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죽은 나의 개에게

 

 

장 그르니에 읽기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프랑스의 미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가 반려견 타이오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어느 개의 죽음』을 소개해 드려요. 90편의 짧은 글 편편이 개에 대한 그리움과 존중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송가입니다. 지난 레터에서 ‘인간만의 세계’로 에로티즘을 이해했던 조르주 바타유의 사상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어느 개의 죽음』에 부록처럼 붙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하여」라는 짧은 글에서 그르니에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선 안 된다고 말해요. “차라리 살아가는 방식에 서로 다른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개와 고양이를 통해 그 두 형태를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하자”라고 제안하죠.

 
내 개가 더없이 그리워지리라. 내 개는 주인이 얼마나 자기를 필요로 했는지 알았을까? 나는 그가 늘 함께 있기를, 나와 함께 산책하고 식사 자리를 함께하기를 바랐을 뿐 아니라, 더 이상한 일은(정말로 이상하지 않은가?) 떨어져 있을 때마저도 그가 필요했다. 밤에 잠을 청할 때 나는 마치 내 개가 사람들이 무서워하지 않고 수시로 불러 대는 수호신이라도 되는 듯 그에게 나를 지켜 달라고 빌었다. 내 개는 대자연의 잔혹성과 광대함을 두려워하는 나를 바로 그 자연과 이어 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그가 있었기에 나는 자연에서 고요함, 잠, 불안이나 후회가 없는 만족감, 늘 눈앞에 펼쳐지는 햇빛, 걷다가 발밑에서 찾아낸 샘물처럼 마음을 달래 주는 특성들만을 누릴 수 있었다. 내 개가 있었기에 나는, 그를 본받아서, 온전히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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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가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죽음과 연관된 일이다. 이전이라면 나도 그런 연관성을 좋아했을 테지만, 지금은 정말 싫다. 만일 타이오가 살아 있다면 지금 내가 그의 얘기를 쓰는 일은 없지 않겠는가. 타이오와 함께 살며 행복할 (또는 불행할) 테고,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타이오는 세상을 떠났고, 나는 그의 삶을 되짚어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다. 다시 한번 살게 해 주고 싶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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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매일 당신을 찾아오고, 애정을 표한다. 그들의 하루는 사랑과 신뢰의 행위로 시작한다. 동물들은 적어도 솟구치는 애정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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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대자연의 위엄을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인간의 비참을 그린다. 인간이 대자연에 속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온전히 속하지 않은 인간은 그 속하지 않는 몫만큼 불행하다. 타이오는 진정한 동물로 온전히 자연에 속하는 것 같다. 그를 강력한 힘의 대행자로 삼아 바라보고 곁에 두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하지만 그가 솟구치는 애정을 드러낼 때, 죽음을 맞으며 애원하는 눈길을 던질 때, 그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런 타이오의 모습이 그럴 때 울음을 터트렸을 인간의 모습보다 더 깊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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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기르는 사람들, 그리고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개와 말하기 위해 일부러 고안해 냈을 특별한 언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독특한 어조로 개에게 말을 건넨다. 말의 내용보다 어조가 중요하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에게도 개와 친족적인 특성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러한 개와의 친족성은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촉발한다. 하지만 그러한 친족성이 토템을 신봉하던 이들의 눈에는 자연스러워 보였을 테고, 주변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 역시 어린 시절에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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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오가 지녔던 방랑과 사냥의 본능을 저지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자책하게 된다. 우리와 함께 지내는 동안 타이오는 말하자면 실업 상태였다.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느라 힘들었다. 타이오는 노동을 하기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이 점에서는 대부분의 인간과 비슷하다.) 그래도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 점 역시 인간들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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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 개처럼 그날그날을 순간 속에서 살며 매번 일어나는 일에 몰두했더라면, 나 역시 다가올 날을 쓸데없이 걱정하느라 괴롭지 않았으리라. 다가올 고통을 미리 생각해 보지 않았을 테니 냉정하게 기다릴 수 있었으리라. 나에게 이 세상의 삶에서 거짓이 필요하지 않았을 테고 내세의 삶에서 거짓이 필요하지 않았을 테고 내세의 삶에서도 위안이 필요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동물이라 해도 타이오 역시 기다림 속에서, 결국 불안 속에서 살지 않았을까?
 1955년 5월 15일에서 6월 12일까지

철학자들은 흔히 동물을 이용해서 인간을 돋보이게 하려 애쓴다. 동물에 대해 다르게 말해 보자. 그러니까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한쪽에 의식과 그로 인한 고뇌를 놓고 다른 쪽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와 무의식의 평화를 두어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는 그렇게 구분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그러겠는가? 차라리 살아가는 방식에 서로 다른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개와 고양이를 통해 그 두 형태를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하자. 
 
개 쪽에는 말과 비둘기가 포함된다. 
 
고양이 쪽에 원숭이와 앵무새가 포함된다.

개 쪽에는 친밀감이 있다. 인간의 친구인 개, 인간이 정복한(그러나 그 정복은 동맹 관계로 바뀌었다.) 가장 고귀한 대상인 말, 그리고 비둘기(때로 무고한 희생자를 지칭할 정도다.)는 가장 친근한 동물들이다. 토끼와 몇 가지 다른 동물을 더할 수 있다. 
인간은 친밀감을 갈망하고, 그러한 친밀감은 어린아이들에게, 어머니인 여자들에게, 우정을 나누는 남자들에게 잘 드러난다. 친밀감은 대립을 배제하지 않는다. 친한 사람들 사이에도 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 개 쪽에 속하는 동물들이 갖는 특징은 흔히 인간들만의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인정(인정)’이라는 자질이다. 우리는 ‘인간적인 정’을 이야기하지만, ‘개들의 정’ 역시 이야기할 수 있다.
고양이 쪽에는 거리감이 있다. 원숭이와 앵무새도 고양이 쪽에 놓인다. 우리가 감탄하며 바라보는, 하지만 친근하게 느낄 수 없는 동물들이다. 뷔퐁*의 말대로 고양이는 우리에게 다가와 어루만져 주는 대신 우리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한다는 생각을 해 보면, 고양이에게는 애착을 느끼기 힘들다. 그런데 그런 거리감은 본질적인 것이다. 그 동물들이 아무리 완벽하게 사람을 흉내 낸다 해도 거리감은 줄어들지 않는다. 앵무새는 사람의 목소리를, 원숭이는 몸짓을 흉내 내지만, 그럴 때도 우리에게서 멀리 있다. 차라리 식물들이 더 가깝다.
결국 살아가는 방식에는 두 극이 있다. 하나는 가까이 있기, 하나는 멀리 있기. 하나는 이어 주고 하나는 나눈다. 하나는 ‘정신’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의 방식이리라. 그러나 정신과 자연을 나누는 경계선은 알 수 없다. 단지 애착을 품고 이으려는 쪽과 초연하게 떨어지려는 쪽의 대립이 있을 뿐이다. 로마의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산소나무처럼 다른 나무들과 떨어져 자라서 지평선에 홀로 서 있는 나무들이 있고,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처럼 모여서 서로 어울리며 자라는 나무들도 있다. 줄리어스 시저는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지만, “사랑을 함께 하기 위해 태어난”** 안티고네는 오빠를 향해 몸을 숙인다.
어느 쪽에 있는지가 우리가 말한 것만큼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지옥으로 되돌아간다.(개의 충실함) 그녀를 데리고 나오면서는 약속을 어기고 결국 뒤돌아본다.(고양이의 호기심) 사랑(개)과 앎(고양이)의 대립은 에로스와 프시케의 신화에서도 나타난다.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만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알기 위해서는 헤어져야, 적어도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하는 걸까?

고양이 쪽은 신성(신성)을 지향하고, 개 쪽은 신을 지향한다. 양쪽의 기도는 사뭇 다르다. 

 
고양이 쪽의 기도: 
 
세계의 중심에 계신 신이여, 나로 하여금 돌멩이처럼 가만히 있고 식물처럼 느리고 동물처럼 맹목적이게 하소서. 
나의 본성이 오로지 대자연의 반영이게 하소서. 나 개인의 운명이 우주의 운명과 하나이게 하소서. 
나의 지혜가 오로지 필연성을 깨닫는 데 쓰이고 나의 가슴이 오로지 그 필연성을 갈망하는 데 쓰이게 하소서.
 
개 쪽의 기도: 
 
나의 하느님, 온갖 불결한 것들을 다스리시는 신이 별들을 다스리시는 신과 같을 리 없다고, 나는 간절히 믿고 싶나이다. 
당신께서 내 마음속에 사랑의 욕구를 불어넣어 주시니,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을 발견하게 하소서. 
메마른 가슴을 진리로 잘못 알지 않게 하소서. 
트라몽탄***이 불어오면 로마 분수의 물들이 없어진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 북풍이 당신 눈의 광채를 되살리는 것을 보았나이다.  
 
 

 *조르주루이 르클레르 드 뷔퐁. 18세기 프랑스의 박물학자. 그가 쓴 방대한 분량의 『박물지(Histoire Naturelle)』에서는 고양이를 개아 대비하여 충직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동물로 설명하고 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서 반역자로 버려진 오빠의 죽음을 매장하려다 잡혀 온 안티고네는 테베의 왕이 된 크레온이 원수는 죽은 뒤에도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말하자 “나는 증오가 아니라 사랑을 함께하기 위해 태어났다.”라고 반박한다. 
 
***어원에는 ‘산 너머’라는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알프스와 피레네 너머 북쪽에서 지중해 지역으로 불어오는 북풍을 말한다. 흔히 남프랑스 지방의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미스트랄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 장 그르니에, 윤진 옮김, 『어느 개의 죽음』에서

 
 
 

아아, 근무 중인 지금 내 개가 더없이 그리워지네요. 그르니에의 표현에 따르면 “실업 상태”인 우리 개들. (잠시 프사 이야기) 골든 리트리버는 스코틀랜드에서 사냥개로 활약한 견종인데, 실로 물만 보면 풍덩 하거나 야생동물 기척에 번개같이 반응하는 우리 개들의 모습을 보면 인간과 사느라 타고난 역량을 다 못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거든요. 『어느 개의 죽음』을 읽으면 한없이 뭉클해지면서 또 동물에 대한 관찰력에 놀라게 되는데, 사냥이라는 옛 귀족들의 취미 생활을 묘사하면서 사냥개의 심리까지도 그려 내고 만 거장의 필치가 떠오르기도 해요. 

개를 기르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개와 말하기 위해 일부러 고안해 냈을 특별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어요. 개와의 소통에선 “말의 내용보다 어조가 중요”하기에, ‘내 개’와 함께 살지 않았으면 절대 내지 않았을 소리와 말투, 몸짓을 자연스레 매일 구사하는 스스로의 모습과 함께 많은 장면이 떠오릅니다. 얼마 전, 내 개가 크게 아팠을 때는 그르니에가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타이오를 보고 겪은 ‘마음의 흔들림’ 비슷한 것을 느낀 것도 같아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 어느 때보다 안타까웠고요. 그렇지만 『어느 개의 죽음』을 읽으며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대목은, 언어로 직접 소통할 수 없는 존재의 눈빛, 행동, ‘속성’, 그리고 함께 속한 자연에 대한 관찰과 탐구가 빛나는 기록들이었음을 내 개의 죽음을 준비할 때 기억해보려 합니다.

 『어느 개의 죽음』은 사랑하는 반려견 타이오의 죽음 앞에서 가눌 길 없는 슬픔을 느낀 장 그르니에가 그를 회상하며 써 내려간 애도 글이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그르니에의 탁월한 통찰과 성찰이 담겨 있다. 우리에게는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이며, 다수의 미술서와 에세이집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미학에 대한 소신을 전달해 왔다. 그르니에는 특히 일상 속에서 경험한 다양한 일화들을 성찰적 어조로 간결하게 풀어내는 글을 썼기에, 그의 글은 쉽고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마음에 깊이 닿아 오늘을 사는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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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랑
    2021.2.15 2:54 오후

    고양이를 입양하여 함께 살 꿈을 꾸는 사람으로서 이 글이 마음에 와닿네요. 지금은 아직 입양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시기라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지만요. 함께 가까이 살게 되면 이 글이 더 새롭게 와닿겠지요? 읽기만 해도 울컥하는데 장 그르니에는 얼마나 애통했을지, 마음이 아픕니다. 인간과 동물, 그러니까 인간과 비인간동물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 동의하게 되어요. 결국 인간이 만든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기준으로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그리고 생명체 간을 구분하는 것일 텐데… 동물권에 대한 생각이 많은 이때에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어요. 한편 늘 감사합니다:-)

    1. 2021.2.24 8:45 오전

      파랑 님, 안녕하세요!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드려요:D

      입양을 준비 중이시군요. 저도 최근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서 내적 친밀감이…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생각보다도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 중이랍니다…
      『어느 개의 죽음』은 읽을 때마다 뭉클해져요. 그르니에가 동물과 인간을 나누기보단 살아가는 방식을 개와 고양이의 유형으로 나누자!라는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건 그가 타이오, 그리고 다른 동물들과 보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