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세계의 종말이 임박할 것이다

 

 

단편 소설 통째로 읽기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절찬리 판매 중인 《한편》 4호와 함께 ‘동물과 인간 이야기’를 보내드리고 있어요. 오늘은 단편소설 한 편을 가져왔습니다. 『원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 행위의 주요한 결함의 역사』라는 책을 쓴 재야 학자 또는 광인. 아돌프 괴팅 씨의 이야기예요. “동물을 죽이는 짓은 살인이나 다름없으며”라는 구절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지 같이 보실래요? 알프레트 되블린의 「아스트랄리아」 전문입니다. 

괴팅 씨, 아돌프 괴팅, 재야 학자, 알브레히트 거리 15 거주, 쉴케 부인 집에서 오른쪽으로 세 계단. 그가 자기 방 소파에 앉아 등불을 쬐고 있다. 누런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눈에는 염증이 있으며 목소리가 빠르고 부드러운, 음울하고 왜소한 남자다. 가느다란 다리를 덮은 갈색 담요의 술 장식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린다.
 
이 왜소한 남자는 맞은편 의자에 깍지를 끼고 앉아 있는 창백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여자, 그러니까 자기 부인에게 간단히 손짓하며 가르친다. 연습이 문화의 토대며 그는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고. 또한 포도즙이 위와 모든 점액에 좋으며 짐작컨대 장속에서 포도주로 변한다고. 변화하려는 생명의 힘은 어마어마하다고. 그는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고.
 
한창때가 지나 시든 여자는 습한 가을 날씨, 격앙된 모임, 과음에 대해 뭐라고 부드럽게 속삭인다.
카타르염을 앓는 남자는 그동안 손가락을 벌리고 천천히 다리에서 모포를 들어 옆에 있는 소파에 올려 둔다. 발을 끌면서 꾸부정한 다리로 창가에 가 삐걱 소리 내며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바라본다.
 
남자의 목소리가 끈기 있고 경건하게 울린다.
 
“당신 말에는 신경을 꺼야겠어, 엘프리데.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잖아. 오늘은 초승달이 떴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는 “오늘은 초승달이 떴어.”라며 흥분하지 않고 무척 간결하게 말한다.
 
“마음, 마음이라고. 마음이 준비가 됐다면, 모든 일을 다 한 거지. 오늘은 초승달이 떴어. 나는 내면으로부터 모든 걸 극복할 거야. 이미 어려운 상황을 여럿 극복했듯이. 그리고 포도즙이.”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도취경에 빠지며 엄숙해진다. “모르겠어? 포도즙이 마음에 기름칠을 하는 거야. 그러면 마음은 민첩해지고 자유롭게 뛰어오를 수 있어. 공중으로. 그곳에서 마음은 자유로워져. 마음은 그리로 뛰어오를 수 있다고. 아니면 들판으로, 아니면 감자 속으로. 어디든 뭐 아무 상관없어. 그리고 또, 그래, 엘프리데, 지저귈 수 있어, 마음은 말이야. 모두가 귀로 들을 수 있게 찌르륵거리고 지저귀고 그럴듯하게 노래할 수도 있어.”
 
빛이 깜빡거리고 등불이 연기를 내며 탄다.
그리고 근심에 싸인 창백한 부인이 등불을 바라볼 때 남자가 한숨을 쉰다.
온화한 부인은 재빨리 남편에게 가서 검은색으로 기운 갈색 양말을 목에 둘러 준다.
 
“따뜻하게 입어야지, 아돌프. 복대도 두르고. 당신 침대 위에 있어. 에구, 밤에 밖에 오래 있으면 안 돼.”
 
퉁퉁하고 다정한 이 보잘것없는 여자는 남편의 악수를 받고는 방에서 사라진다.
 

 

 

괴팅 씨, 아돌프 괴팅, 재야 학자, 알브레히트 거리 15 거주, 쉴케 부인 집에서 세 계단 위. 『원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 행위의 주요한 결함의 역사』의 저자, 슐체 & 벨하겐 출판사, 베를린, 1903년, 사절판 370쪽, 양장본 4마르크, 여러 경건한 단체의 회원. 자유 형제단 ‘아스트랄리아’를 결성했고 현재 “내면의 생명과 그 육체적 표현”에 대해 연구 중. 그가 이제 빽빽한 어둠과 짙은 안개 속에서 도시 성벽 위를 걷고 있다. 그는 사색가이므로 산책을 한다. 그는 자신이 사색가라는 것을 안다. 그의 부인은 그것을 모른다.
 
이 음울하고 키 작은 신사는 검은 느릅나무 아래를 거닐며 입과 코에 손수건을 대고 누른다. 그는 재미로 사색하는 사람이나 단순한 사색가가 아니며 자신의 시간을 기다리는 포고자이자 예언자다. 남자는 어떤 동경을 품고서 편안하고 즐겁게 어슬렁거린다. 작은 눈으로 나무에서 사과처럼 생각을 딴다. 비참하고 시커먼 무언가가 저녁에 이곳 느릅나무 옆을 기면서 손을 뻗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그가 말할 때면 사람들은 조용히 있다가 곧 킥킥거리며 서로 몸을 밀쳤다. 작은 만드라고라가 단조로운 어조로 자신의 가르침을, 참회에 관한 지루한 소리를 읊으며 긴 팔을 휘두르다 갑자기 멎고는 시끄러운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일 때면 사람들이 쳐다보고 새된 소리를 질렀으며 터지는 웃음을 참곤 했다. 그러면 그는 집 안에 틀어박혀 사람들의 반응을 곱씹었다. 그러고 나면 음울해진 작은 만드라고라는 사람들을 증오할 수 있었고 그들을 위협했다. 하지만 곧 자신의 복수욕에 깜짝 놀라고 절망해 울었는데, 그에게는 힘이 주어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므로 남자는 이제 폭풍 치는 밤 동경에 차 느릅나무 아래를 가만히 걷는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믿을 것이고 조롱하지 않을 것이다. 불안에 사로잡힌 어느 저녁에 그는 이를 확신하게 되었다. 마음이 충분히 높이 쌓이면 내면으로부터 그를 사로잡을 것이다. 그를 변화시킬 것이다. 어떻게 그리될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그의 팔은 더 이상 원숭이 팔처럼 가늘고 길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는 더 이상 갈라지지 않을 터다. 머리 위에 후광이 자리하리라.
 
“오셨는가, 신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모든 선한 정령들도.” 작은 형제단, 명망 있는 뚱뚱하고 마른 남자들이 성벽 옆 싸구려 술집에서 자신들의 회장을 앞에 두고 일어난다.
 
그들은 나무 잔으로 포도즙을 마시고 불멸의 영혼을 찬양한다. 한 사람씩 차례로 발언한다. 모든 재산을 분배해야 하고, 동물을 죽이는 짓은 살인이나 다름없으며, 곧장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세계의 종말이 임박할 것이다.
 
그들은 포도즙을 마신다. 투박하고 지저분한 손에 푸른색으로 철한 기도문을 들고 “나의 구세주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아네.”라고 노래한다. 구세주는 가까이에 있다. 이미 한쪽 발바닥을 지상에 딛고 서 있다.
 
그들은 해골 장식이 있는 기다란 검은색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며 세차게 연기를 내뿜는다.
누런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눈에는 염증이 있으며 목소리가 빠르고 부드러운, 음울하고 왜소한 남자가 볼이 상기되어 탁자 한구석에서 일어난다.
 
흥분하여 유리잔을 달그락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남자가 외친다. 예언자가 가까이에 있다고, 고대하던 예언자가 불신자들을 쓰러뜨릴 거라고, 민중들과 왕들과 형제들을. 예언자는 결단코 곧 올 거라고. 이 달콤한 음료가 자기를 기쁘게 한다고. 다가올 일들이 흡사 임신부 배 속에 든 아이처럼 은연중에 준비되었다고. 그 준비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누가 알겠느냐고. 형제들에게 확언하건대 사실이 그렇다고. 인간이 서로를 절멸시키는 큰 전쟁이 터질 거라고. 지상에서는 긴장이 이미 최고조에 다다랐고 세계는 이미 무장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만이 남는다고. 구름 속에 벌써 구세주께서 그분의 작품을 완성할 준비를 갖추고 서 있다고. 구세주 그분의 말씀인 구름 속에.
 
그들은 포도즙을 마신다. 초승달 뜬 밤에게 술집의 작은 문을 열어 준다.
  
갑자기 모두가 침묵한다.
 
한 사람이 횡설수설하며 일어선다.
 
그들은 경악한다.
 
비밀스러운 일들이 일어난다. —
 

다음 날 아침 쭈글쭈글한 무언가가 가느다란 다리를 질질 끌며 술집 문에서 나온다.
 
처음에는 비틀거리고 손을 더듬더듬하며 말뚝이며 나무며 정원 울타리같이 뭐든 단단한 걸 붙잡으려 한다. 그러다 똑바로 안정적으로 걸어간다. 고개는 왼쪽 어깨로 푹 기울었고 콧구멍은 부었고 눈은 멍하니 반쯤 뜬 채 축축하다. 반라로 걷고 있다. 셔츠 바람에 장화도 없고 모자도 쓰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앞으로 멀리 다리를 홱 뻗고 가슴 앞에 양팔을 서로 대고 누른다. 위쪽 느릅나무 가로수 길에서 사람들이 멈춰 선다. 양철 주전자를 든 우유 파는 소녀와 도로 청소부 둘, 잠이 덜 깬 하얀 얼굴들이다. 쭈글쭈글한 남자는 이에 움찔한다.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본다. 그것은 똑바로 걸어야 한다. 아무렴, 똑바로 걸어야 한다.
 
그것은 혼자 흥얼거린다…….
  
그것은 맨발로 천천히 자기 길을 간다. 행복에 겨워, 고통스럽게, 무겁고 어두운 구름에 실려. 그것은 구름 속에 서 있다. 그것 자신의 말인 구름 속에.
 
왜소한 남자는 문득 뜨거운 전율에 사로잡힌다. 만약에 믿을 수 없는 일, 변화가 간밤에 일어났다면!
 
앞서 두 청소부는 그를 쳐다봤다. 그는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들었다 다시 내려뜨린다. 초승달이 뜨는 신성한 밤이었다. 그에게서 뭔가가, 두려움이, 광채가 그의 이마에서, 그의 머리카락에서 발하지 않을까. 사람들을 사로잡고 제압하지 않을까. 물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흥얼흥얼 조용히 노래하면서 몽상에 잠겨 계속 걸어간다.
 
아래쪽 좁은 거리에서 이발사, 손수레꾼, 빵집 주인 들이 서로를 밀친다. 모여서 속닥거린다. 갑자기 괴팅 씨는 대놓고 천박하게 웃는 소리를 듣는다. 지금껏 들어 본 적 없는 웃음이다. 이제 그는 깜짝 놀라며 행복한 전율에 빠진다. 됐다. 기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주님이 기적을 이룬 것이다. 저들이 저주하고 침 뱉도록 놔두라! 그러나 그의 발밑에는 단단한 땅이 있다. 그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서늘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다. 두 발바닥을 지상에 딛고 서 있다.
 
그가 상점들이 막 문을 연 대로로 접어드는 동안 어린 학생 무리가 그의 뒤를 쫓으며 서로 밀치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다가 겁을 먹고 한쪽으로 가 버린다.
 
지난 모든 세월의 고통은 잊혔다. 오, 만물을 주재하는 분께 감사를. 구원하소서, 주여!
 

왜소한 남자는 집으로 가는 계단을 오른다. 알브레히트 거리 15. 그의 시선이 닿자 건물 현관의 사람들이 단번에 침묵한다. 곧 그의 등 뒤에서 길게 속삭거리는 소리가 시작되고 초인종을 울릴 때에도 계속 들린다. 왜소한 남자는 미소를 머금고 문지방을 넘는다. 이 기이한 남자는 방으로 잽싸게 들어오는 음울하고 퉁퉁한 피조물의 눈을 들여다본다. 쭈글쭈글한 남자는 고개를 왼쪽 어깨로 푹 기울이고 팔은 가슴에 꼭 대고 방 안에 서 있다. 입가와 가늘게 뜬 축축한 눈가에는 애정이 담겨 있다. 그가 그녀를 향해 양손을 뻗는다. 감미로움과 진지함이 넘쳐흐르고 남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보라고, 봐. 오, 나는 알고 있었어, 엘프리데. 나 이제 돌아왔어.”
부인은 창틀을 꽉 잡고 남자를 보고 외친다. “아돌프!”
 
“그래, 엘프리데. 온갖 고난 속에서 그분을 위해 준비해 왔어. 아주 오래 기다렸다고. 그걸 위해 매우 혹독한 일도 견뎠고. 하지만 나와 더불어 기다린 너희들, 기뻐할지다!”
  
“그렇게 돌아다닌 거야, 아돌프? 말해 봐 아돌프, 그렇게 내내 돌아다닌 거냐고? 재킷도 안 입고 장화도 안 신고 모자도 안 쓰고.”
 
그녀와 마주한 남자의 눈은 움직이지 않는다. 얼굴은 식고 갑자기 돌처럼 딱딱해진 목소리가 그녀에게 대답한다.
 
“내가 말했잖아. 당신도 고라의 무리(*모세에게 반기를 든 무리. 「민수기」 16장 참조.)인 건가? 비켜. 당신 탓에 나까지 부정 타겠군.”
 
날카롭고 추잡한 웃음소리가 현관과 계단에서 방 안으로 울린다.
 
“아돌프, 대체 무슨 일이야? 당신 물건은 어디에다 두고 온 거야?”
 
왜소한 남자는 자기 발을 노려본다. 두 손은 가슴 위에서 불안하게 움직이고 고개는 서서히 앞으로 기운다.
 
“장화라. 고라의 무리군. 흠, 이 여편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이 여편네가 이 방에서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그러고는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문 쪽을 보면서 엄한 목소리로 포효한다.
 
“웃지 마, 웃지 말라고! 우스울 일 하나도 없다고!”
 
남자는 갑자기 확 달아오르며 침대로 달려가 이불 밑으로 고개를 처박고 더듬거린다. “오, 웃지 말라고…… 제발, 제발, 웃지 마. 오, 부탁이야, 싹싹 빌게, 싹 — 싹 — .”
 
그러면 그녀는 덜덜 떠는 반라의 남자를 붙드는 수밖에 없다.
─ 알프레트 되블린, 신동화 옮김, 「아스트랄리아」,
단편집 『무용수와 몸』 중에서
 
 
 

《한편》 지난 호 ‘환상’이 생각나는 단편소설이었어요. 자신이 말하는 진리를 사람들은 비웃고, 그 반응을 곱씹다가 사람들을 증오하고 위협하고, 그러다 자신의 복수심에 깜짝 놀라 절망하는 광인. 소설 속 사람들과 아마도 같은 눈으로 괴팅 씨를 보다가 ‘아스트랄리아’의 포고문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모든 재산을 분배해야 하고, 동물을 죽이는 짓은 살인이나 다름없다”라니, 미치광이가 틀림없어요! “비밀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 “쭈글쭈글한 무언가”, 집에 굴러 들어온 “그것”을 붙드는 부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가 없었다면 광인은 진작에 얼어 죽었을 거란 생각이 들고요. 

“음울하고 퉁퉁한 피조물” 엘프리데는 “덜덜 떠는 반라의 남자를 붙드는 수밖에” 없죠. 재야 학자 괴팅 씨의 자유 형제단이 “모든 재산을 분배해야 하고, 동물을 죽이는 짓은 살인이나 다름없으며, 곧장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발언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아찔해요. 소설이 출판된 1912년, 슈테판 츠바이크의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 따르면 독일 지성계의 누구도 1차 세계 대전의 징조를 느끼지 못하던 그 무렵에 말이에요. 초승달에게 문을 열어 주고 밤새 포도즙을 마시는 것만은 부럽고 말이죠……. 이탈로 칼비노의 환상소설을 읽은 지난 레터 #34 나무 위에서 평생 산 사람이 있다?! 속 코지모처럼, 일찍이 동물의 권리를 주장한 선각자들이 인간 사회와는 불화하는 모습을 다시 만난 셈이에요.

20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사람이자 현대 독일 문학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거장 알프레트 되블린의 단편 소설집. 유명한 문학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1945년 이후 독일 소설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로 카프카 그리고 되블린을 꼽았으며, 그의 영향력은 W. G. 제발트, 잉고 슐체, 우베 욘존, 아르노 슈미트, 볼프강 쾨펜 등 수많은 후배 작가, 더 멀리는 전통적인 소설 형식과 관습을 부정한 누보 로망(nouveau roman)에까지 미친다. 특히나 되블린의 대표작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은 현대 대도시의 비인간적이고 불안한 풍경을, 영화 몽타주 기법 등 지극히 당대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그려 낸 걸작이다.
되블린은 순탄하지 못했던 성장 환경과 정신과 의사이자 유대인으로서 맞닥뜨려야 했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전부 감당하며, 급격한 현대화의 흐름 속에서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된 대도시 풍경과 사람들의 피폐한 내면을 집요하게 탐구하였다. 눈부시게 발전해 나아가는 서구 문명과 넘쳐흐르는 부(富)의 이면에 자리한 깊은 어둠을 누구보다 먼저 간파하였던 되블린은 현대인의 영혼을 잠식하는 낯선 증상들을 과거의 문학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해야만 한다고 직감하였다. 따라서 “광인 그리고 어린아이들과 있을 때에만 마음이 편안해진다.”라는 되블린의 고백은 결코 과장이 아니며, 앞으로 닥쳐올 물질적, 정신적 위기를 재빠르게 진단하고 내다보았던 그에게는 정녕 불가피한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 ‘읽기 어렵지만 읽어야만 하는’ 되블린의 문학을 살피는 데에 『무용수와 몸』은 완벽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공포와 절망을 각기 다른 열두 가지 군상으로 생생하게 묘파해 낸 『무용수와 몸』에는, 되블린 문학의 주요 주제와 독창적 기법이 모두 빠짐없이 깃들어 있다. “이 작가를 조심하라! 당신의 꿈자리를 사납게 만들고 삶을 변화시킬지니…….” 우리는 『무용수와 몸』의 책장을 펼치기 전에, 귄터 그라스의 ‘경고’를 진지하게 되새겨야 하리라.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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