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동물농장에 울려 퍼지는 노래

 

 

온 세계 방방곡곡의 짐승들이여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2021년 새해에는 ‘동물과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보내드립니다. 영국 한 시골 마을의 평범한 농장이었던 ‘메너 농장’. 이곳은 돼지, 말, 양, 개, 거위와 닭 등 농장 동물들의 혁명에 의해 ‘동물농장’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혁명의 불씨를 지폈던 늙고 지혜로운 돼지 메이즈의 연설을 전해 드립니다. 가슴을 흔드는 가락이 어쩌면 「클레멘타인」과 「라 쿠카라차」의 중간쯤 된다고 하는 노래, 「영국의 짐승들」을 같이 흥얼거려 보아요.
“자, 동무들, 동물들의 삶이 어떻습니까? 우리 똑바로 봅시다. 우리의 삶은 비참하고 고달프고 짧소. 우리는 태어나 몸뚱이에 숨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먹이만을 얻어먹고, 숨 쉴 수 있는 자들은 마지막 힘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 일을 해야 하오. 그러다가 이제 아무 쓸모도 없다고 여겨지면 그날로 우리는 아주 참혹하게 도살당합니다. 영국의 모든 동물들은 한 살 이후로는 행복이니 여가니 하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영국의 어느 동물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비참과 노예 상태, 그게 우리 동물의 삶입니다. 이건 아주 명백한 진실이오.
하지만 그게 자연 질서일까요? 우리가 사는 이 영국 땅이 너무 가난해서 거기 사는 것들에게 품위 있는 삶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동무들, 그게 아닙니다. 천만에, 결코 그게 아니죠! 영국은 땅이 기름지고 기후도 좋아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동물들이 있다 해도 그들에게 먹을 것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메너 농장만 해도 말 열두 마리, 암소 스무 마리, 양 수백 마리에게 상상 이상의 안락하고 품위 있는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계속 이 비참한 조건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겁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노동해서 생산한 것을 인간들이 몽땅 도둑질해 가기 때문입니다. 동무들, 우리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바로 거기 있소. 한마디로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오. 인간은 우리의 진정한 적이자 유일한 적입니다. 인간을 몰아내기만 하면 우리의 굶주림과 고된 노동의 근본 원인은 영원히 제거될 것이오.

인간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그는 젖을 생산하지도 않고 달걀을 낳지도 않으며 힘이 부쳐 쟁기도 끌지 못하고 토끼를 잡을 만큼 빨리 뛰지도 못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동물의 주인입니다. 그는 동물들을 부려 먹고는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먹이만 주고 나머지는 모두 자기가 챙깁니다. 우리의 노동이 땅을 갈고 우리의 배설물이 그 땅을 기름지게 하지만 우리는 몸뚱이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암소 동무 여러분, 지난해 여러분이 짜낸 우유가 도대체 몇천 리터요? 그런데 여러분의 그 우유, 새끼들을 튼튼히 기르는 데 쓰였어야 할 그 우유가 모두 어찌 되었소? 그 우유는 고스란히 우리 적들의 목구멍으로 넘어갔습니다. 암탉 여러분, 지난 한 해 여러분은 수없이 많은 알을 낳았지만 그중 병아리로 부화한 알이 몇 개나 되오? 나머지 알들은 모두 시장에 내다 팔려 존스와 그 수하 일꾼들의 돈주머니를 불려 주었소. 그리고 클로버 동무, 당신이 낳은 새끼 네 마리는 지금 어디 있소? 늘그막에 당신을 부양하고 당신의 기쁨이 되어야 할 그 새끼들 말입니다. 당신의 새끼들은 한 살에 팔려 갔고, 당신은 그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소. 네 번의 출산과 고된 노동의 대가로 당신이 얻은 게 뭐요? 하루 몇 끼 쥐뿔만큼의 먹이와 마구간 말고 지금 당신이 가진 게 뭐요? 
 
게다가 우리는 그 비참한 일생조차도 자연 수명대로 누릴 수 없게 되어 있소. 나 자신으로 말하면 운이 좋았던 편이라 별로 투덜댈 생각은 없소. 나는 십이 년이나 살았고 내가 퍼뜨린 자손만도 400마리가 넘소. 그게 돼지의 자연스러운 일생입니다. 하나 어느 동물도 끝에 가서는 무지막지한 칼날을 피할 수 없소. 

 

 

동무 여러분, 우리 삶의 이 모든 불행이 인간의 횡포 때문이라는 게 너무도 명백하지 않소? 인간을 제거하기만 하면 우리의 노동 생산물은 모두 우리 것이 됩니다. 하룻밤 사이에 우리는 부자가 되고 자유로워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온 신명을 바쳐 인간이라는 종자를 뒤집어엎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동무들, 이것이 내가 여러분에게 주는 메시지요. 반란을 일으키라, 반란을! 물론 그 반란이 언제 일어날지 나로선 알 수 없소. 일주일 후일 수도 있고 백 년 후일 수도 있소. 하지만 머잖아 정의의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만은 지금 내가 발밑의 지푸라기를 보듯 확실한 일이오. 동무들, 여러분의 남은 생 동안 그 목표에서 눈을 떼지 마시오! 무엇보다도 나의 이 메시지를 다음 세대에 전해 주어 미래의 모든 세대가 승리의 날까지 투쟁을 계속할 수 있게 하시오.

그리고 동무들, 여러분의 결의가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걸 기억하시오. 헛된 얘기에 솔깃해서 길을 잃고 헤매면 안 됩니다. 인간과 동물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한쪽의 번영이 곧 다른 쪽의 번영이기도 하다 따위의 말을 인간들이 하더라도 그 말을 믿지 마시오. 그건 모두 거짓말이오. 인간은 인간 말고는 그 어떤 동물의 이익에도 봉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동물들에게는 완벽한 단결과 투쟁을 통한 완벽한 동지애가 필요하오. 모든 인간은 우리의 적이며 모든 동물은 우리의 동지입니다.
 

두 발로 걷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입니다.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모두 우리의 친구입니다. 인간에 맞서 싸울 때 우리 동물들이 결코 인간을 닮아서는 안 된다는 점도 기억하시오. 여러분이 그를 정복하더라도 절대로 그의 악한 짓거리들을 모방해선 안 됩니다. 동물은 어느 누구도 집 안에 살아선 안 되며 침대에서 자도 안 되고 옷을 입거나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돈을 만져서도 안 됩니다. 장사에 손대서도 안 돼요. 인간의 모든 습관은 사악합니다. 무엇보다 동물은 동족을 폭압해서는 안 됩니다. 힘이 세건 약하건, 똑똑하건 똑똑지 않건 간에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동물은 어느 누구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됩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합니다.

 
자, 이제 동무들, 지금부터 어젯밤의 내 꿈 얘기를 하겠소. 그 꿈을 여러분에게 자세히 들려줄 순 없소. 그건 인간이 사라진 다음의 이 지상에 대한 꿈이었소. 그런데 어젯밤 꿈에서 그 가락이 되돌아온 것이오. 그뿐이 아닙니다. 잊혔던 가사가 꿈에서 다시 생각난 겁니다. 그래요. 그 옛날 동물들이 불렀던 노래의 바로 그 가사, 그 후 여러 세대가 잊어버렸던 그 가사가 말입니다. 동무들, 지금 그 노래를 여러분에게 들려 주겠소. 난 이제 늙어서 목소리가 쉬었지만 여러분에게 가락을 가르치면 다들 잘 부를 수 있을 거요. 「영국의 짐승들」이라는 제목의 노래요.”  
 

영국의 짐승들이여, 아일랜드의 짐승들이여,
온 세계 방방곡곡의 짐승들이여,
내 기쁜 소식에 귀 기울이라
황금빛 미래를 알리는 이 기쁜 소식에.
곧 그날이 오리,
독재자 인간이 쫓겨나고
영국의 기름진 들판이
짐승들의 것으로 돌아오는 그날이.
우리의 코에서 코뚜레가 사라지고
우리의 등짝에서 멍에가 사라지고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고
잔혹한 회초리도 없어지리라.
상상조차 못 할 부유함
밀과 보리, 귀리와 건초,
클로버와 콩과 사탕무가
모두 우리 것이네, 그날이 오면.
영국의 들판들은 밝게 빛나고
강과 시내는 더 맑아지고
바람은 달콤하게 불어오리라
우리가 해방되는 바로 그날에.
그날을 위해 우리 일하세,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 죽을지라도
암소와 말, 거위와 칠면조,
모두 자유를 위해 일해야 하네.
 영국의 짐승들이여, 아일랜드의 짐승들이여,
세계 방방곡곡의 짐승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그리고 전파하라,
미래에 올 그 황금의 날 소식을.
늙은 메이저의 노래에 동물들은 흥분했다. 메이저가 노래를 끝내기도 전에 벌써 동물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동물들 중 가장 머리 나쁜 축들도 이미 곡조를 익히고 몇 마디 가사까지 읊조렸다. 돼지와 개 들처럼 머리 좋은 동물들은 몇 분 안 되어 가사를 몽땅 외웠다. 그러고 나서 두세 번 연습이 끝나자 온 농장이 「영국의 짐승들」을 우렁차게 합창했다.
─ 조지 오웰, 도정일 옮김, 『동물농장』 중에서

메이즈의 연설 부분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보니 『동물농장』이 인간 세계로 치환되지 않고, 오늘날 인간들의 동물 착취를 고발한 생생한 다큐처럼 느껴지네요. 혁명, 해방이라는 단어는 실제로 동물권 운동에서 사용되기도 하지요. 한편 ‘개’같은, ‘돼지’같은 등의 동물비하 표현이 일상화되기까지 이러한 우화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궁금해집니다.

1945년에 쓰인 메이저의 연설을 2021 한국에서 읽으니 비유나 우화의  대목으로 읽히지 않네요.( 팩트  겁이 납니다.) “자연 질서” “품위” “비참한 조건” “노동” 같은 익숙한 단어는 ‘늙고 지혜로운 돼지라는 발화자를 만나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같습니다. “인간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말에  맞고, “돼지의 자연스러운 일생이란 무엇일까 (의심도 섞어고민해 보게 되고요하지만 “인간과 동물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라 말이 얄팍한 눈속임이 아니라는  온몸으로 (뒤늦게배워가는 요즘이죠 농장 동물들의 선언과 합창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에 관한 다양한 단서들을 《한편》 4호에서 발견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화 형식으로 당대의 정치적 현실을 날카롭게 묘파한 『동물농장』은 『1984』, 『카탈로니아 찬가』와 함께 조지 오웰이 47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사망하기 전 짧은 작가 생활 동안 남긴 영국 문학의 위대한 결실이다. 이 작품이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것은 2차 세계 대전이 갓 끝난 1945년이었다. 소련과 사회주의에 민감하던 분위기에서 이 작품은 처음엔 거의 모든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할 정도로 홀대받았다. 사실상 전시(戰時)나 다름없던 무렵, 겨우 출간된 『동물농장』은 나오자마자 초판이 매진되고 재쇄를 거듭한 끝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이후 7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동물농장』의 판매량은 세계적으로 1천만 부 이상을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인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혁명을 이루고 이상 사회를 건설한 동물 공동체가 변질되는 모습을 통해 구소련의 역사를 재현하며 스탈린 독재 체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혁명이 성공한 후에 어떻게 변질되고, 권력을 잡은 지도자들이 어떻게 국민을 속이고 핍박하는지를 면밀히 그린 이 우화는 특정한 시대에만 한정되어 읽히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살 때부터 벌어진 ‘독재’를 함축적인 등장인물과 사건을 통해 그려내어 지금까지도 유효한 풍자를 담고 있으며, 그렇기에 조지 오웰이 지닌 사회비판적 문학의 역량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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