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9일(수)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 아카데미에서 마련된
민음 아카데미 다섯 번째 강연 시간에는 경상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정영훈 선생님과 함께 <스토리텔링, 내 마음은 능숙한 이야기꾼이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진_(4)

 

먼저 ‘과연 문학은 언제 쓸모가 있는가’에 대한 문학평론가 김현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김현은 ‘문학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문학의 그 무용함 자체가 문학의 쓸모일지도 모르겠다’는
역설적인 발상을 했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유용한 것은 인간을 억압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마 ‘돈’이겠지요. 이처럼 유용하다고 일컬어지는 것들은 항상 사람을 억합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때 문학은 정작 그 자신이 무용함을 이용해 ‘유용한 것의 폭력성과 문제를 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동굴에 살면서 사냥과 채집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해야 했던 그때,
즉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이야기에 심취해있는 존재’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야기하는 것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그 능력들을 후대에 대물림 해줄 수 있던 존재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문득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 존재들이 정말로 아무런 쓸모가 없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에 아무럭 유익을 주지 못한다면,
즉 남들의 노동을 배가시키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면,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제거되거나 배우자를 얻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그 생물학적인 속성들을 물려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추측해봤을 때, 우리는 ‘이야기에 골몰하는 존재’들이
어떤 생물학적인 이득을 가져다주었거나 쓸모가 있지 않았나 하는 가정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진_(5)

이따금은, 아이들만큼 이야기에 몰두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시기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애써 강요하거나 구슬리지 않아도 눈앞에 보이는 것이 있고 손에 쥘 것이 있으면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걸 가지고 곧바로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속성은,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다 소개 받게 된 소설책이나, 극장에서 보는 영화 등등… 어른들도 무수한 이야기에 둘러쌓여 있지요.
이야기가 없는 인간의 삶이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성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또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제목_e31

‘조너선 고찰’은 인간의 좌뇌가 셜록 홈즈를 닮았다고 비유적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오랜 진화의 과정이 ‘음모와 모략, 인과적 질서들로 가득차 있는
이 세계를 더 잘 알아차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마음속 홈즈’를 선사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속 홈즈’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일관성 있고
질서 잡혀 있으며 의미 있는 세계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고 하는데요,
행여 우리가 이 세계에서 어떤 의미 있는 패턴을 발견해 내지 못하는 경우에는
‘의미’ 그 자체에 중독된 뇌가 작동하여 의미를 만들어 내기 위해 기꺼이 거짓말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c0142857_4de2d16e3bd57 (1)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은 우리가 잠 든 사이에도 이야기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우리 뇌에는 유입되어 오는 정보들을 일정한 형태의 패턴들로 걸러내어 서사화하는 회로들이 있는데,
이들은 잠든 뇌가 만들어 내는 의미 없는 잡담과 소음까지도
일관성 있는 서사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하여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꿈’인 것이지요.

꿈이 써 내려 가는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인간 삶에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딜레마들에 대처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뇌의 입장에서는 꿈과 실제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실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요.
꿈에서 되풀이한 훈련의 결과들은 암묵적인 지식의 형태로 남아 있다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삶에서 구체화되어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꿈이 하는 주요한 역할입니다.
더불어 이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 마음 속에서 은밀하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tumblr_m3fe68owHD1rrv4zeo1_500 (1)

△ James koehnline의 「literature」(2007)

이야기를 듣고 읽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부딪치게 될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놓고 인물들과 함께 고민하고 씨름하고 해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즉, 우리는 이야기에서 일반적인 차원의 해법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실생활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이기보다 ‘전략을 짤 수 있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읽은 이야기를 매번 속속들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마음은 매번 우리 자신을 새롭게 쓰고자 합니다.
우리가 읽은 이야기에 덧붙여 각자의 이야기를 쓰고,
우리가 읽은 이야기 위에 우리의 이야기를 덮어 씁니다.

즉 이렇게 이야기와 삶은, 서로에게 속해 있는 존재입니다.
이야기가 우리 삶의 일부이듯, 우리의 삶 역시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오늘날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전달하는 형태는 많이 달라졌으나,
이야기는 여전히 힘이 있고 우리 또한 이야기를 여전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삶이 계속되는 한, 이야기는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