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월)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 아카데미에서는 2013년 민음 아카데미 첫 번째 강연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첨단 지식의 놀이터: 우리 시대를 읽는 8가지 키워드’를 주제로 하는 1학기 전체 강연 중,
그 첫 시작으로 민음사 대표편집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은수 대표님께서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포스트페이퍼 시대의 책’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사진_002

그간 늘 민음사 지하 강당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올 1학기 동안에는 특별히 교보문고 광화문점 B1 ‘배움 아카데미’에서 강연이 마련될 예정입니다. ^^
이후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되는 연속 강연은 홈페이지에서 개별적으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클릭)

사진_008

강연에 처음 오신 분들께 드리는 푸짐한 선물입니다!
카페 공지글(클릭)에도 안내되었던, 전 강연 8회차를 사전 신청해주신 모든 분들께 드리는
강연 관련 도서 『한 평생의 지식』과 함께 회차별 참석자 전원에게 드리는 필기구 세트입니다.
북클럽 부클릿과 각종 연필, 볼펜, 노트 등등… 알찬 소품들이 가득하군요. :-)

사진_009

장은수 대표님께 듣는 포스트페이퍼 시대의 책에 대한 강연은, 종이 문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직물 종이부터 채후지까지… 종이가 등장한 이후, 인류는 자신들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글로서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허나 종이가 등장한 이후 400년 동안이나 종이는 ‘죽간’이라는 기록 매개의 형태와 경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바로 이 죽간이 공문서의 기본 형식이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처음에 종이는 ‘읽는 방법의 모든 형태’와 경쟁을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사진_014

중국이 고급 제지 기술을 독점하던 당시, 종이는 동아시아에서만 유통되는 대상이었습니다.
탈라스 전투를 거쳐 제지 기술이 전해진 이슬람에서는 유의미한 변화 두 가지가 일어납니다.
비단 종이라 불리던 ‘사마르칸트지’는 황실에 납품하던 종이였으며 이 종이를 통해 이슬람 사람들은
첫 번째로 ‘코란’을 만들고 ‘아라비안나이트’를 기록하는 위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쫓겨난 그리스로마 철학을 아랍어로 종이에 기록하게 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유클리드 등의 사상이 ‘종이의 결과’로서 보존되기에 이릅니다.
탈라스 전투를 거치면서 종이의 역할이 극대화되었고,
이로 인해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종이가 없었다면 르네상스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민음아카데미1 (1)
유럽에서 종이가 쓰인 건 1100년 경으로, 중국에 비해 약 천 년이나 차이가 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위의 뉘렌베르트 중세 지도의 우측에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제지 공장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 전에는 양피지를 직접 손으로 제작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쌌고,
그런 가격적인 이유 때문에 아무도 성경책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고 합니다.
책을 크게 만들어서 한 명만 읽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당시 개인 독서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었으며,
책이란 것 역시 늘 사람들과 같이 읽는 형태의 그것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소셜리딩과 비슷하달까요. ^^;

사진_027

중세의 기독교 시대에는 반 종교적인 사상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세 말기에 책을 개인이 쓰게 되면서 마녀, 이단과 같은 위험한 생각들이 활자화되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개인이 쓴다는 것은, 곧 개인이 읽기도 한다는 뜻이겠지요. 개인이 생겨야 근대가 시작되는 것이라는 말도 있고요.

때마침, 12세기 종이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종이의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집니다.
책의 관점에서 보자면, 실질적인 근대는 12세기에 시작된 것이지요.
이때에 바로, 책에 가격이 생기고, 베스트셀러 저자가 생겨나며,
독자의 불만과 그것을 처리해주는 출판업자가 나타나기에 이릅니다.

구텐베르크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으로 굉장히 다른 발상을 가졌던 인물인데요,
15세기 초 포도주 압착술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포도주 흡착 기계로 책을 인쇄하고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기술을 개발하면서 져버린 빚 때문에 고리대금업자에게 포도주 기계를 넘기게 되고,
이 영리한 고리대금업자는 200권을 인쇄하고 파리에서 책을 판매하게 되지요.
파리의 필경사들은 이렇게 대량 인쇄, 유통되는 책들을 보고 ‘악마가 내려준 성물’이라고 했다고 하지요.

민음아카데미2 (1)
이렇게 종이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고, 비로소 독자, 즉 책에 빠진 인간 역시 등장하게 됩니다.
이때가 바로 1490년대. 즉, 읽기의 시대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활자의 독재가 생겨남으로써, 이전에 인류가 온몸으로 지식을 체득하던 가능성은 일정 부분 차단되었지만
편하기 때문에 ‘읽기’는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행위로 남게 됩니다.

문자와 뜻이 일치하던 창세기, 즉 목소리의 시대를 지나
인류는 출애굽의 시대, 즉 신의 목소리를 증명해야하는, 문자의 시대를 맞게 됩니다.
기원전 말과 뜻이 분리되는 문자의 시대 이후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 시기는 읽기와 관련한 매우 중요한 시대로 남게 됩니다.
이때 히랍어가 완성되며, 소리를 완벽하게 적게 되는 등, 진짜 책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일리아드의 오디세이 역시 바로 이때에 기록된 책입니다.

사진_038

중세는 낭독과 묵독의 시대였습니다.
중세 후기에 사람들은 속으로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즉 개인적인 읽기를 시작했던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중세에는 포르노그라피가 어마어마하게 등장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레이의 오십가지 그림자』가 전자책 분야에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던 이유과 똑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

묵독은, 내가 읽는 것은 나만 안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한 행위입니다.
내가 스스로 잘 읽는다는 것은, 내 머릿 속에서 내가 저자가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계속 책 내용을 떠올리고, 그 내용을 읽으면서 책을 다시 추체험하게 되는 것으로,
자기 인생을 다시 한 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경험입니다.
책의 본질은 내면에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근대의 책은, 책의 세계를 다시 살아내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몰입’이라고도 말하지요.
좋은 작품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은, 그 이야기 안에서 우리의 인생을 다시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근대를 지배하는 양식은 소설이 되었는데,
인생을 다시 살기에 가장 적합한 매개가 바로,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책은 대중 속으로 점점 잠입하게 되고, 읽기를 하면서 대중들이 점점 책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런 시류에 맞춰 책에도 계속되는 변화가 일어나는데,
첫 번째는 ‘손 안의 책’이라고 해서 책의 크기가 점점더 줄어드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책을 소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개인 서재가 생기고 깊이 읽기가 가능해졌다는 데에 있습니다.
서재가 생기면 독서가 일상화되며, 아무 때나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지요.
우리가 이렇게, 지금처럼 아무 때나 또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진_028

이러한 ‘읽기’의 지배적인 현상은 지금도 계속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컨텐츠에만 소비하게 하는 것의 일종으로 전자책의 형태를 들 수 있는데,
바로 이 전자책은 책이 가지고 있는 역사 속에서 탄생한 읽기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이 곧 내용(컨텐츠)이 됐다는 것은 ‘읽기가 민주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책이 장식성이 강하면 가격이 올라가고, 그렇게 되면 아무나 책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읽기에 헌신하지 않는 것은 점점더 고급화가 이루어질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읽기에만 헌신하는 형태가 전자책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전자책이 소니나 아마존, 애플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책 자체의 내재적 가능성 속에서,
읽기가 지배하는, 즉 읽기에만 헌신하는 운동 속에서 전자책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 말합니다.
전자책에 대한 이런 관점도,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
사진_055

앞으로 책은 ‘북웹’이 될 것이라 말합니다.
책이 곧 웹과 합하여질 것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지금도 이미 그렇게 존재해오고 있음은 물론이구요.
북웹의 특징은 크게 ‘개방, 상호작용성, 소셜’ 등으로 구분되며
점점더 쪼개지고 분리되는 모듈화, 책이 아닌 다른 것과 결합하는 복합화,
개인별 맞춤형 컨텐츠를 제공하는 개인화, 또는 개별화의 현상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 내가 읽은 글귀를 올리는 소셜화는, 책의 커뮤니티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중세에 같이 모여 책을 읽었던 것이나 예전의 서당이나 서원과 같은 역할이,
친구들끼리의 폐쇄형 커뮤니티 안에서 활성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사진_057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을 다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포스트페이퍼의 형태로 짚어봤던 것들을 온라인으로 옮기면
전자책에서도 다른 형태의 책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책 안의 어떤 가능성이랄까요.

사진_059

종이문명으로부터 시작해 책의 사용성과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상상해 봤던
2013 민음 아카데미 장은수 대표님의 첫 번째 강연은, 이렇게 모두 끝이 났습니다.

다음 주에도 계속해 이어지는 민음 아카데미 ‘첨단 지식의 놀이터: 우리 시대를 읽는 8가지 키워드’
연속 강연은 민음사 홈페이지를 통해 개별 강연 별로 자유롭게 선택,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다음 주에는 미술평론가인 이진숙 선생님의 “기술을 예술로 길들이기” 강연이 진행됩니다.

민음사 독자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