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타자들』 저자를 숭배하지 말 것

외서를 계약할 때는 확신이 서는 순간이 드물다. 계약금, 저자의 인지도, 원서의 내용, 한국어 판의 판매 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는데, 오퍼를 포기하기는 차라리 쉽지만 계약에 나서기가 어렵다. 『나와 타자들』은 확신이 드는 경우였다. 2년에 한 번 수여하는 하노버 철학도서상을 받았다는 소개가 앞섰지만, 무엇보다 여성 철학자라는 점이 좋았다. 문학에서와 달리 철학에서는 여전히 여성 저자가 드문 것이다. 이 책을 권해 준 옆 팀의 부장님은 저자가 뜰 가능성이 있는지에 중점을 두라고 조언했는데, 가능성은 물론이고 적극 띄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2018년 3월에 출간된 원서를 바로 받아서 읽기로 저자 이졸데 카림은 자신이 여성임을 드러내는 타입은 아니었다. 타자 혐오와 다원화를 다루는 이 책에서 여성 혐오는 동성애 혐오, 이민자 혐오와 나란히 다뤄지고 페미니즘은 ‘정치적 올바름’의 한 사례로 등장한다. 다만 첫 문장에서 헝가리의 철학자 아그네스 헬러를 인용하는 것은 시사적이다. 아그네스 헬러는 게오르크 루카치 아래에서 공부했으며 굴라크를 운용하는 공산 정부에 반대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를 떠돌며 “남자건 여자건 정당이건 관계없이” 억압의 주체에 저항하는 철학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1) 이졸데 카림은 루이 알튀세르를 연구했고, 2000년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파시스트적 정부에 대한 시위가 일어나자 ‘민주적 공세’를 조직해 참여하기도 했다. 1929년 태어난 아그네스 헬러와 그의 어머니는 나치 수용소에서 탈출했지만 아버지와 일가친척들은 살해되었다. 1959년 태어난 카림의 가족은 갈리치아 출신으로, 친척 대부분이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다.

 

아그네스 헬러

Österreichischer Filmpreis 2015

 

편집을 할 때 또한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저자의 타이틀을 붙이는 일이다. 책날개에 ‘오스트리아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 소개한 이졸데 카림은 원서의 약력을 보면 철학을 공부했다고만 쓰여 있으며 자유 기고가, 칼럼니스트라 되어 있다. 첫 저서로 『알튀세르 효과: 이데올로기 이론의 구상』(2002)를 출간했으며 슬라보예 지젝의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정신 분석과 독일 관념론 철학』을 번역한 그는 정치철학의 분야에 정신분석으로 접근한다고 할 수 있다. 독일어 Publizistin이 저널리스트, 저술가, 학자를 의미하고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이를 통틀어 ‘문인’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니, 그냥 작가로 보아도 된다. 철학자, 심리학자로 우리가 알고 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작가이듯이.

 

이졸데 카림의 글은 날카롭고, 섬세하고 또 유머러스하다. 민주주의, 정체성, 다원화, 포퓰리즘 등에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정치사상과 언론 기사들을 광범위하게 인용하기 때문에 읽기 쉽지 않은 면도 있다. 하지만 공허한 당위나(‘우리는 타자를 사랑해야 한다’) 단순하고 성급한 판단(‘타자를 혐오하면 나쁜 사람’)이 지겨운 독자에게 『나와 타자들』은 비판적 글쓰기, 비평의 진수를 선사할 것이다. 지난 2월 한국어판의 부제를 정하고, 멋진 표지 시안도 받고, 한국어 프로필도 업데이트하고, 본문을 마무리해 가면서 나는 이졸데 카림에 너무 빠진 나머지 좋아한다고 외치고 싶은 지경에 이른 순간이 있었다. 이런 작은 대목까지도 정말 재밌게 느껴졌다. 민주주의적 ‘가치’를 무지한 자들에게 주입해야 한다고 외치는 확신에 찬 사람들을 비판하는 부분이다. “누구도 ‘가치’를 주입할 수 없다. 마치 슈니첼이 세계의 장벽을 넘어서 그 자체로도 복된 것일 수는 없는 것과 같다.”(43쪽) 독일의 돈가스인 슈니첼을 먹어 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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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졸데 카림을 최고의 여성 철학자로 여기던 상태에 제동을 건 것은 책의 마지막 부분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징후적 질문」이라는 결론으로, 마르크스 이래 세계를 변화시키려 하는 사람들이 끝없이 물어 온 질문에 우회적으로 답하는 글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 레닌의 책 제목이기도 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사실 무엇을 해 줄 사람을 찾는 질문이라는 것이 이졸데 카림의 지적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일종의 페티시다.”(296쪽) 이 질문은 마치 하나의 해답, 하나의 인물이 존재하는 듯한 환상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바마, 마크롱, 버니 샌더스 등등에게 쏟아졌던 열광의 원인이다. 결론을 다섯 번쯤 읽고서야 나도 그동안 메시아 같은 지식인을 기다려 왔으며 누군가를 숭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생각에 미쳤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다문화’가 욕으로 쓰이며, ‘여성 혐오’를 둘러싼 분쟁이 지속되는 한국 사회”(보도자료)에서 이 책이 단숨에 사랑받기보다 천천히 오래 읽히기 바란다.

 

 

민음사 편집부 신새벽


1) 레베카 라인하르트, 장혜경 옮김, 『철학 하는 여자가 강하다』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