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한편》의 편지 결산_2

매주 《한편》의 편지를 보내드린 지도 어언 30회째예요. ‘인플루언서’라는 주제로 함께한 두 번째 시즌을 마무리하며, 7849명의 구독자 여러분께 결산 보고를 올립니다.
가장 많이 열어 본 편지
 
아리스토텔레스로 시작해 노자까지 인용한 《한편》의 편지 #17~#30 중에서 40.9%의 가장 높은 오픈율을 기록한 편지는 바로 #19 인플루언서 vs. 슈퍼전파자입니다. 인문잡지 《한편》 2호에 실린 신경인류학자 박한선 선생님의 글 중 일부였죠. 바이러스의 세계와 정보의 세계를 대비한 이 한 편은 코로나19의 유행에 따른 어려움이 길어지고 있는 오늘에도 생각거리를 남기네요.

“헛 정보를 남발하는 사람은 곧 평판을 잃는다. 주변 사람은 그의 이야기를 듣기는 하되 귀 기울여 따르지는 않는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신뢰하는 정보와 헛 정보에 대한 균형이 맞춰진다. 그런데 활판인쇄술은 이런 미묘한 균형을 깨어 버렸다. 또한 인터넷 세계는 터무니없는 가십을 입에 달고 사는 수다쟁이가 활동할 영역을 거의 무한대로 넓혀 주었다. 그동안의 방송이나 언론이 사회적 신망을 얻은 자의 정돈된 의견을 효과적으로 나누는 수단이었다면, 인터넷은 그런 진입 장벽을 사실상 완전히 무너뜨렸다. 강력한 인플루언서가 된 수다쟁이는 엄청난 성능의 확성기를 쥐게 된 셈이다.
 
젊은 사람들은 온종일 디지털화된 언어로 소통하고 대화한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인플루언서의 발언은 밴드웨건 효과, 그리고 인터넷의 강력한 재전송 기능에 힘입어 순식간에 수천, 수만 배의 파급력을 가진다. 물론 때로는 사실도 아니고 올바르지도 않은 이야기다. 이때 정보를 듣는 모든 사람이 피해자가 된다. 마치 치명적 병원균이 숙주를 희생하더라도 높은 전파력을 통해 번식을 도모하는 전략과 흡사하다. 그리고 이런 인플루언서들이 바로 정보화 세계의 슈퍼전파자다.” 
 
 
가장 적게 열어 본 편지
 
이제는 밝힐 수 있다. 27.1%의 제일 낮은 오픈율을 기록한 편지는 #29 연암 박지원의 숨은 라이벌이었습니다. 이 편지가 여러 메일함에서 미개봉 상태로 남은 이유는 메일 제목 때문일까요, 타이밍 때문일까요? 해당 편을 작성한 편집자는 그래도 이 우울한 편지를 소개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고 전하네요. 연암의 ‘숨은 라이벌’ 유한준의 이야기를 역사 속에서 발굴한 심경호 선생님은 메일로 이런 근황을 전하셨고요. 
 
인문학, 그 가운데서 고전 인문학이 이 어수선한 시기에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과거의 실패’를 점검하는 것은 무언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역사 속 인물들과 저작들을 공부하다 보면, 인간의 한계를 새삼 절감하게 되고, 그렇기에 한계를 알면서 분투한 인물들이 무척 가깝게 여겨집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그 ‘아름다운 실패‘를 이야기해주어야 할 것 같아요. 나 또한 무수한 ‘실패작’을 내고 있죠.

“구멍은 비어 있음이다. 사슴은 오래됨이다. 산속의 바위는 고요함이다. 그대가 곤궁해지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사물에는 넉넉한 면도 있지만 넉넉하지 못한 면도 있다. 운수에는 미치는 면도 있지만 미치지 못하는 면도 있다. 어떻게 조제할 수 있겠는가? 사물을 어찌 갖출 수 있겠는가? 그대는 사람에게 상서롭지 못한 것이 네 가지가 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는가? 첫째는 세(勢), 둘째는 이(利), 셋째는 영(榮), 넷째는 명(名)이다. 세는 나를 욕되게 하고 이는 내게 독이 되며, 영은 나를 가혹하게 하고 명은 내게 질곡이 된다. 그렇기에 지혜로운 자는 흘겨보고 밝은 자는 그것들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대여 그만두게나.”


심경호, 『내면기행』에 수록된 유한준의 묘지명 중에서  
《한편》 마케터가 뽑은 최고의 제목
 
한편, 《한편》의 마케터는 열네 통의 편지 가운데에서 최고의 제목으로#21 전국에 파란을 일으킨 잡지를 꼽았습니다. 편집자가 한방을 노리며 붙인 타이틀을 보고 ‘뭐야뭐야, 우리 《한편》 얘기야 뭐야(웅성웅성)’ 하는 느낌으로 메일을 열었는데, 100년 전 어르신의 화통하고 직설적인 매력에 이끌려 긴 메일을 열자마자 다 읽었다는 전언입니다. 
 
또한 통계에 따르면, 이 레터를 72번이나 열어본 구독자 님이 계신데요.(그렇습니다. 뉴스레터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통계를 보고 한 통의 메일을 수십 차례 재개봉하는 분들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서버 오류였을까요, 진정 그분의 마음에 파란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뜻이 있는 사람은 결국 일을 이룬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뜻이 없는 것을 걱정하지, 재주와 힘이 없는 것은 걱정하지 않는다. 뜻이 한결같으면 힘이 생기고, 힘을 집중하면 재주가 생기는 법. 이것은 당연한 이치이니, 여러분은 이 점을 거듭 생각하기 바란다.”


『한국 산문선: 근대의 피 끓는 명문』에 수록된 이기, 「도끼로 찍어 없애야 할 것」 중에서
 
《한편》 편집자가 뽑은 내 마음속 1위
 
《한편》 편집자들은 여러분에게 보내드리는 모든 레터를 사랑하는데요. 그중에서도 마음이 가는 레터가 있기 마련이랍니다. 두 번째 시즌에서는 #25 러시아의 여자 마법사가 그렇습니다. 막심 고리키가 기록한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 러시아의 한 마을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영향력을 발휘하는 마법사 할머니 이야기였죠. 한참 산만하다가도 어느새 빠져드는 한 편, 어지러운 세상일로 굳어진 마음을 풀어주는 한 편의 글입니다.

“신도 못됐고, 인간도 못됐고, 사제는 가장 못됐지. 사람은 공평하게 나뉘어야 해. 이쪽 사람들은 이쪽 신에, 저쪽 사람들은 저쪽 신에. 그래야 신들이 사이 좋게 살 수가 있지. 각자 끼리끼리 모여서 말이야.…….” 
 
한밤중에 굴뚝에서 나는 바람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무겁고 그렁그렁한 속삭임에 잠이 깼다. 살그머니 판자 침대 아래쪽을 살피다 이바니하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위에서 보니 그녀는 회색의 모난 덩어리 같았다. 마치 돌덩이 비슷했다. 그녀의 이상하고 희미한 목소리는 기이하게 그렁그렁대고 있었다. 마치 물이 펄펄 끓거나 목을 헹구는 소리 같았다. 이어서 그 끓음으로부터 기이하게 조합된 말들이 솟아나왔다.
“아이고, 그리스도여, 아이고…… 이게 뭔 일입니까, 그리스도여! 제 말을 좀 들어 보세요. 들어 보세요.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여자들이 고통받고 있고, 남자들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아이고, 아이고…….”
 
막심 고리키, 『가난한 사람들』에 수록된 「여자 마법사」 중에서
 
기억에 남는 독자 응답
 
《한편》의 이야기를 확장하는 글들을 매주 보내드리는 가운데, 《한편》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바로 구독자 여러분의 응답입니다. 레터 끝에 달려 있는 ‘좋았어요  대 별로예요 ‘ 링크를 통해 의견을 전해주신 630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여러분의 개선안을 적극 수용하겠습니다. ‘환상’을 주제로 찾아갈 《한편》의 편지 세 번째 시즌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책 읽는 분들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하는 편집진에게 감사드립니다.
무더운 여름에도 잘 읽고 있으니 추운 계절에도 읽을 수 있길 바랍니다.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너무나 취향저격의 문장이…… 감사합니다.
인플루언서가 아닌, 그러나 전문가의 생각을 《한편》에서도 보고 싶습니다. 더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들려주세요. 사소해 보이지만 얕지 않은 이야기를요.
항상 응원합니다. 저는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취소

  1. 똘수또이
    2020.8.20 5:12 오후

    구독자 1만명 가즈아ㅏㅏㅏㅏ

  2. 댓글러
    2020.8.19 4:39 오후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또는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