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 뭉크, 프리드리히 니체 (1906) 티엘스카 미술관 소장에드바르 뭉크, 프리드리히 니체 (1905) 뭉크 미술관 소장

드바르 뭉크,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상화」(왼쪽, 1905년/ 오른쪽, 1906년)

 

세계시인선을 한 권씩 마무리 할 때마다, 시집과 관련된 이미지를 찾고 본문에 어떤 것을 넣을지 고민하는 일은 꽤나 즐겁습니다. 책이 거의 다 완성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하고, 잠시 텍스트에서 벗어나 샛길을 기웃거리는 약간의 해방감도 있습니다. 세계시인선 36번 프리드리히 니체의 시선집 『네 가슴속의 양을 찢어라』의 본문 마지막에는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가 그린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상화」(1906)를 넣었습니다.

뭉크는 자신의 자화상을 비롯하여 많은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남겼는데, 1905년과 1906년에 연달아 완성한 두 점의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상화」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거의 동일한 인물 묘사와 구도를 갖춘 두 작품은 현재 각각 노르웨이의 뭉크 미술관과 스웨덴의 티엘스카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노란 빛의 붉은 색을 띤 불안한 느낌의 하늘은 뭉크의 대표작 「절규」를 연상케도 합니다. 어떤 미술사가에 따르면 사진 및 자문을 제공하여 당시 초상화 제작에 많은 도움을 준 니체의 여동생인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가 일찍이 독일에서 전시되었던 「절규」를 보고 이를 연결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합니다.

뭉크는 생전에 니체를 만난 적은 없었지만, 니체의 저작을 읽었고 그의 사상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힘센 작품과 예민한 예술가는 영혼으로 공명하는 법이며, 뭉크 역시 니체와 그러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림 속 니체의 사색적인 표정과 강렬한 자연의 색감은 그의 삶과 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고, 이 그림은 니체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니체와 뭉크의 삶은 여러 면에서 닮았습니다.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을 겪으며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곁에 두고 화두로 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와 육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평생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예술은 이러한 고통을 다루는 개성적 방식이기도 합니다. 본문에는 넣지 않았지만, 『네 가슴속의 양을 찢어라』를 읽으며 절묘한 공명을 느꼈던 뭉크의 그림 몇 점을 시와 함께 담아봅니다.

 

 

에드바르 뭉크, 스페인 독감을 앓을 당시의 자화상 (1919)

뭉크, 「스페인 독감을 앓을 당시의 자화상」(1919)

에드바르 뭉크, 스페인 독감을 앓고 난 후의 자화상 (1919)

뭉크, 「스페인 독감을 앓고 난 후의 자화상」(1919)

 

A: 내가 아팠었나? 이제 다 나은 건가?

나의 의사는 누구였지?

나는 그 모든 것을 잊었어!

B: 나는 이제야 네가 다 나았다고 생각해.

잊어버린 사람은 건강한 거거든.

―프리드리히 니체, 「대화」, 『네 가슴속의 양을 찢어라』에서

 

 

에드바르 뭉크, 뱀파이어 (1895)

뭉크, 「뱀파이어」(1895)

 

작은 입으로 속삭이듯 말하고,

무릎을 꿇고 있다가 나가는 거죠,

그리고 새로운 죄로

과거의 죄를 지워 버리는 거죠.

─프리드리히 니체, 「경건한 베파」, 『네 가슴속의 양을 찢어라』에서

 

 

에드바르 뭉크, 지옥에서의 자화상 (1903)

뭉크, 「지옥에서의 자화상」(1903)

 

자기 자신을 파묻는 자,

어쩔 도리가 없는,

빳빳하게 굳은,

시체,

수백의 무게에 짓눌리는,

스스로의 무게에 짓눌리는,

깨달은 자!

자신을 아는 자!

현명한 자라투스트라여!

 

너는 가장 무거운 짐을 찾아 나섰다.

그리하여 너는 너 자신을 발견했다 —

너는 너 자신을 벗어던지지 않으리라……

―프리드리히 니체, 「맹금들 틈에서」, 『네 가슴속의 양을 찢어라』에서

 

 

 

에드바르 뭉크, 태양 (1909)

뭉크, 「태양」(1909)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너를 보았다,

순식간에 뛰어내리는 너를 보았다,

마치 화살처럼 몸을 움츠렸다가

심연으로 수직 낙하하는 것을 보았다,

한 줄기 황금빛이, 첫새벽의 붉은

노을빛이 장미들 사이로 돌진하듯.

 

수천의 등을 타고 춤을 추어라,

파도의 등, 파도의 심술을 타고 —

만세, 새로운 춤을 창안하는 자여!

우리 수천의 방식으로 춤을 추자,

자유로워라 — 우리의 예술이여,

유쾌하여라 — 우리의 학문이여!

―프리드리히 니체, 「미스트랄에게」, 『네 가슴속의 양을 찢어라』에서

 

 

 

인문교양팀 이한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