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해적이라고 하면 만화 「원피스」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다.(좀 더 진지하게 파고들면 소말리아 해적을 거론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인기 만화인 데다 20년을 넘게 연재 중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나는 「원피스」의 주인공 일행을 볼 때마다 ‘저런 건 해적이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진짜 해적은 저렇지 않다. 해적왕이 두고 왔다는 보물 ‘원피스’의 정체는 궁금하지만 말이다.

 

내가 처음으로 접한 해적은 어렸을 때 읽은 소설 『보물섬』의 존 실버였다. 이 잔혹한 악당은 육지에서는 평범함을 가장하다가 배가 바다로 나가자 본색을 드러낸다. 바다 위는 육지로 상징되는 기존 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비롯해 육지의 사람들은 바다를 잘 알지 못한다. 모르니까 두렵다. 그리고 해적은 바다에 대한 육지 사람들의 공포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존재다.

 

 

01_존 실버

주인공 짐 호킨스를 끌고 가는 존 실버. 외다리와 앵무새, 삼각모 등 해적의 전형적 이미지를 확립했다.

 

 

『바다에서 본 역사』는 두 분의 선생님께서 번역해 주셨다. 두 분 모두 다양한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하신 분들이다. 간단하게 하나씩만 꼽자면, 조영헌 선생님은 중국의 대운하에 관해 연구하셨다.(대운하에 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순일 선생님께서는 신라 해적에 관해 연구하셨다. “신라에도 해적이 있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내가 정순일 선생님께 보인 반응이다.

 

동아시아에서 해적이라고 하면 흔히 일본의 왜구를 떠올린다. 하지만 부(富)가 있는 곳에는 그 부를 노리는 사람도 있는 법. 게다가 대체로 해안 지역은 내륙 지역보다 부유한 편이다. 현실에 원피스 같은 것은 없지만, 바다를 오가는 무역선에는 팔면 돈이 되는 상품이 실려 있다. 바다의 무법자인 해적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나라와 중국에도 해적이 있었다.

 

『바다에서 본 역사』에는 중국 출신의 해적왕 두 명이 나온다. 한 명은 왕직(王直)이라는 인물인데, 왜구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다. 다른 한 명은 정지룡(鄭芝龍)으로, 왕직보다는 후대의 인물이다. 정지룡은 복건성 출신이지만, 바다를 누비는 해적답게 동아시아 각국을 넘나들었다. 1624년에는 일본 나가사키의 히라도에서 일본인 여성을 통해 아들을 얻기도 했다.

 

 

02_히라도

히라도 성에서 바라본 바다. 히라도는 한때 국제항으로 번영했다. ⓒ Si-take

 

 

 

세월이 흘러 정지룡은 밀수와 해적질로 부를 쌓으며 복건 앞바다의 지배자로 올라섰다. 제법 자리를 잡고 관직까지 사들일 정도로 행세하게 되자 일본에 두고 온 장남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아버지 없이 자라던 일곱 살 소년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중국으로 건너온 소년 정성공(鄭成功)에게 아버지 정지룡은 빛나는 존재였다. 정지룡도 싹수가 보이는 아들이 공부에 전념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644년은 격변의 해였다. 이자성이 북경을 함락하고 숭정제가 자결하면서 명이 무너졌다. 뒤이어 만주족이 세운 청의 군대가 만리장성을 넘어 내려왔다. 명의 황족들은 남쪽으로 피신해 각자 명의 정통 후계자를 자처했다. 정지룡은 남명 정권을 지지하며 해적에서 단숨에 반청복명(反淸復明)을 이끄는 충신으로 변모했다. 정성공도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도와 활약했다.

 

당시에 바닷길은 육지의 길보다 빠르게 정보를 전했다. 해적이 시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다가 해적은 명분보다 이익을 우선한다. 정지룡은 곧 남명 정권에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청에 투항했다. 다만 바닷바람이나 대세는 잘 읽었어도, 곁에 있는 아들의 마음은 읽지 못했다. 정성공은 아버지를 따라 투항하기를 거부하고, 명에 충성하는 신하로 남았다.

 

해적왕들의 최후는 좋지 않았다. 정지룡의 선배격인 왕직은 사면해 주겠다는 명 조정의 회유를 받아들여 항복했다가 처형당했다. 정지룡도 마찬가지였다. 친아들도 설득하지 못하는 늙은 해적왕은 쓸모가 없었다. 청은 1661년에 정지룡을 처형했다. 한편 정성공은 대만의 네덜란드인들을 몰아내고 대만을 청에 대항하는 거점으로 삼았다. 대만의 정씨 세력은 1683년까지 존속했다.

 

 

03_정성공

정성공의 초상. 오늘날 정성공은 타이완의 주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바다에서 본 역사』에 따르면 정성공은 일본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다. 1715년 겨울에 오사카에서 상연하기 시작한 「국성야 합전」은 17개월이라는 장기 흥행을 기록했다. 일본인 어머니를 둔 혼혈 영웅이 명의 부흥을 위해 달단인(타타르인)과 싸운다는 내용의 음악극이었다. 정성공은 중국에서도 민족 영웅으로서 인기가 있다. 다만 정성공과 일본의 관계는 잘 언급되지 않는 편이다.

 

『바다에서 본 역사』를 보면 오늘날의 국경이나 국적이 바다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육지의 시각만으로 역사를 이해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좁은 시각인지도 깨닫는다. 정지룡과 정성공 부자의 이야기는 동아시아의 바다를 종횡했던 해상 세력의 번영과 몰락을 보여 준다. 오늘날 중국과 일본, 타이완은 육지의 시각에서 각자의 입맛에 맞게 정성공을 소비하는 중이다.

 

민음사 편집부 이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