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에로티즘이란 무엇인가

 

 

에로티즘, 인간만의 세계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전국의 서점에서 절찬리 판매 중인 《한편》 4호 ‘동물’에서는 인간이 동물과 자기 자신을 분리했던 생각의 역사를 들여다보는데요. 오늘은 이런 인간과 동물의 이분법을 보여 주는 한 사례라고 할 만한 글을 들고 왔습니다. 인간의, 인간만의 가장 원초적인 영역을 이해하려 했던 조르주 바타유의 사상적 역정에서 마지막에 놓이는 한 권의 책, 『에로스의 눈물』이에요.

우리는 에로티즘과 도덕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불합리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생각은 에로티즘이 종교의 가장 오래된 미신들과 연결된 데서 기원한다. 

역사적인 정확성을 넘어 우리가 늘 주시하는 원칙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둘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욕망, 불타는 격정이 우리 눈앞에 펼쳐 놓는 것에 사로잡히거나 더 나은 앞날에 이성적인 관심을 쏟거나.

 

둘 사이에는 아마도 타협점이 있다. 

나는 더 나은 앞날을 생각하며 살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앞날을 다른 세계로 보낼 수도 있다. 오직 죽음만이 나를 데려갈 수 있는 세계로…….   

 
어쩌면 이러한 타협점이 불가피했다. 인간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죽음 이후에 올 상이나 벌에 매달리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근심이(혹은 그러한 희망이) 힘을 잃고, 즉각적인 관심과 앞날의 이익이, 혹은 불타는 욕망과 이성적으로 숙고된 타산이 타협점 없이 대치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 누구도 불타는 격정이 우리를 더 이상 흔들지 못하는 세계를 상상하지 못하고…… 반면 그 누구도 우리가 더 이상 타산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문명, 즉 인간적 삶의 가능성은 삶을 보장하는 수단들을 합리적으로 예견하는 데 달려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켜 내야 하는 삶 — 문명화된 삶 — 이 바로 그 삶을 가능하게 해 주는 수단들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타산적인 수단들 너머로 그 수단들의 목적혹은 목적들 — 을 찾는다.

 
명백하게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일이 너무도 흔하다. 부(富) — 자기 자신만을 위한 개인의 부도 있고, 공동의 부도 있다. — 는 수단일 뿐이다. 노동은 수단일 따름이다.
 
에로틱한 욕망에의 응답은 — 더 인간적인(덜 육체적인) 욕망인 시(詩)의 욕망, 황홀경의 욕망에의 응답이 그렇듯이(그런데 에로티즘과 시, 혹은 에로티즘과 황홀경이 정말로 다를까?) — 반대로, 목적이다.
 

수단을 향한 추구는 언제나, 최종적으로는, 이성적이다. 반면 목적의 추구는 욕망에 속하고, 욕망은 흔히 이성에 도전한다. 

내 안에서 욕망의 충족과 이해타산이 자주 대립한다. 그래도 나는 욕망 충족을 따른다. 돌연 그것이 나의 최종 목적이 되어 버렸다!

 
물론 나를 눈부시게 하는 그 목적이 에로티즘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에로티즘의 결과로 아이들이 태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 경우 역시 인간적으로 유용성의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돌봄뿐이다. 그러한 유용한 노동(이 노동이 없으면 아이들은 병들고 목숨을 잃게 된다.)과 에로틱한 활동(그 결과로 아이들이 태어날 수도 있다.)을 혼동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에로티즘이 우리 삶의 목적인 한, 유용한 성 활동은 에로티즘과 대립한다. 출산이라는 타산적 추구는, 톱질이 그렇듯이, 인간적 차원에 있어서 보잘것없는 기계적인 작동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이 인간의 기원이자 시발점인 성 본능 속에 주어졌다는 사실로 인해 인간에게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되며, 그 앞에서 인간은 공포에 휩싸일 뿐이다.
그러한 공포 상태가 ‘작은 죽음(petite mort, 원래는 일시적인 실신 상태를 가리키는 의학적 표현이었고, 성적 도취에 따른 ‘오르가슴’의 동의어로 쓰인다.)’ 속에 주어진다. 내가 그 ‘작은 죽음’을 온전히 겪을 수 있을까? 최종적 죽음을 미리 느껴 볼 수 있을까?
 

단순한 성 활동은 에로티즘과 다르다. 단순한 성 활동은 동물의 삶에 주어진다. 인간의 삶만이 ‘악마적’이라 할 만한 양상의 활동을 하며, 그것이 에로티즘이라는 이름에 적합하다.

 

사실 ‘악마적’이라는 말은 기독교와 연결된다. 그런데 기독교보다 훨씬 오래전의 인류 역시 에로티즘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선사 시대의 자료들은 충격적이다. 동굴 벽에 그려진 최초의 인간들은 성기가 발기되어 있다. 선사 시대에 그려진 그림들이니 정확한 의미로 ‘악마적’이지는 않다. 그때의 악마는…… 결국…….  

 
‘악마적’이 본질적으로 죽음과 에로티즘의 일치를 의미한다면, 악마가 결국 우리의 광기일 뿐이라면, 우리가 눈물 흘린다면, 긴 오열이 우리를 찢어 놓는다면, 혹은 발작적인 웃음이 우리를 휘어잡는다면, 우리가 정녕, 맹아 상태의 에로티즘과 연관된, 죽음에 대한 (어떤 의미로는 비극적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스꽝스러운 죽음에 대한) 근심과 강박 관념을 놓칠 수 있겠는가? 동굴 내벽에 흔히 발기 상태로 그려진 인간들이 동물들과 달랐던 이유는 단지 이런 방식으로 — 원칙적으로 — 존재의 본질에 연결된 욕망만이 아니다. 우리가 그 인간들에 대해 알게 된 바에 따르면, 그들은 스스로 죽는다는, 동물들은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 전율했다. 발기 상태의 남자를 묘사한 그림들은 후기 구석기 시대의 것이다. 형상을 옮긴 가장 오래된 예들에 속한다.(지금부터 2만 내지 3만 년 전의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이 불안 속에서 죽음을 인식했음을 보여 주는 가장 오래된 무덤들은 그보다 훨씬 과거에 속한다. 전기 구석기 시대의 인간에게 이미 죽음은 너무도 무거운 — 그리고 너무도 명료한 — 의미를 띠었기에, 그들은 지금 우리가 하듯이 죽은 이들을 묻기 위해 무덤을 만들었다.

  

‘악마적’ 영역은 기독교를 통해 지금 우리가 아는 대로의 불안의 의미를 부여받았지만, 그 본질은 가장 오래된 원시 인간들의 시대에 이미 존재했다. 악마의 존재를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악마적이겠지만…… 인간이, 적어도 인간이라는 종의 선조들이 죽음을 인식하고 불안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살기 시작하던 때 이미 ‘악마적’ 영역은 싹을 틔웠다.
 

인간이 단번에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한 가지 특수한 난점이 있다. 죽은 동료를 처음으로 매장한 이들, 진짜 무덤에서 나온 유골의 주인들은 최초의 인류보다 한참 뒤의 후손들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동료의 주검을 챙긴 그들도 여전히 우리와 같은 인간은 아니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그들의 두개골을 살펴보면, 그 윤곽은 여전히 원숭이에 가깝다. 턱뼈가 돌출되고, 대부분 원숭이들처럼 눈두덩 위로 뼈가 불룩하게 나와 있다. 이 원시 인류는 오늘날의 인간을 가리키는 — 인간을 확인하는 —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완전한 직립 자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서 있기는 했지만, 우리처럼 두 다리를 곧게 펴지는 못했다. 심지어 추위로부터 보호해 줄 털이 마치 원숭이처럼 온몸을 덮고 있었다. 선사 시대 연구자들이 ‘네안데르탈인’이라 부르는 이들은 우리에게 뼈와 무덤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들에 비해 인간 형상에서 더 멀었던 선조들의 도구보다 발전된 뗀석기를 남겼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들 역시 머지않아 모든 점에서 지금의 우리와 유사한 ‘호모 사피엔스’에게 밀려났다. (이름과 달리 호모 사피엔스는 지식 측면에서 앞서 존재한 유인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육체적으로 지금의 우리와 비슷했다.)  

 
선사 시대 연구자들은 네안데르탈인들에게 그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호모 파베르(제작하는 인간)’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어떤 용도를 위한, 용도에 맞춰 만들어진 도구가 인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맞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무엇을 ‘할 줄 안다’는 것임을 받아들인다면, 도구는 곧 인식의 증거다. 원시 인간이 남긴 가장 오래된 흔적들, 그들의 뼈와 그들이 사용하던 도구가 북아프리카(테르니핀 팔리카오)에서 발견되었고, 약 1백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첫 무덤들에서 알 수 있는 사실, 즉 인간이 죽음을 인식하기 시작했음은 (특히 에로티즘의 차원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은 시기적으로 훨씬 뒤, 원칙적으로 지금부터 약 10만 년 전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의 우리와 동류의 인간, 즉 그 유골을 통해 우리와 같은 종에 속함을 확인할 수 있는 이들이 나타난 때는 (여기저기 흩어져 발견되는 뼈들을 제외하고 한 문명으로 연결되는 무덤들만을 고려할 때) 기껏해야 3만 년 전이다.  
 
3만 년…… 이제는 고고학적 발굴로 찾아낸 인간의 유골을 과학과 선사 시대 연구가 해석해 내는, 필연적으로 메마르게 하는 그런 식의 연구가 아니다.

  

이제는 눈부신 기호들…… 깊은 감수성을 건드리는 기호들이다.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할 힘을 지닌, 앞으로도 계속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을 기호들이다. 그 기호들은 바로 오래전 인간들이 주술 의식을 행하던 곳이었을 동굴 내벽에 남겨진 그림들이다.  
 
후기 구석기 시대의 인간, 그러니까 선사 시대 연구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합당하지 않은 이름으로 부른 인간이 나타나기 전까지, 초기 인류는 분명 동물과 우리 사이의 중간적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멀리 어둠 속에서 그들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은 그 모호한 매력을 키우지 못한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 우리 내면에 와닿는 것은 우리 감수성을 직접 건드리지 않는다. 매장 풍습으로부터 그들이 죽음을 인식했다는 결론을 끌어내더라도 그러한 결론은 우리의 사유를 직접적으로 건드릴 뿐이다. 하지만 후기 구석기 시대의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는 그들이 직접 남겨 놓은 기호들로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단순히 뛰어난 아름다움(사실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들이다.) 때문만은 아니다. 그 기호들이 우리 마음을 흔드는 까닭은 에로티즘에 대해 많은 것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에로티즘이라 부르는,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하는, 그러한 격정적 정서의 탄생은 선사학 연구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가장 핵심적인 측면이다.
 

원숭이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우리 동류로의 이행은 분명 결정적이었다. 즉, 골격이 우리와 다르지 않고, 동굴 벽에 그려지거나 새겨진 모습대로 몸의 털이 사라진, 완성된 인간에 이른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여전히 털이 수북했을 네안데르탈인들도 이미 죽음을 인식했다. 바로 그러한 인식으로부터 인간의 성적인 삶을 동물의 그것과 다르게 하는 에로티즘이 나타났다. 이 문제는 아직 제기된 적이 없다. 대부분의 동물과 달리 발정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인간의 성 체계는 원칙적으로 원숭이의 그것에서 파생되었을 테지만, 원숭이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점에서 인간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원숭이는 곁에 있는 동족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지만 네안데르탈인들은, 물론 아직 완성되지 못한 인류였지만, 동족의 주검을 매장했다. 더구나 그 일에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드러내는 주술적 정성을 쏟았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성 활동은 원숭이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강렬한 흥분이며, 어느 주기에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인간의 성 활동에는 동물들은 알지 못하는, 특히 원숭이들한테서도 볼 수 없는 조심성이 있다. 우리가 성 활동에 대해 느끼는 거북함은 최소한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에 대한, 죽은 자들에 대한 거북함을 상기시킨다. 두 경우 모두에서 ‘폭력’이 낯설게 범람한다. 성과 죽음 모두에서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받아들인 사물의 질서에 비추어 낯선 사건이며, 폭력은 바로 그 사물의 질서에 맞선다. 성의 경우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죽음 속에는 우리를 거북하게 하는 모종의 무례함이 담겨 있다. 
 

죽음은 눈물과 연결되고, 때때로 성적 욕망은 웃음과 연결된다. 하지만 웃음은 보이는 것만큼 눈물과 다르지는 않다. 웃음의 대상과 눈물의 대상은 언제나 사물들의 규칙적인 리듬, 일상적인 흐름을 끊어뜨리는 폭력과 관계된다. 보통 눈물은 우리를 비통하게 하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과 연결된다. 때로는 기대하지 못한 다행스러운 결과가 너무 큰 감동을 일으켜서 눈물이 흐를 수도 있다. 성적 무질서는 우리에게서 눈물을 끌어내지는 못하지만 우리를 흐트러뜨리고,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뒤엎어 버린다. 둘 중 하나다. 우리를 웃게 하거나 성교의 폭력에 빠뜨리거나…….

 

죽음 혹은 죽음의 의식과 에로티즘의 일치를 명료하고 분명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원칙적으로, 달아오른 욕망은 생명과 대립적일 수 없다. 생명은 바로 그러한 욕망의 결과다. 에로티즘의 순간은 심지어 그 생명의 정점이다. 그 가장 큰 힘, 가장 높은 강도는 두 존재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순간, 하나로 결합되는 순간, 그렇게 영속적으로 이어지는 순간에 드러난다. 그것이 생명이며, 생명을 복제하는 생식이다. 그런데 그러한 생식 과정에서 생명이 범람한다. 범람하고 넘치면서 극한의 착란에 이른다. 한데 얽힌, 비틀리고 황홀함에 취해서 넘치는 관능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몸들은 훗날 자신을 부패의 침묵에 바치게 할 죽음의 반대쪽으로 나아간다.

 

사실 누가 봐도 에로티즘은 생명의 탄생에, 죽음이 휩쓸어 간 자리를 끝없이 메어 주는 생식에 연결된다.  
 

 

동물들은, 종종 성욕의 절정에 휩싸이기도 하는 원숭이들까지도 에로티즘을 알지 못한다. 동물들이 에로티즘을 모르는 까닭은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에로티즘의 격정적인 폭력, 필사적인 폭력을 아는 이유는 인간이기 때문이며, 죽음을 향하는 어두운 전망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이성이라는 유용한 경계 안에서 이야기함으로써 성적 무질서가 가지는 실용적 의미와 필요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성적 무질서의 마지막 국면에 ‘작은 죽음’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이들로서는, 그 속에서 죽음의 의미를 보았다고 이상할 게 없지 않은가!
 
 
 

─ 조르주 바타유, 윤진 옮김,

『에로티즘의 눈물』 머리말과 1부 중에서
 
 
 

선사시대 인류가 남긴 동굴 벽화를 보고 감동하는 데서 잠시 멈추게 되네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할 힘을 지닌, 앞으로도 계속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을 기호들이다.” 그때와 지금의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는 느낌. 중학교 때 먹고 싶은 음식을 낙서하다가, ‘혹시 동굴 벽화 속 사슴이나 소를 그린 마음도 이런 것인가?’하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던 적이 있어요.  
얼마 전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 프랑스어로는 오르가슴을 ‘작은 죽음‘이라고 말한다고 알려 주는 부분이 있는데요. 정말 상징적인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또 만나니 반가워요. 죽음 앞에서의 불안과 긴밀한 관계인 에로티즘을 탐구하는 프랑스인이라면, 당연히 이 의미심장한 단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저도 같은 문장에서 쉬었는데, 중학교 때 이미 깨달으신 건가요. 인간이 인간으로 서기 위해서 동물과 자기 자신을 구분한다는 게 《한편》 ‘동물’ 호의 문제의식이었지만, 바타유의 격정적인 문체에도 빠져들게 되죠. 동물은 다른 동물의 죽음을 의식하지 못한다거나, 성적인 만족을 모른다는 언급들 하나하나는 주말에 본 <동물의 왕국>으로도 반박 가능한데, 인간만이 에로티즘을 안다는 전제만은 확 와닿아요. “불타는 격정이 우리 눈앞에 펼쳐 놓는 것에 사로잡히거나 더 나은 앞날에 이성적인 관심을 쏟거나.” 이게 살면서 매일매일 목격하는 양자택일 상황이라서요. 오늘 인용한 대목에서는 무엇보다 ‘악마적인 것’의 정의가 끝내주네요. “악마는…… 결국……” “본질적으로 죽음과 에로티즘의 일치를 의미”한다는 대목에서 역시 그분을 생각했어요…….

20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철학과 문학, 경제학과 신비주의, 고고학과 예술사, 미학을 종횡무진하며 다채롭고 독보적인 사유를 보여 준 금기와 이단의 작가, 조르주 바타유의 마지막 저작이자 사상적 유서인 『에로스의 눈물』. 신경 매독으로 눈이 먼 아버지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어머니 아래서 성장한 조르주 바타유는, 자신의 불안과 공포, 죄책감을 바탕으로 독특한 사유를 구축한다. 그는 파리 고문서 학교를 졸업하고 한평생 사서로 봉직하면서도 자기 영혼을 사로잡은 극단적인 경험―상처 입은 황소에게 죽임을 당하는 투우사, 청나라 베이징에서 행해진 능지형 등―을 해명하고자 다양한 사상과 학문, 문학과 예술을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바타유의 글쓰기는 보통의 철학 논문이나 학술서와 다를 뿐 아니라, 소설이나 시를 대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늘 파격적이었다.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그의 관점은 언제나 ‘상식’을 뛰어넘는, 이를테면 이질적이고 이단적이었기에 항상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죽음, 에로티즘, 쾌락, 종교, 소비, 증여, 금기, 지고성 등 바타유의 사상적 유산은 후대 수많은 사상가들―푸코, 데리다, 솔레르스, 크리스테바 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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