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쓰는 마음

마케팅부에서 2021년 1월 박완서 작가의 타계 10주기에 맞춰 온라인 서점 특별판을 준비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왔을 때 나는 그저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갖고 싶은 박완서 소설선집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온라인 서점 화면이 온통 박완서의 리커버 책들로 뒤덮일 아름다운 장면을 꿈꾸며,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새로운 판형에 새로운 순서와 새로운 표제를 달아 특별판을 편집하며 나는 무척이나 긴장했다. 좋아했기 때문에. 좋아하면 잘하고 싶고 그러면 떨리기 마련이니까. 어느 때보다 긴장한 채로 연말과 새해를 보냈다. 10주기에 맞추어 책이 무사히 나왔다는 사실이 기쁘고, 그리고 운 좋게 담당 편집자가 되어 박완서 작가를 좋아한다는 말을 거듭 할 수 있어서 기뻤다. 아주 오랜만에 순수하게 기쁜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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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를 읽는 일은 가장 오래된 독서 기억 중 하나다. 가장 처음 읽은 박완서의 소설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다. 나는 그 이야기가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가늠하지 않고 그저 재미있기 때문에 빠져들었다. 그 소설이 작가의 기억 속 장면들을 거의 그대로 길어온 자전소설로 불린다는 것을, 조금 더 자란 뒤에야 알게 되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기억에만 의존했다는 그 소설의 생생하고 선명한 디테일들에 감탄했고, 그런 부분이 좋았다. 동네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하얀 엉덩이를 까고 똥을 누어도 부끄럽지 않았던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안 여자들이 할아버지의 책들을 불리고 찢어 종이그릇으로 만드는 장면, 서울로 상경해 학교에 다니게 된 어린 ‘나’가 할머니가 준 깨강정으로 잠시잠깐 동급생들의 인기를 얻은 일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을 시절 나는 생각했다. 소설은 기억이구나. 어떤 장면과 기억 곁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사람이 소설가구나, 하고 말이다.

오늘의 작가 총서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는 『나목/도둑맞은 가난』을 『지렁이 울음소리』로 바꾸어 나가는 동안, 나는 내가 박완서 소설을 왜 좋아했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 『지렁이 울음소리』에 실린 박완서의 초기 대표작 일곱 편에는 일상의 찰나에 오래 눈길을 두는 태도, 삶과 소설에 이토록 열렬한 의지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기민한 포착과 선뜩한 매만짐이 있다. 아무런 근심 없이 TV 앞에 앉아 쩌덕쩌덕 소리를 내며 군것질을 하는 남편을 보는 눈(「지렁이 울음소리」 ), 가장 고요해야 할 절에 가장 속된 기도를 올리려고 몰려든 여자들을 관찰하는 눈(「부처님 근처」 ), 조카를 붙들고 무조건 공대에 들어가서 결혼을 잘하고 주말이면 카메라를 메고 놀러 나가는 재미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들볶는 고모를 보는 눈(「카메라와 워커」 ) 등.

박완서의 인물에게는 남들만큼만 제대로 살았으면 하는 욕망과 의지가 있는 동시에 남들과 다른 존재이고 싶다는 이상이 있다. 작가는 삶을 꾸리는 데 들어가는 속되고 삿된 것들에 대한 욕망의 풍경을 보여 주며, 삶 그 자체에 대한 미어지는 욕망을 함께 그려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솔직하게 쓴다. 그런 것을 그리면 미움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가차 없는 손으로 그런 마음과 그런 인간이 있잖아, 하고 내민다. 그 방향이 어느 쪽이든 박완서의 인물들이 자신이 믿는 삶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처럼. 누가 걸음걸이가 너무 상스럽지는 않은지, 보폭이 너무 촘촘하거나 너무 성큼성큼인 건 아닌지 우려 섞인 참견을 건네도 그저 욕망의 방향 쪽만을 바라보는 것처럼.

작품집에 실린 ‘작가의 말’이나 산문집 혹은 인터뷰집에서 박완서 작가의 말을 읽을 때면, 그가 자주 자신의 쓰기에 대해 ‘내가 쓸 수 있는 것만을 쓴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면 박완서가 그린 인물은 무척이나 작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고, 나는 작가의 소설을 통해 아주 어렴풋이 작가를 그려 본다. 생의 이런저런 아름다움에는 빠짐없이 눈길을 줬을 테지만 손에 펜을 들고 있을 때는 어떤 수런거림에 단호히 고개를 돌렸을 모습을 상상한다. 자신이 보는 쪽을 흔들림 없이 보는 작가가 귀하다는 것을, 써야 한다고 믿는 것을 솔직하게 쓰는 일이 대단하고 대범한 용기인 것을 안다. 통통한 책을 손에 쥐고 곁에 없는 작가의 소설을 읽는 동안 삶과 소설을 사랑하는 작가의 태도가 나에게도 옮겨오는 듯해서, 혼자인데도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것처럼 든든했다.

편집부 김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