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르트르 : “나 때는 말이야…….”

한편을 같이 읽어요! 《한편》 1호의 주제 ‘세대’에 관한 첫 번째 편지를 사르트르가 보냅니다. 1947년, 40대의 사르트르가 작가 지망생이었던 자신의 20대 시절을 회상하면서 “나 때는 말이야”를 펼치고 있네요. 한 세대가 그가 속한 시대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는지 이야기하는 가운데, ‘인간은 상황 속 존재’라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테제가 등장합니다.
 
 
 
우리가 아직도 고등학교의 의자에 앉아 있거나 소르본의 대강의실에서 수강하고 있을 때에는, 피안의 두터운 그늘이 문학을 덮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 순수한 것, 불가능하고 순수한 것이 남긴 쓰디쓴 환멸을 체험했다. 우리는 자신이 불만족에 시달리는 자이며 또 반대로 소비의 아리엘이라고 번갈아 느꼈다. 예술을 통해서 인생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음 학기가 되면 우리에게는 어떠한 구원도 없고 예술이란 우리의 파멸의 명확하고 절망적인 결산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테러와 수사학 사이에서, 순교로서의 문학과 직업으로서의 문학 사이에서 흔들렸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최초의 책들이 나오기 이전인 1930년부터 벌써 그 괴리를 느꼈다.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이 그들의 역사성을 발견하고 어리둥절했던 것이 바로 그 무렵이다. 하기야, 인간이 세계사의 한복판에서 내기를 해서 이기고 지고 한다는 것을, 그들은 학교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그런 사정을 자기들 자신에게 적용해 보지는 않았다. 그들은 역사적이 된다는 것이 죽은 사람들의 경우라고만 어렴풋이 생각해 왔다.
 
과거의 삶을 돌아볼 때 충격을 느끼는 것은, 그 삶이 항상 큰 사건들을 목전에 두고──예상을 넘어서고 기대를 어기고 계획을 뒤엎고 지난 세월을 새롭게 조명하는 그런 큰 사건들을 목전에 두고 전개되어 왔다는 점이다. 한데 바로 이 점에 기만이 있고 변함없는 속임수가 있는 것이다. 아내가 죽은 후 그녀의 애인들에게서 온 편지를 발견한 샤를 보바리는, 행복한 부부 생활인 줄만 알고 <이미 살았던> 20년의 세월이 단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끼는데, 사람은 모두 샤를 보바리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비행기와 전기의 세기에 사는 우리는 그런 종류의 충격을 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 무슨 사건의 <목전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고, 도리어 역사의 마지막 격동을 <막 넘어섰다>는 어렴풋한 자랑을 품고 있었다. 비록 때로는 독일의 재무장에 불안을 느끼기도 했지만, 우리는 길게 뻗은 곧은 길로 들어섰다고 믿고 있었으며, 우리의 생활은 오직 개인적 사정에 의해서만 좌우되고, 과학의 발전과 행복한 개혁에 의해서 지탱되리라고 확신했다.
 

20대의 사르트르
한데 1930년부터는 세계적 불황, 나치즘의 대두, 중국의 격변, 스페인 전쟁 등이 우리의 눈을 뜨게 했다. 바로 발밑에서 땅이 꺼질 것 같았고, 갑자기 <우리에게도 역시> 커다란 역사적 속임수가 시작된 것이다. 세계 대평화의 최초의 몇 년이 이제 별안간 양대전간의 마지막 수년으로 생각되어야 할 판국에 이르렀다. 우리가 그동안 반겼던 모든 약속이 사실은 위협이었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고, 우리가 살아온 나날이 그 진모(眞貌)를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그 하루하루의 시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신속하게, 그리고 느긋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우리를 새로운 전쟁으로 내몰아 갔다. 우리의 개인 생활은 우리의 노력, 우리의 장점과 단점, 우리의 행운과 액운, 그리고 극소수의 사람들의 선의와 악의에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 그런 개인 생활의 사소한 부분마저도 은연한 집단적인 힘에 의해서 지배되고, 가장 사적인 경우조차도 세계 전체의 사정을 반영하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러자 우리는 갑자기 우리가 <상황 속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선배들이 그토록 애써 시도하려고 했던 초탈은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말았다. 미래에 부각되고 있던 것은 집단적 모험이며, 그것은 <우리의> 모험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모험이 후일 우리의 세대의 특징이 되었다. 미래의 어둠 속에서 그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직전인 마지막 순간에, 무슨 섬광처럼 우리의 모습을 자신에게 비춰줄 그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행위의 비밀도, 우리의 가장 내밀한 목소리의 비밀도, 우리의 전방에 있었다. 우리의 이름들이 새겨질 재난 속에 있었다. 

 

이제 역사가 우리에게로 역류한 것이다. 우리가 만지는 모든 것에서, 우리가 숨 쉬는 공기에서, 우리가 읽는 책에서, 우리가 쓰는 책장에서, 심지어 사랑에서, 우리는 역사의 맛과 같은 것을 느꼈다. 삶의 매순간은, 우리가 그것을 향유하려는 바로 그 찰나에, 교묘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가 절대적인 것처럼 신바람 나게 살아온 <현재>의 순간순간은 보이지 않는 죽음의 엄습을 겪고, 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시선에 의해서 다른 차원의 뜻을 띠고, 바로 눈앞에 현존하면서도 말하자면 <이미 지나가 버린 것>같이 보였다. 그러니 이제 자기 파괴적인 대상들을 끈질기게 만들 필요가 어디 있었겠는가? 더구나 쇳덩이와 불덩이에 의한 파괴가 초현실주의를 포함한 모든 것을 위협하고 있던 그때에, 아무것에도 손찌검조차 못한 초현실주의적인 파괴가 무슨 아랑곳 있었단 말인가?
 
역사의 압력은 여러 국가들 간의 상관관계를 우리에게 돌연히 보여 주었다. 상하이에서 일어난 사건은 우리의 운명에 대한 강타였다. 그러나 역사의 압력은 이와 동시에, 본의 아니게도 우리 자신의 존재를 한 국민이라는 집단의 차원에서 새삼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 선배들의 여행, 그들의 화려한 이국취미, 거창한 관광 여행의 격조 따위는 결국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도처에서 프랑스를 앞세우고 다닌 것이다. 그들은 프랑스가 전쟁에서 이겼고, 그 화폐의 환율이 유리했기 때문에 여행할 수 있었다. 프랑화의 뒤를 쫓아서, 프랑화처럼 취리히나 암스테르담보다는 세빌리아나 팔레르모로 진출했다. 
 

한편, 우리가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때는, 각국의 경제 자립 정책 때문에 거창한 관광 여행의 소설들은 사멸하고 말았고, 또한 여행이 신바람 나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선배들은 세계를 획일화하려는 변태적인 취미에 끌려, 세계 도처에서 자본주의의 흔적을 보고는 좋아했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를 돌아다녔다면, 한결 더 분명한 획일성을, 즉 대포의 획일성을 도처에서 아주 쉽사리 발견했으리라. 그뿐만 아니라, 여행을 하건 안 하건 간에, 우리의 조국을 위협하는 갈등에 직면한 이상, 우리는 이미 세계 시민이 아니었다. 스위스 사람이 될 수도, 스웨덴 사람이 될 수도, 또 포르투갈 사람이 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품 자체의 운명이 위기에 처한 프랑스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었다. 우리의 선배들은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서 썼지만, 우리가 이제 독자로 삼으려는 사람들로서는 바캉스는 이미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독자는 우리의 동류자들, 우리처럼 전쟁과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가 없는 그 독자들, 줄곧 단 하나의 걱정에 시달리고 있는 그 독자들에게 합당한 주제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우리가 써야 했던 것은 그들의 전쟁과 그들의 죽음에 관해서였다. 역사 속으로 무참히 끼어든 우리는 역사성의 문학을 할 수밖에는 없는 궁지로 몰린 것이다.
 
─ 「1947년의 작가의 상황」 중에서
장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 『문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1998), 280~2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