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피츠제럴드: “위대한 흙수저”

한편을 같이 읽어요! 《한편》 1호의 주제 ‘세대’와 관련해, 오늘은 소설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속 등장인물 설정을 들여다봅니다. 
 
때는 1920년대,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유럽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 무렵에 나온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22년부터 1929년 사이에 주식의 수익 증가율은 무려 108퍼센트, 기업의 이익은 76퍼센트, 그리고 개인의 수입도 33퍼센트나 늘어났네요. 『위대한 개츠비』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가 증권업에 종사하기 위하여 뉴욕으로 온 것이 이해가 가지요.

나는 1915년,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보다 꼭 이십오 년 늦게 뉴헤이번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고,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알려진 때늦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에 참가했다. 미국의 반격을 너무나 만끽했던 나는 고향에 돌아와서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중서부 지방은 이제 세계의 활기찬 중심지가 아니라 우주의 초라한 변두리 같았다. 그래서 나는 동부로 가서 채권 사업을 배우기로 결정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채권업에 종사하고 있었던지라 채권업계가 독신 남자 하나쯤은 더 먹여 살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친척 아주머니와 아저씨 들은 마치 나에게 대학 예비 학교라도 골라 주듯 이 일을 의논하더니 마침내 매우 엄숙한 얼굴로 마지못해 “뭐— 괜—찮겠지.” 하고 말했다. 아버지가 일 년 동안 재정적으로 뒷바라지를 해 주기로 했다. 여러 가지 일로 미루고 미루다가 1922년 봄 나는 어쩌면 영원히 머물러 살 작정으로 동부로 왔다.(18쪽)
 
아버지가 일 년 동안 뉴욕에서의 취준 생활을 뒷바라지해 주기로 하셨고, 친척 어르신들은 조카의 진로에 이러쿵 저러쿵 한말씀씩 하시는군요. 닉은 자기가 아버지와 같은 ‘뉴헤이번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다고 넌지시 밝히는데, 이것은 한국 학생이 “낙성대 다녀요.” 혹은 “2호선 타요.”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예일 대학교를 지칭하는 것이거든요. 이렇게 보면 꽤나 중산층 청년 같은데 말이죠. 한편 소설 속 데이지의 남편인 톰 뷰캐넌은 캐러웨이와 대학 동창이긴 하지만 사뭇 다른 느낌이군요.

데이지의 남편 톰은 여러 운동에 재능이 있었지만 특히 예일 대학교의 풋볼 선수로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뛰어난 엔드 중의 하나였다. 어떤 면에서 보면 미국 전역에 알려진 유명 인사로, 스물한 살 때 이미 탁월한 재능을 보였기 때문에 그 뒤로는 모든 것이 내리막길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의 집안은 굉장히 부유했다. 심지어 대학에 다닐 때도 돈을 물 쓰듯 하는 바람에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톰은 시카고를 떠나 남들이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폼을 잡으며 동부로 왔다. 예컨대 폴로 경기를 즐기려고 레이크포리스트에서 경기용 말을 한 떼나 몰고 왔다.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이 그 정도로 재산이 많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22쪽)  
 
굉장한 부자, 대학생 신분에도 돈을 물 쓰듯 쓰던 풋볼 선수,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폼을 잡을 줄 아는 청년, 데이지와 결혼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남자. 닉은 톰을 두고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이…….?” 하고 어이없어 합니다. 과연, 1920년대의 금수저군요. 같은 세대 사람이라 해도, 자본의 차이는 인간을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듭니다. 전형적이게도 톰 뷰캐넌은 인종차별주의자에 유사과학을 신봉하는 보수주의자로 그려지지요.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나는군. 막 군에서 제대한 젊은 소령으로 전쟁 때 받은 훈장을 온몸에 가득 달고 있었어. 형편이 아주 말이 아니어서 계속 군복만 입고 있었지. 사복을 살 돈이 없었거든.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43번가에 있는 와인브레너 당구장에 들어와 일자리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요.
그는 꼬박 이틀 동안 굶었다고 했소. ‘이리 와 나하고 점심이나 같이합시다.’ 하고 내가 말했지. 그는 삼십 분 만에 무려 4달러어치도 넘게 음식을 먹어치우더군.”
“선생께서 그에게 일자리를 주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일자리를 주었냐고! 내가 그를 키우다시피 했지.”
“아, 네.”
“아무것도 없는 무
(無)에서, 정말 시궁창에서 그를 건져 냈소.”(240쪽)
 

“이건 그 애가 어렸을 때 갖고 있던 책이오. 그걸 보면 잘
알 수 있을 게야.”
그는 뒤표지를 펼쳐 내가 볼 수 있도록 책을 빙 돌렸다. 아무것도 인쇄되어 있지 않은 면지에는 ‘계획표 — 1906년 9월
12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우연히 발견했소. 이 정도면 지미가 어떤 녀석인지 짐작할 수 있을 테지?” 노인이 말했다. 
“네, 짐작됩니다.” 
“지미는 반드시 출세할 애였소. 그 애는 언제나 이런저런 결심을 했거든. 그 애가 자기 계발을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시오? 말도 못하게 열심이었지. 언젠가 한번은 이 애비더러 음식을 돼지처럼 처먹는다고 하기에 그 애를 때려 준 적도 있소.”(243~244쪽)
본명 제임스(지미) 개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뒤가 구린 사업을 도운 대가로 재산을 형성한 사내. 제이 개츠비로 개명하고 옥스퍼드 출신이라고 거짓 경력을 늘어놓는 청년. 한 시절을 굵고 짧게 산 아들의 죽음을 들은 늙고 지친 노인 헨리 개츠는 아들을 남다르게 출세할 녀석으로 기억합니다. 10대 시절 개츠비는 자기계발을 열심히 하면 출세하리라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한국에도 “노오력” 이야기가 꽤나 오고갔지요. 

그게 1917년의 일이었어요. 그 이듬해 내게도 남자 친구가 몇 사람 생겼고, 골프 시합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데이지를 자주 만나지 못했어요. 그녀가 어울리는 사람들은 꼭 그녀보다 약간 나이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죠……. 어느 겨울밤, 데이지가 해외로 파견되는 한 군인을 배웅하러 뉴욕으로 가려고 가방을 챙기다가 어머니한테 들켰다는 거예요. 뉴욕에 가지 못하게 된 그녀는 몇 주일 동안 집안 식구들하고는 말도 하지 않았대요. 그런 일이 있은 뒤 그녀는 더 이상 군인들과 사귀지 않았고, 그 대신 군대에 갈 수 없는 평발이나 근시 남자들하고만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이듬해 가을이 되자 데이지는 다시 평소와 마찬가지로 명랑해졌어요. 세계 대전이 휴전에 들어간 뒤 사교계에 데뷔하더니 2월에 뉴올리언스 출신 남자와 약혼했다는 얘기가 있었죠. 그런데 6월이 되자 데이지는 시카고의 톰 뷰캐넌과 결혼했어요. 루이빌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한 그야말로 성대한 결혼식이었지요. 신랑은 기차 객실 네 대에 백 명이나 되는 하객을 데리고 와서 실바크 호텔 한 층을 통째로 빌렸어요. 결혼식 전날에는 그녀에게 35만 달러짜리 진주 목걸이를 선물했어요.(112쪽)
 

아침에도
저녁에도 
우리는 즐겁지 않은가……
한 가지는 분명하지 
다른 일은 잘 몰라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에게 생기는 건 아이들뿐 
그러는 동안 
그러는 사이…….(148~149쪽)
 
레이먼드 B. 이건, 거스 칸 작사, 리처드 A. 휘팅 작곡
 「재밌지 않아?」 중에서
 
 긴 말 않고, 1920년대를 휩쓴 대중가요이자 『위대한 개츠비』에도 등장하는 그 유명한 노래 가사를 덧붙이며 레터를 마칩니다. 이 노래는 누구에게 호소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