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2일(수)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 아카데미에서는 민음 아카데미 네 번째 강연이 마련되었습니다.
한혜원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님과 함께 ‘게이미피케이션: 모든 길은 게임으로 통한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지금부터 그 간단한 후기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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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원 교수님과 함께했던 강연의 주요 키워드는 ‘게임’ 자체가 아닌, ‘게이미피케이션’이었습니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란, 소비자 대상 웹이나 모바일 사이트 등 게임이 아닌
애플리케이션 사용을 권장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 기법을 적용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자세히 보기 클릭)
뼛속까지 이야기를 사랑하는 스토리텔러라는 교수님께서는, 이날 강연은 바로 게임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적인 속성과 그것들을 어떻게 각자가 하는 일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들을 나누고자 한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게임적인 속성이나 요소가 들어가지 않은 컨텐츠가 있을까요?
오히려 워낙 상용적인 컨텐츠여서 게임성이 필요없을 것 같은 TV조차도, 게임적인 요소를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지요.
교수님께서는 단적으로 10대 20대가 가장 많이 보는 모바일 스크린의 경우,
그 기기에서 게임성을 배제한 컨텐츠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이야기가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문학은 문학이고 게임은 게임이지만, 다만 소비의 형태가 달라진 것입니다.
즉, ‘게임은 어떤 대안적인 서사들이 모여있는 이야기의 장(場)’이라는 전제를 두고
그 요소들을 나누어 이야기를 보다 자세하게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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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은, 인문학적으로 접근했을 때 비로소 성립되는 내용입니다.
디지털 내러티브, 뉴 내러티브와 같은 하나의 장르를 지칭하는 말인데요,
그렇다면 ‘서사(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내러티브는 이미 나와 있는 텍스트에 대한 지적/양적인 평가이자 텍스트 후적인 상황에 대한 학습인 반면
스토리텔링은 오히려 컨텐츠 기획을 하기 위한 모델링 작업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즉, 텍스트 전 단계에 해당하는 작업인 셈이지요.
스토리텔링은 이미지, 사운드, 동영상, 심지어 터치와 같은 움직임까지 다감각적인 것들을 내포하고 활용하는데
그것이 또 기존의 서사와는 다른 표현력이자 기능으로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말이 곧 인문학이 죽었다거나 진화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문학은 인문학의 영역으로 그대로 있되 다른 형태가 나타나는 것인데,
이런 다감각적인 특성이 나타나는 분야가 바로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게임은 ‘참여’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은 세 시간을 감상하고 나면 줄거리 요약이 가능하지만
게임은 ‘과정출혈적’이기 때문에 게임의 그 경험치를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즉 ‘내가 하면 보이고 남이 하면 안 보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그것이 ‘몰입’이라는 현상이고,
과몰입이 지나치면 중독으로까지 확장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게임은 중독성이 상당히 강한 장르이지만,
교수님께서는 그 중독성 자체가 강하다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매체에 대한 선입견이 확실히 있지만, 그것을 그 매체의 속성으로이해하되
‘어떻게 잘 써먹을 것인가’를 배우자고 하셨습니다.
게임은 끊임 없이 기존의 매체를 담아내려 하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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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기존에는 창작의 주체가 굉장히 한정적이었다면 최근의 트렌드는 집합형, 집단지성형입니다.
디지털 시대 새로운 서사에서는 1인 작가의 독창성과 저작권의 성역이 무너지고,
다양한 집합을 통해서 거대한 총합체로서의 스토리가 구축됩니다.
즉, 게임 스토리텔링은, 창작자들이 네트워킹을 능동적으로 이용해
내부적으로 콘텐츠를 다중적으로 상호 연결, 배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자, 그럼 이제 게임의 구조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게임의 이야기 층위는 단일하지 않고, 총 세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Background Stroy
이 층위는, 기존의 작가들이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던 단계입니다.
최근에는 백그라운드 스토리가 길면 길수록,
즉 내가 이것을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보여주겠다는 식의 나열을 하면 할수록
이용자들의 이탈률은 심해진다고 합니다.

[2] Ideal Story
아이디얼 스토리는 사용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인지하는 단계입니다.

[3] Random Story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랜덤스토리인데, 사용자와 사용자간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의외로 ‘사람’이 재미있어서, 둘 이상만 모이면 그들끼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요.

아이디얼 스토리와 랜덤 스토리를 합하여 ‘사용자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이 층위의 작업이 가장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즉 사용자 경험이 굉장히 중요한데, 하드웨어 어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드웨어를 아우르는 컨텐츠로 이용자에게 소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시대의 스토리텔링은 과거의 스토리와 미래의 텔링을 통해
현재에 창조적이고 생성적인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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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온라인 게임은 동시 접속자들이 최소 10만에서 100만, 1,000만까지 가기 때문에
그들의 아바타가 대리만족을 느끼려면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즉 창작 발상 자체가 굉장히 보편적인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요.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뼈대를 잘 갖추고 있는 것은 민담이나 설화, 신화적인 세계라고 하셨습니다.
국내의 대표적인 게임 업체인 엔씨소프트는 게임을 잘 만드는 회사 중 하나로 유명한데,
유독 외국에서는 흥행이 되지만 국내에서는 안 통하는 게임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사용자 문화에 따라 그 컨텐츠의 흡수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소비하는 이유는 ‘금기를 위반해서 쾌감을 얻기 위함’입니다.
즉, 대안적이고, 가상적인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지요.
이에 따르면 뽀로로는 정말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금기를 건드리고 있다고요.
요즘에는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한 작은 게임들이 독자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도시에서 출퇴근을 하는 동안에 할 수 있는 정도의 게임이며, 대체적으로 ‘카페’와 ‘농장’이 그 배경이라고 합니다.
이런 게임들의 흥행에도 다 이유가 있는데, 바로 이러한 게임들이 도시인의 욕망을 정확하게 읽어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농장에서 노동하는 농부들이 농장 게임을 하지 않는 것처럼,
도시인들의 판타지를 반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카페와 농장이라는 것이지요.
이처럼 게임은, 잉여 시간 내에 하게 되는 노동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게임 ‘시티 오브 히어로’가 한국에서 안 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도시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요.
어찌 보면 정말 단순한 이유지요.

또 예전에 ‘세컨드 라이프’를 국내에 들여왔던 적이 있는데, 이 역시 한국에선 흥행이 전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컨드 라이프는 우리 세계와 똑같은 공간을 조금씩만 다르게 변형한 공간이라고 합니다.
리얼 머니가 트레이드 되고 삼성과 같은 기업명도 그대로 등장을 하는데,
좋은 비지니스의 모델로 부각되며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게임 역시 한국에서 유난히 망했던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세컨드 라이프까지 들어가서 삼성 직원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합니다.
삶에서도 부대끼면서 사는데, 게임에서도 그런 것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대체적으로 보면 한국의 사용자 문화는 억눌린 욕망이 많아서인지
판타지적인 공간이나 계급이 꼭 들어가야 흥행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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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미피케이션은 기능성 게임으로 다양한 사회분야와도 연결이 가능합니다.
NGO 활동, 헬스 케어, 실버적 상황에도 게임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요.

아프리카 분쟁지역 중에 ‘다르프루’라는 곳이 있습니다. 유혈분쟁과 대학살로 이미 널리 알려진 비극의 장소지요.
실제로 이 지역에 대한 상황을 많은 시민사회 단체들이 끊임 없이 얘기를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오래 존속되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한 게임 개발자가 이제껏 축적해 왔던 다르프루의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상을 토대로
실제의 상황과 동일한 게임을 만들었는데, 이 게임으로 8살 아이들에게 사용자 실험을 해 본 결과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게임 속에서는 실제 다르푸르의 가족 구성을 설정케하고 캐릭터를 고르게 합니다.
즉, 그때부터 아이들이 직접 아바타로서 이입되며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지요.
실제로 다르푸르에는 물이 없어 사람들이 많이 죽고 있기 때문에, 게임은 물을 구해오는 내용으로 진행이 된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 갑자기 반군이 쳐들어 오지만, 실제의 상황에 맞게 이용자는 숨는 기술만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이용자는 결국 잡힐 수 밖에 없고, 남아는 장기매매를 당하거나 여아는 강간 후 팔려가는 등의
실제로 그 분쟁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적나라하게 게임의 결과로서 보여진다고 합니다.
바로 이때부터 아이들은 상황에 몰입하여 울기 시작하고,
대체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내가 죽었냐’고 따져 묻는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아이들이 ‘다르푸르’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또한 실제 다르푸르 지역과도 연결이 돼서, 메시지를 보내면 그곳 난민들에게 전달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물론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는 의존성을 가지고 있지만,
교수님께서는 게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차원에서 ‘효과적’이라는 것을 경험했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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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게이미피케이션이 활용되는 대표적인 분야는, 역시 헬스 케어입니다.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불치병(루게릭병)이 있는데, 소아들이 이 근육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치료란, 고작 근육이 최대한 천천히 굳을 수 있게 호흡을 고르게 하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활동으로 ‘촛불 끄기’를 병원에서 진행한다고 합니다.
아무런 컨디션이 없으면 아이들은 이 촛불 하나를 끄기 위해 굉장히 힘들어하고, 아파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친구들을 위해 퀘스트(상황)를 주면, 즉 간단한 기술 조정으로 증강 현실을 제공해주면
그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촛불 끄는 일을 신이 나서 하게 된다고 합니다.
똑같은 활동의 결과이지만, 아이들이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이지요.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것이 곧 ‘게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신다고요.

작게는 무한도전부터 크게는 실버성 게임까지 게이미피케이션은 활용될 수 있으며,
조직 내에서는 유연성이 크게 확대되고 HR을 하시는 분들께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게이미피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2차 창작적인 상황’입니다.
하는 것에서 만드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 동원해, 미디어를 마구 넘나드는 것이지요.
좋은 이야기를, 좋은 미디어로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이날 강연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