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수요일 대학로 일석기념관에서 김탁환, 정재승 선생님의 대중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이 날은 특별히 김탁환 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남희석씨가 사회를 맡아 특유의 유머와 재치로 강연회를 이끌었으며,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남희석(이하 남): 김탁환, 정재승 선생님을 모시겠습니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김탁환(이하 김): 등장인물이면서 이 자리까지 온 남희석 씨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얼마전에 안식월을 맞아 제주 올레길을 혼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안식월을 혼자 맞아 걷고 여행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 통성명을 하며 예술가란 경계를 뛰어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재승 선생과의 작업 또한 경계를 넘어서보자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 딴에는 20여년 만에 공학책을 보면서 정말 용기를 내고 시작한 일이기도 하고, 남들이 ‘무모한 용기다’라고 말할 수 도 있겠지만 ‘작가라면 이런 용기를 계속 내야겠구나.’ 라고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정재승(이하 정): 저는 과학자 티를 내며 아이폰을 들고 강연을 시작하겠습니다.(일동웃음)
저는 눈 먼 시계공을 쓰는데 있어 단초가 된 세 가지 소재를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초등학교 시절 남학생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과 폭력에서 느꼈던 인간의 힘의 논리, 신문사회면에도 실린 한 사건을 통한 인간의 원초적인 생존본능, 또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뇌 실험을 통해 인간의 생물학적인 면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김탁환 선생님과의 협업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었는데요, 역사소설가야 말로 미래 소설을 쓰기에 더 없이 좋은 자격이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김탁환 선생님과 작업하면서 소설 쓰기의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과학은 매우 엄밀한 글쓰기를 요구하는데, 처음 소설을 쓰니까 술술 써져서 원고지 20페이지를 금방 쓰더라고요. 레퍼런스 없이 조금 눈 감고 생각하다가 쓰면 되니까요.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뭔가를 상상하든 내가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고, “내가 쓴 건데 왜 헐리우드 냄새가 나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듣고 배운 것이 한국의 SF소설이 아니다 보니 그런 것이죠. 아, 이래서 소설 쓰는 게 힘들구나, 싶었습니다.

독자 : 두 분의 구체적인 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 2년간 카이스트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 랩을 했습니다. 밑그림을 초고로 쓰고, 써 나가고 나서 이메일로 상대방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읽어 보고 평가해 줍니다. 제가 막 써서 보내면 “이건 과학적으로 안 된다.”라고 정 선생님이 말하고, 정 선생님이 메일 보내면 “아, 이건 캐릭터 안 된다.”라고 말해 주고, 이렇게 서로 매우 신랄하게 했습니다. 9개월 정도 연재를 했고, 서로 고쳐 나가면서 그 시간이 매우 재밌었습니다. 정 선생님이 많이 만져서 내가 모르는 얘기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겁니다. 한 과학자가 바라보는 시각과 소설가가 바라보는 시각이 만나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보는 것이죠. 일일 연재니까 이런 장면은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을 고치는 작업을 한 7개월 정도 해서 책을 완성했습니다.

남: 지금 쓴 것과 신문 연재한 게 많이 다른가요?

김: 지금이 훨씬 낫습니다. (일동 웃음)

남: 한번 신문 연재한 것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미래 예측이 몇 년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정: 얼마 전까지 2030년에 대한 예측이 굉장히 유행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정도 후죠. 과학 기술이 빨리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0년에서 15년 이후의 과학기술은 꽤 정교하게 볼 수 있겠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그걸 현실화하는 데 5년 정도가 걸립니다. 그러니까 2~30년 정도는 앞을 내다볼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길게 잡으면 한 39년 정도, 그 끝이 49년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눈먼 시계공』의 시대적 배경을 한 2020년 정도로 하고 싶었는데, 우기진 않았죠.

독자: 소설이 매우 ‘김탁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담하고, 치밀하고. 캐릭터 궁리를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 굉장히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피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핵무기가 떨어지고 나서 쓰는 거면 훨씬 편하죠. 그러나 정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측 가능성 속에서 써 나가니 매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800페이지 정도 되는 소설인데,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 단순하지 않음에는 우리 나름의 고민들이 있습니다. 큰 미래를 판타지가 아니고, 핵무기 떨어뜨려서 새로 시작하는 방식이 아니고, 지금에서 시작해 어느 정도까지 현실화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죠. 정 선생님이 운동 열심히 하면 2049년까지 살 수는 있으니까, 나중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이 얼마나 현실화되었는가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도 있습니다.

독자: 정 교수님한테 질문이 있는데, 구체적인 질문입니다. 저는 문과 출신이어서 과학은 전혀 모르는데, 교수님의 책들을 보면서 과학도 우리 삶과 떨어질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들을 잘 읽고 있는데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구상하실지 궁금합니다.

정: 『과학콘서트』와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라는 책을 내고 나서 한동안 쉬었어요. 과분한 상찬을 받다 보니 무엇을 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대했는데 아, 이런 게 또 안 나오는구나, 생각할까 봐 10년간은 (글을) 안 쓰려고 했어요. 계속 책을 못 내고 있다가 정말로 10년 후에 글을 내려고 했는데, 그러면 출판계에서 제 이름을 잊을 것 같아서, 지난해와 올해 글을 많이 냈습니다. 진중권 선생님과 함께 한 베스트셀러 등등이 있죠. 지금 나올 책은 사과의 기술에 관한 겁니다. 에델만이라는 곳 도움을 받아 경영 쪽 이야기와 같이 넣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과를 해야 진심이라고 받아들여 줄까, 이런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사과의 기술에 대해 쓰고 싶어요. 과학 아닌 것들에서 과학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제가 추구하는 것인 듯합니다. 앞으로도 과학 아닌 것을 과학으로 바라봤을 때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글들을 쓰고 싶습니다.

독자: 공동 작업을 하셨는데, 김한민씨와 함께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하루하루 연재를 해야 하는데, 이분이 더 고생을 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떤지요.

김: 작업을 하면서 그림을 넣어야 하는데 누가 그리는 게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니까요. 그 사람은 그래픽 노블리스트입니다. 독일에 있었는데, 독일에 있는 사람에게 전화해 가지고 올래? 그래서 왔어요. (일동 웃음) 팀워크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세 명이서 팀워크가 잘 맞아서 재밌게 했어요. 그 이후로 《1/n》 이라는 잡지를 창간해서, 제가 주간으로, 김한민씨가 편집장으로 있습니다.

독자: 읽다 보면 먹물 냄새가 너무 나서, 원초적인 상상력은 안 나왔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예측 가능성에 상관없이 개연성만 있다면 아주 엉뚱한 상상력은 발휘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식과 상상력의 관계에서, 이렇게 가고 싶은데 이런 상황은 일어날 수 없으니 제약받던 상황은 없었는지요.

김: 저는 작업을 할 때 두 가지 방식으로 하는데, 책을 쌓아 놓고 하기도 하고, 아니면 상상력만으로 하기도 합니다.『눈먼 시계공』은 책을 쌓아 놓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소설만 쓰는 것은 아닙니다. 강영호 씨와 쓴 이전 작품은 『99』인데, 드라큘라 성에 20일 동안 감금된 채 홍대 앞을 어슬렁거리는 드라큘라 이야기를 쓴 겁니다. 과학적인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쓴 거죠. 공부를 많이 해서 지적인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 그렇게 하면 다음 작품은 날아다니는 소설을 쓰고, 그다음에는 다시 돌아가는 등 왔다갔다 합니다. 이 작품은 정보와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독자 분께서) 그런 느낌이 든 것 같습니다.

남: 이제 마무리 할 시간인데요. 저는 수와 진 이후로 오래 가는 듀엣을 본 적 없어요. 은방울자매는 자매도 아니고, 손지창 김민종도 오래 가지 못하고요. (일동 웃음) 하지만 이 두 분은 계속 멋진 작업을 함께 해 가실 것 같습니다. 오늘 오신 분들 아쉽게 질문을 하시지 못한 분들도 있을 텐데, 트위터로 함께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정: 오신 분들 모두 사진 함께 찍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김: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김탁환, 정재승 선생님 두 분 모두 개인적인 경험과 느낌을 상세히 살려 강연을 해주셨고, 이에 참석자들 역시 마치 두 분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알차고 재밌는 강연 해주신 두 작가님과 특별 게스트 남희석님,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신 모든 독자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