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은 교수님과 함께한 『마담 보바리』 파워클래식 북 콘서트 행사 스케치

9월 24일(월) 저녁, 신사동 복합문화공간 ‘제지마스’에서는 이주은 교수님과 함께하는 『마담 보바리』 파워클래식 북 콘서트가 진행되었습니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당시 풍경을 담은 고전 회화를 통해 19세기 여성과 유럽 풍경에 대해 살펴보는 이주은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자유로운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 지금부터 그 소식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실이 아닌 곳에서 사랑을 갈구했던 여인들, 그리고 마담 보바리의 비극적 최후. 『마담 보바리』와 19세기 중반 유럽의 풍경에 대한 이주은 선생님의 본격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열정, 그리고 파멸>

당시 순결한 결혼과 출산을 하며 가족을 위한 삶을 사는 여성은 ‘품위’ 있고 건강하고 ‘정상적’인 여성이었습니다. 가정을 벗어난 상황에 처한 여성은 ‘타락한’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영국은 특히나 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했던 나라였고, 특히나 빅토리아 시대에는 성적으로 무척이나 엄격했기에 당시 가정을 벗어난 여인들은 심지어 가족조차도 받아주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존 밀레이, <오필리어>, 1850

『햄릿』의 여주인공 오필리어의 모습이 담긴 그림입니다. 새 왕을 죽이려던 햄릿은 왕의 충성스러운 재상인 오필리어의 아버지를 왕으로 잘못 알고 죽이게 되지요. 아버지를 죽인 자가 누구인지를 알고도 사랑 때문에 복수할 수 없었던 여자, 성 역할에 엄청난 갈등 상황을 느꼈던 오필리어의 비극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성적 금욕주의>

19세기 여성들이 입었던 크리놀린 스커트입니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치마로 인해 일상 생활에도 불편함을 겪었는데요, 실제로 불에 잘 타는 소재이고 벗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당시 런던에서는 연간 3천명 이상이 마차에 크리놀린 스커트가 끼는 사고로 사망하고, 연간 2만명 정도가 스커트에 불이 붙어 사망했다고 합니다.

시드니 메테야드, <난 이제 그림자만 보는 건 견딜 수 없어>, 1913

거울을 통해서만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저주에 걸린 샤롯의 모습에서 욕망을 상상할 수 밖에 없는 권태로운 ‘마담 보바리’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이 그림으로 북 콘서트 포스터를 만들게 되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주은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1부 강연이 끝나고, 2부에서는 자유롭게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한 독자님께서는 내재적인 욕망을 타인에 의해 충족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공감이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아마 ‘마담 보바리’나 그림 속 여인들은 그 사회로부터 이해 받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지금의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있다고 생각하신다고요.

 또 다른 독자님께서는,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 대해 전개가 익숙하고 마치 아침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신청했다고 하셨는데요. 도리어 여성들의 인권이 억압받던 시절에는 보바리 같은 여성상이 떠오르는 반면, 요즘은 결혼마저도 신분 상승이나 안정감을 추구하는 면모가 있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고요.

마지막으로 플로베르가 자신이 시골 출신이라는 열등의식을 ‘보바리’에게 투영을 했는데, 4년 동안 자신을 투영시킨 캐릭터라고 한다면 좀 더 행복하게 끝날 수 있지 않았을까, 왜 비참하게 안 좋은 결말로 이끌었어야 했을까, 플로베르의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던 게 아닐까 하는 의문점이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이주은 교수님의 멋진 마무리 말씀으로 『마담 보바리』 북 콘서트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글쎄, 문학에서 흔히 나오는 환상이 있으면 그 환상은 반드시 멸한다.

그것이 바로 환멸이다. 환상을 계속 키워갈 수는 없는 것이다.

환상은 현실을 깨닫는 순간 그즉시 환멸이 되는 것, 즉 일루전(illusion)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현실과 만나는 접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플로베르도 그 괴리를 느끼다가 어떤 깨달음에서 ‘환멸’하게 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