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 매』 소설 제목으로는 영 매력적이지 않나요?

KakaoTalk_20190103_144256834

 

책을 고르는 데에 있어서도 중대한 문제이겠습니다만, 역시 책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도 제목과 표지를 정하는 일은 어렵고 또 중요합니다. ‘첫인상의 과학’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들은 즉각적인 인상의 위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게 옳은지 그른지, 하는 판단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소비 행위, 아니 모든 ‘만남’ 자체가 늘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까닭을 가지지는 않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한 권의 책을 두 손에 집어 드는 ‘사건’ 또한 대개 우연에 좌우되는 듯합니다.

 

『순례자 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책을 처음 만난 건 굉장하고도 사소한 우연 덕분이었습니다. 자격증 참고서나 가이드북, 베스트셀러가 아니고서야 무수히 많은 책들 속에서, 전혀 자신을 뽐내지 않고 잠자코 있는, 그야말로 깊은 잠에 빠진 듯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한 권의 책을 발견해 내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분명 스스로 어딘가에 잘 뒀는데도 가끔 도무지 찾아낼 수 없는 물건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권의 책은, 심지어 제가 어딘가에 둔 적도 없고, 말 그대로 존재조차 몰랐던 물건입니다. 그런 책을,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든 만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기적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글렌웨이 웨스콧

 

‘순례자 매’는, 다른 독자분들의 지적처럼 그다지 매력적인 책 제목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점은 제가 독자일 때나 편집자일 때 동일하게 느낀 바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글렌웨이 웨스콧 또한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나마 (그가 같이 어울려 다녔다고 하는) 거트루드 스타인이나 헤밍웨이, 피츠제럴드의 이름을 듣고 나서야 겨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일찍이 문단의 총아로서 크게 주목받았던 웨스콧은, 당최 무슨 까닭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돌연 반(半) 절필 상태에 빠져듭니다. 사적인 일기나 수필 정도는 계속 썼습니다만, 본인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소설’을 딱 끊어 버리고 맙니다. 과작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의 작품은 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하퍼 리나 샐린저(물론, 리에 비하면 훨씬 많은 작품을 남기기는 했습니다.)처럼 말입니다.

 

감사하게도 이 책의 추천사를 써 준 박상영 작가의 한마디도 옮겨 보겠습니다. “메일로 ‘순례자 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당연하게도 ‘순례 자매’라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낯설고, 소설의 제목으로서는 더더욱 기묘한 이름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참고로 박상영 작가의 단편 소설 「재희」를, 『순례자 매』와 아울러 읽어 보시면 뜻밖에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만, 두 작품 모두 사랑과 연애, 결혼 제도에 관해 신랄한 통찰을 담고 있더군요.)

 

‘순례자 매’가 성공적인 제목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는 철저히 불필요해 보입니다. 일단 『순례자 매』의 첫 페이지를 펼치게 된다면 말입니다. 매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순례자 매’와 부제로 붙은 ‘어느 사랑 이야기’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소설 속 주인공, 아니 관찰자 알윈 타워는, 스스로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본의 아니게 자신 앞에 불쑥 나타난 한 쌍의 부부를 속속들이 탐구하게 됩니다. 어딘가 어긋나 보이는 컬렌 부부 사이에는 한 마리의 매가 자리하고 있지요. 바로 ‘순례자 매’인 루시입니다. 이 독특한 습성을 지닌 맹금류가 컬렌 부부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 뒤로 이어질 자세한 내용은 『순례자 매』한테 양보하기로 하겠습니다.

 

여하튼 이 책의 제목은 『순례자 매』입니다. 이 한 편의 노벨라를 다 읽고 나시면, 왜 책 제목이 ‘순례자 매’일 수밖에 없는지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맞습니다! 첫인상 자체는 다소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느긋이 알아 가다 보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특별한 면면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사귀는 일이 그러하듯, 책과의 만남도 크게 다르지 않지요. 약간은 ‘동물학’ 서적처럼 보이는 『순례자 매』를 어쨌든 만났고, 또 제 욕심에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좋은 만남은 늘 더 많은 사람들과 소중히 나누고 싶은 법이니까요.

 

 

 

편집자 유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