 저장해두시면 어느 어두운 날 마음의 위안이 되어드릴 거예요.

 
 
─ 알프레트 되블린, 신동화 옮김, 「아스트랄리아」,
단편집 『무용수와 몸』 중에서
 
 
제일 많은 클릭으로 이어진 편지
뉴스레터라는 새로운 기술에 여전히 적응 중인 가운데, 제일 익숙하게 쓰고 있는 기능이 링크 달기인데요. 도서 홍보라는 레터 본연의 목적과도 연결될 거라는 일념하에 링크를 이리저리 넣고 있습니다. #55 ‘에로티즘이란 무엇인가’에서도 한편의 온라인 세미나 신청 링크와 함께 ‘죽음과 에로티즘 하면 떠오르는 그분’으로 넘어가는 링크가 최고 클릭률을 기록했네요. 이 링크는 파우스트 박사로 이어졌지만, 아래 대목을 읽으면서 또 다른 인물을 떠올려보실 수도 있을 거예요.
 
단순한 성 활동은 에로티즘과 다르다. 단순한 성 활동은 동물의 삶에 주어진다. 인간의 삶만이 ‘악마적’이라 할 만한 양상의 활동을 하며, 그것이 에로티즘이라는 이름에 적합하다. 
 

죽음은 눈물과 연결되고, 때때로 성적 욕망은 웃음과 연결된다. 하지만 웃음은 보이는 것만큼 눈물과 다르지는 않다. 웃음의 대상과 눈물의 대상은 언제나 사물들의 규칙적인 리듬, 일상적인 흐름을 끊어뜨리는 폭력과 관계된다. 보통 눈물은 우리를 비통하게 하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과 연결된다. 때로는 기대하지 못한 다행스러운 결과가 너무 큰 감동을 일으켜서 눈물이 흐를 수도 있다. 성적 무질서는 우리에게서 눈물을 끌어내지는 못하지만 우리를 흐트러뜨리고,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뒤엎어 버린다. 둘 중 하나다. 우리를 웃게 하거나 성교의 폭력에 빠뜨리거나…….

 
 
─ 조르주 바타유, 윤진 옮김,
『에로티즘의 눈물』 머리말과 1부 중에서
 
 
코멘트가 가장 열정적인 편지

매주 레터에는 《한편》을 만드는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의 코멘트가 함께 발송되는데요. 레터 발송 전날인 화요일, 레터 당번에게 지목받은 사람이 쓰고 있습니다. ‘코멘트가 가장 열정적인 편지’를 막상 꼽자니 하나만 고를 수가 없네요.  이쯤에서 그동안 함께한 분들에게 마이크를 넘깁니다. 누구인가? 누가 마이크를 받았어? 《한편》의 편지 구독을 처음 신청하신 분에게 발송되는 환영합니다 편지에서 간단한 소개글을 함께 보실 수 있답니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새 이런 결산이! 감격과 환희!  모든 코멘트가 다 그렇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니 제 자신을 가장 많이 담았던 코멘트는 역시 이 편지였어요! 편집자는 사실 한 호 마감하고 나면 이제 그다음 호를 준비하느라 이 주제와 저 주제 사이에 걸쳐 있는 상태로 레터를 만들게 되는데요. 5호 주제인 ‘일’에 바싹 붙은 편집자의 머릿속이 보이는 레터기도 합니다. 

‘동물’ 편 마지막 레터네요. 철학부터 소설과 그림책, 환상동물 사전까지 다양한 책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어요. 레터를 읽고 만드는 네 달 사이에 저는 ‘랜선집사 편집자’에서 ‘멋진 고양이를 임시보호 중인 편집자’가 되었답니다. 최다 댓글 레터로 꼽히다니 자랑스러워요. 앞으로도 댓글이 달리면 대댓글을 달러 날아가겠어요!

결산 레터를 읽고 《한편》 편지함을 훑어보니 ‘동물’을 주제로 정말 다양한 글이 발송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요. 매주 수요일 아침에는 레터를 읽으며 업무 자아를 불러냈는데요. ‘동물’ 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레터가 #53 ‘세계의 종말이 임박할 것이다’였어요. 되블린의 글을 처음 읽어 본 것인데, 광인이 하는 ‘맞는 말’과 강렬한 묘사가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모두 ‘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내 줄 5호 레터를 고대합니다.

코멘트들을 더욱 눈여겨 읽으며 빠져드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독자 여러분도 함께 코멘트로 이야기 나누면 더욱 즐거운 읽기가 될 거 같아요. 특히 #58 ‘누가 검은 고양이는 불길하다 하는가’에 달린 디자이너의 코멘트가 기억에 남아요. 책 표지에 쓰이는 색에 대한 고민과, 디자인에 대한 힌트와 영감을 얻는 과정을 보니 책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한편》 5호의 주제가 ‘일’인 만큼 다양한 일터에서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을 거 같아 벌써부터 두근두근 기대 중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이미 흥미로운 레터가 도착하면 저는 편집자와 마케터의 코멘트를 가장 먼저 읽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56 ‘죽은 나의 개에게’ 편은 열어 보지 못했는데요. 이유를 짐작하는 분들도 물론 계시겠지요? 때가 되면… 꼭 코멘트 먼저 챙겨보려구요. 사심이 가득했던 4호 작업이었습니다. (새로운 코너 마음에 들어요. 권해 주신 #53 읽으러 갑니다.) 5호도 열심히 만들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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