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광인과 말다툼할 수는 없는 것

《한편》 9월호가 곧 나옵니다! 3호의 주제는 예고해드린 대로 ‘환상’. 열 명의 필진들은 환상으로 무슨 이야기를 풀려나? 독자님이 좋아하실까? 그런데 환상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마감을 코앞에 둔 편집자의 혼란에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환상문학의 한 대목을 띄워보냅니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시인인 ‘이반’이 정신병원에 끌려갔는데, 본인은 결코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네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러시아문학의 대가 또는 정신분열증자, 거장 또는 광인의 환상적인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입니다.
최근 모스크바 외곽의 강가에 설립된 유명한 정신병원의 접수실에 뾰족한 턱수염을 기르고 흰 가운을 갖춰 입은 사람이 들어섰을 때 시간은 새벽 1시 30분이었다. 남자 간호사 세 명은 소파에 앉아 있는 이반 니콜라예비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여기에는 또 극도로 흥분한 시인 류힌도 있었다. 이반 니콜라예비치를 묶었던 수건은 한 덩어리로 뭉쳐져 그가 앉은 소파 한쪽에 놓여 있었다. 이반 니콜라예비치의 손과 발은 자유로웠다.
류힌은 들어온 사람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져서 기침을 하고 소심하게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박사님.”
박사는 류힌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으나, 인사를 하면서 류힌을 보지 않고 이반 니콜라예비치를 보았다. 이반은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눈썹을 추켜올린 채, 의사가 들어왔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 박사님.” 류힌이 왠지 알 수 없지만 비밀스럽게 속삭이는 소리로 겁먹은 듯 이반 니콜라예비치를 곁눈질하면서 말했다. “이분은 저명한 시인 이반 니콜라예비치인데……. 그게, 그러니까 말입니다……. 저희 생각에는 과음으로 인한 광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폭음을 합니까?” 박사가 잇새로 내뱉듯이 물었다.
“아니요, 가끔 마시긴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바퀴벌레나 쥐, 조그만 악마, 달리는 개를 잡으려고는 안 하던가요?”
“아뇨. 어제하고 오늘 아침에 만났어요. 그때는 완전히 건강했는데…….” 류힌이 몸을 떨며 대답했다.
“그런데 왜 내복 차림이죠? 잠자리에서 데려왔나요?”
“박사님, 그러니까, 레스토랑에 저런 차림으로 들어왔어요…….”
“아하. 알겠습니다.” 박사가 대단히 만족스럽게 말했다. “찰과상은 뭡니까? 드잡이라도 했습니까?”
“담장에서 떨어졌고, 그다음에는 레스토랑에서 누구를 때렸고…… 또 누구 다른 사람도 때렸는데…….”
“예, 예. 알겠습니다.” 박사가 대답하고 이반에게 돌아서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시오, 사기꾼!” 이반이 큰 목소리로 독살스럽게 대답했다.
류힌은 너무나 창피해서 예의 바른 박사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의사는 전혀 기분 상해하지 않고, 능숙하고 편안한 동작으로 안경을 벗고는 가운 자락을 조금 들어올려 그것을 바지 뒤춤에 집어넣고 나서 이반에게 물었다.
“몇 살입니까?”
“댁들은 날 내버려 두고 악마한테나 가 버리시오!” 이반이 난폭하게 소리치고 몸을 홱 돌렸다.
“어째서 화를 냅니까? 내가 뭔가 불쾌한 말이라도 했습니까?”
“난 스물세 살이오.” 이반이 흥분하여 말했다. “그리고 당신들에 대해서 전부 항의서를 제출할 거요. 특히 너에 대해서, 이 기생충아!” 그가 류힌을 향해 개별적으로 진술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 대해서 항의하고 싶습니까?”
“나를, 건강한 사람을 붙잡아서 강제로 정신병원에 끌고 왔지 않소!” 이반이 분개하여 대답했다.
류힌은 이반을 들여다보고 온몸이 차가워졌다. 과연 그의 눈에는 전혀 아무런 광기도 없었다. 그리보예도프 레스토랑에서 보았던 흐린 눈은 이제 보통 때의 맑은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맙소사!’ 류힌이 겁에 질려 생각했다. ‘그래, 저렇게 그냥 멀쩡하단 말인가? 이게 무슨 헛소리야! 그럼 우린 도대체 왜 그를 여기로 끌고 온 거지? 멀쩡해, 멀쩡하다고. 그저 낯짝이 좀 긁혔다뿐이지…….’
의사가 번쩍거리는 쇠 다리가 받쳐진 동그란 흰색 의자에 앉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정신병원에 끌려온 게 아니라 병원에 와 있고,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다면 아무도 당신을 붙잡아 두지 않을 겁니다.”
이반 니콜라예비치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곁눈질을 했으나, 그래도 어쨌든 이렇게 웅얼거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 머저리에 무능한 사샤 같은 천치들 사이에서 드디어 정상인 사람이 나타났군요!”
“무능한 사샤는 누굽니까?” 의사가 문의했다.
“여기 있는 류힌이지요!” 이반이 더러운 손가락으로 류힌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류힌은 격분하여 얼굴이 시뻘개졌다.
‘감사의 말 대신 받는 게 이거로군! 그를 동정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말이지 재수 없는 일이야!’ 그는 비통하게 생각했다.
“정신 상태가 아주 전형적인 부농(富農)이지요.” 이반 니콜라예비치는 류힌의 결점을 폭로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부농인 주제에 교묘하게 무산 계급의 탈을 쓰고 있다고요. 이 위선적이고 음울한 용모를 보고 신년을 기념해 지은 그 낭랑한 시를 다시 읽어 보세요! 헤, 헤, 헤……. ‘날아오릅시다!’에다가 ‘전진합시다!’라니……. 이 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속을 한번 들여다보면…… 비명이 절로 나올 겁니다!” 이반 니콜라예비치는 불길하게 소리내어 웃었다.
류힌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 빨개진 얼굴로 오직 한 가지, 즉 이제껏 뱀 새끼를 품에 안고 키워 왔으며, 자신이 동정했던 인물이 알고 보니 악의에 찬 원수였다는 사실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신병자와 말다툼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당신을 우리에게 데려왔을까요?” 차분하게 이반의 폭로를 듣고 있던 의사가 물었다.
“그러니까 그 천치들은 악마가 잡아가 버려야 해요! 날 붙잡아서 무슨 넝마 조각으로 묶더니 끌고 가서는 트럭에 태워 버렸소!”
“어째서 속옷만 입고 레스토랑에 들어갔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상할 거 하나도 없습니다.” 이반이 대답했다. “모스크바 강에 수영하러 갔는데 누가 내 옷을 집어 가고 이 걸레 조각을 남겨 놨어요! 벌거벗고 모스크바를 돌아다닐 순 없지 않소! 하는 수 없이 있는 걸 주워 입었죠. 서둘러 식당으로, 그리보예도프로 가야 했으니까.”
의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류힌을 바라보자 류힌은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레스토랑 이름이 그리보예도프입니다.”
“아하.” 의사가 말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서둘렀습니까? 업무와 관련된 약속이라도 있었습니까?”
“자문 교수를 잡으려고요.” 이반 니콜라예비치가 대답하고 불안하게 주위를 살폈다.
“어떤 자문 교수입니까?”
“베를리오즈를 아십니까?” 이반이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서 물었다.
“그…… 작곡가 말입니까?”
이반은 실망했다.
“무슨 작곡가 말입니까? 아, 그렇군……. 그가 아니오! 그 작곡가는 미하일 베를리오즈와 동명이인일 뿐입니다.”
류힌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설명을 해야만 했다.
“문학협회 마솔리트의 회장 베를리오즈가 오늘 저녁 총주교 연못가에서 전차에 치였습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하지 마! 거기 있었던 건 네가 아니고 나야! 그자가 계획적으로 베를리오즈를 전차 밑으로 집어넣은 거야!” 이반이 류힌에게 버럭 화를 냈다.
“밀었습니까?”
“‘밀었습니까’라니 그게 지금 무슨 상관입니까?” 이반은 말이 통하지 않자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그자는 밀 필요도 없었어요! 그자는 정말 인간의 능력 밖에 있는 일들도 할 수 있다고! 그는 베를리오즈가 전차에 치일 거라는 사실도 미리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당신 말고 그 자문 교수를 본 사람이 있습니까?”
“그 점이 문젭니다. 나하고 베를리오즈밖에 없었어요.”
“그렇군요. 그럼 그 살인범을 잡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셨습니까?” 의사는 몸을 돌리면서 옆의 책상에 앉아 있는, 흰 가운을 입은 여자에게 눈짓을 했다. 그 여자는 종이를 한 장 꺼내 세로줄의 빈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했지요. 일단 부엌에서 초를 가져다가…….”
“이겁니까?” 의사가 성화와 함께 여자 앞의 책상에 놓여 있는 부러진 양초를 가리키며 물었다.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그런데 성화(聖畵)는 왜?”
“아, 그렇죠. 성화……. 무엇보다도 성화가 그들에게 겁을 줄 테니까요.” 이반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다시 손가락으로 류힌을 가리켰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니까 그 자문 교수, 그자는……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부정한 기운과 관계를 맺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쉽게 잡을 수는 없을 겁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남자 간호사들이 똑바로 부동자세를 취하고 이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요.” 이반이 계속했다. “관계가 있어요! 이건 어찌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는 본디오 빌라도(예수에게 십자가형을 내린 로마 총독 ─ 편집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래, 그런 식으로 날 쳐다보지 말아요! 사실을 말하는 거라고요! 그는 모든 걸 봤어요, 발코니도, 야자수도. 한마디로 본디오 빌라도 옆에 있었어요, 그 점은 내가 보증합니다.”
“그래요, 그렇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슴에 성화를 핀으로 꽂고 쫓아간 겁니다…….”
그때 갑자기 시계가 두 번 울렸다.
“어어엇!” 이반이 소파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2시인데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군! 실례지만 전화는 어디 있습니까?”
“전화 쓰게 하세요.” 의사가 남자 간호사들에게 지시했다.
이반이 수화기를 붙잡고 있는 동안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조용히 류힌에게 물었다.
“이 사람 결혼했나요?”
“독신입니다.” 류힌이 겁먹은 듯 대답했다.
“노동조합 회원인가요?”
“예.”
“경찰입니까?” 이반이 수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경찰입니까? 당직 동무, 지금 당장 기관총으로 무장한 오토바이 부대원 다섯 명을 보내서 외국인 자문 교수를 체포하라고 지시하시오. 뭐라고요? 날 데리러 오세요, 내가 당신들이랑 같이 갈 테니까……. 나 시인 베즈돔니인데 정신병원에서 전화하고 있소……. 여기 주소가 어떻게 되죠?” 이반 베즈돔니가 손바닥으로 수화기를 가리고 의사에게 속삭이듯 질문한 후 다시 수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들립니까? 여보세요……! 무례하긴!” 이반이 갑자기 수화기를 벽에 대고 던졌다. 그리고 그는 의사를 향해 돌아서서 악수를 하고는 건조하게 “안녕히 계시오.”라고 말한 후 나가려 했다.
“죄송하지만 지금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의사가 이반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한밤중에 속옷만 입고……. 몸이 안 좋으신 게 분명하니 여기 계시지요!”
“나가게 해 주시오.” 이반이 문 주위에 모여 선 남자 간호사들에게 말했다. “나가게 해 줄 거요, 말 거요?” 시인이 무서운 목소리로 외쳤다.
류힌은 몸을 떨었고, 여자는 탁자 위의 단추를 눌렀으며, 탁자에 깔린 유리판 위로 빛나는 작은 상자와 봉인된 주사약 병이 튀어 올랐다.
“아, 그래?” 이반이 사냥개에 쫓기는 사냥감 같은 눈빛으로 사납게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좋아! 안녕히 계시오!” 그리고 그는 머리부터 곧장 커튼이 쳐진 창문을 향해 뛰어들었다.
상당히 큰 소리가 났지만 커튼 뒤의 유리는 금조차 가지 않았고, 이반 니콜라예비치는 순식간에 남자 간호사들의 손에 잡혔다. 그는 손을 물어뜯으려 하면서 목쉰 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여기 유리는 대체 뭘로 만든 거야! 놔! 놓으라고……!” (중략)
“박사님.” 충격을 받은 류힌이 속삭이는 소리로 물었다. “그럼 그가 정말로 아픈 겁니까?”
“오, 물론이죠.” 의사가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병입니까?” 류힌이 소심하게 물었다.
지친 의사는 류힌을 바라보며 기운 없이 대답했다.
“언어와 행동의 흥분 상태…… 환각적 현실 인식…… 복합적입니다만…… 아마 정신분열증이 분명하겠죠. 게다가 알콜 중독도 있고…….”
류힌은 이반 니콜라예비치의 상태가 상당히 나쁘다는 것 말고는 의사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고,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런데 계속 그 자문 교수에 대해서 말하는 건 뭡니까?”
“분명히 그의 비정상적인 상상력을 발현하게 한 누군가를 봤을 겁니다. 아니면 환각을 봤을 수도 있죠…….”

몇 분 후 트럭이 류힌을 모스크바로 실어 날랐다. 동이 트고 있었고, 아직 꺼지지 않은 대로의 가로등 불빛은 필요도 없고 불쾌해 보이기까지 했다. 운전수는 헛되이 밤이 지나가 버렸다는 사실에 화를 내며 있는 힘껏 차를 몰았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찢어지는 듯한 타이어 소리가 났다.
숲이 지나가 뒤쪽 어딘가로 사라지고 강이 어딘가 옆으로 지나가고 앞에는 여러 가지 풍경이 펼쳐졌다. 경비 초소가 있는 울타리와 장작더미, 높다란 기둥과 전신주, 전신주 위에 타래 모양으로 말아 놓은 전선, 부스러진 돌 조각 무더기, 줄무늬 운하가 흐르는 대지 — 한마디로 지금 바로 눈앞에, 여기 모퉁이 뒤에 모스크바가 있고, 지금 당장 덤벼들어 보는 사람을 붙잡을 듯한 느낌이었다.
류힌은 흔들리고 덜컹덜컹 튀어 올랐다. 그가 깔고 앉은 그루터기는 계속 미끄러져 빠져 나가려 했다. 이미 트롤리버스를 타고 가 버린 경찰과 판텔레이가 트럭 안에 아무렇게나 내던진 레스토랑의 수건이 짐칸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류힌은 수건을 주워 모으려다 말고 왠지 모르게 악의를 담아 “그래, 다 악마에게나 가 버리라지! 정말 내가 왜 바보처럼 이걸 다 주워야 해……?”라고 새된 소리로 투덜거리고는 수건을 발로 차서 흩어 버리고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그는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불행한 정신병자들의 집을 방문한 것은 그의 내면에 깊은 흔적을 남긴 것이 확실했다. 류힌은 정확히 무엇이 자신을 괴롭히는지 이해하려고 애썼다. 기억에 달라붙어 버린, 푸른 등이 켜진 복도인가? 세상에 분별력을 잃는 것보다 더한 불행은 없다는 생각인가? 그래, 그래, 물론 그것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들 하는 생각 아닌가. 뭔가 다른 것이 더 있다. 그게 무엇일까? 모욕이다, 바로 그거다. 그래, 그래, 이반 베즈돔니가 면전에 대고 던진 모욕적인 말들이다. 그리고 그 말이 모욕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에 비통한 것이다.
시인은 이제 더 이상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흔들리는 더러운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자기 자신을 비난하면서 혼자 푸념하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시……. 그는 서른두 살이었다! 앞으로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도 그는 일 년에 몇편씩 시를 쓸 것이었다. 늙을 때까지? 그래, 늙어 생이 다할 때까지. 그가 쓴 시가 그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가? 명성? ‘무슨 헛소리야!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자. 형편없는 시를 쓰는 사람에게 명성은 절대 오지 않아. 내 시는 왜 형편없을까? 그가 진실을, 진실을 말했어!’ 류힌이 자기 자신에게 무자비하게 말했다. ‘난 내가 쓰는 말을 하나도 믿지 않아!’
시인은 날카로워진 신경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몸을 숙였고, 그의 아래에 있는 바닥은 더 이상 덜컹거리지 않았다. 류힌은 머리를 들어 자신이 이미 모스크바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모스크바 위로 동이 트고 있으며, 구름은 가장자리가 금빛으로 빛났고, 트럭은 대로 모퉁이에 줄지어 선 차들의 행렬에 갇혀 멈추어 있고, 근처 받침대 위에 금속으로 만든 사람(푸시킨 동상을 말한다. ─ 편집자)이 고개를 조금 숙이고 무관심하게 대로를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중략)
류힌은 완전히 고독에 잠겨 들어 생선 접시 위로 몸을 숙인 채 웅크리고 앉아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의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릴 수 없으며, 오직 할 수 있는 일은 잊어버리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면서 한 잔, 또 한 잔을 마셨다.
시인은 다른 사람들이 잔치를 벌이는 동안 밤을 허비했고, 그 밤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제 이해했다. 밤이 돌이킬 수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등잔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종업원들이 재빠르게 테이블에서 식탁보를 벗겼다. 테라스 근처에서 뛰어다니는 고양이들의 얼굴에 아침의 표정이 어려 있었다. 낮이 걷잡을 수 없이 시인 위로 덮쳐 왔다.
 
─ 미하일 불가코프, 정보라 옮김, 『거장과 마르가리타』 중 「6장 정신분열증, 예고된 대로」 
 
소비에트 정권 하의 모스크바. 자칭 흑마술 전문가라는 외국인 교수 볼란드과 그 일당이 나타나면서 시내에는 일대 소동이 벌어진다. 문학협회의 회장인 베를리오즈는 볼란드의 예언대로 목이 잘려 나가고, 이 일을 목격한 젊은 시인 이반은 일당을 추격하다가 난동을 부려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이반의 옆방에는 자신을 ‘거장’이라고 소개하는 사내가 지내고 있다. 그는 일전에는 작가였고, 애인 마르가리타의 사랑과 격려를 받으며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에 관한 작품을 써 냈다. 그러나 시대에 맞지 않게 예수를 다룬 그의 소설은 문단의 혹평을 받고, 거장은 문학적으로 매장당해 폐인처럼 지내다 마르가리타를 떠나 제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온 것이다…….  
20세기 러시아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설가이자 희곡 작가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환상 소설, 사회 비판 소설, 종교 소설 등 어느 범주에 넣어도 손색이 없는 이 작품이다. 초자연적인 대소동과 매력적인 캐릭터, 회화적인 묘사가 어우러져 독자를 환상적인 비행(飛行)의 세계로 초대한다. ‘반(反)소비에트 작가’라는 평단의 혹평과 “불가코프는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스탈린의 비난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불가코프는 자신의 삶을 투영한 ‘거장’의 삶을 통해 독자들 곁에 여전히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