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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한 원고가 메일함에 도착했다. 크리스마스 시즌 전에 책을 내고자, 번역이 끝나는 대로 한 편씩 원고를 받기로 한 것이지만 덕택에 출근하는 맛이 생겼다. 오츠가 왕성하게 잡지에 소설을 발표하던 시절 동시대의 독자처럼, 각각의 단편을 만나는 설렘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흉가』가 출간된 후, 지인들에게 “이것부터 읽어 봐” 하고 권했던 두 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세 번째 이야기, 「빙고의 왕」

 

그녀가 평소처럼 투박한 외양을 과시하지 않고, 스타킹과 높은 하이힐을 신고 립스틱과 향수까지 바르고서 동반자 없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온 것은, 흔한 표현을 빌리자면 처녀성을 잃기 위해서다. 아니면 차라리 애인을 만들러 나왔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고 덜 자기도취적인 표현일까……? 아니다. 로즈 말로 오덤은 애인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자 자체를 전혀 원하지 않는다. 단지 그녀가 원하는 의식을 수행하는 데에 남자가 반드시 필요할 뿐이다. -본문에서

 

‘장미 아욱’이라는 식물의 이름을 가진 여자, 로즈 말로 오덤은 어느 날 놀라운 결심을 한다. 바로 처녀성을 잃는 것. ‘잃는다’라는 단어의 피동성과 그녀의 ‘의지’가 만나 이루는 에피소드는 그 조합만큼 위태롭다. 처음엔 호텔 바, 강연장으로 하룻밤 상대를 찾아 나섰던 그녀는 원했던 만남이 일어나지 않자 빙고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잘생긴 광대 ‘조 파이’와 마주치고, 마침 그가 호명한 숫자가 오덤을 그날 밤의 우승자로 만든다.

 

‘내가 공정하게 당첨된 게 맞을까?’ 보수적인 옷차림,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오덤에게 조 파이는 그들이 만난 빙고장이라는 장소처럼, 매력적이지만 신뢰할 수 없는 남자다. 그러나 오늘 밤 일을 ‘산부인과 검진처럼’ 정신적인 경험이 아니라 육체적인 일로만 여기기로 한 오덤은 평소보다 대담하게 그에게 접근한다. 오래전 초등학교 탈의실에서도 수치심에 달아 몸을 웅크리던, 몸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수치심에 휩싸이던 그녀는 과연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아홉 번째 이야기, 「예감」

 

휘트니는 여러 해 전 팩스턴 가 잔디밭에서 열린 가족 모임에서 퀸이 갑자기 별 이유도 없이 아내의 이마를 찰싹 때리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손님들 대부분은 보지 못했지만. 퀸은 분노로 얼굴이 벌개진 채, 목격자들에게 들으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벌이다! 빌어먹을 벌들! 불쌍한 엘렌을 쏘려고 했어!” 엘렌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자세를 바로잡고는 수치심에 겨워 부랴부랴 집 안으로 돌아가 버렸다. 퀸은 그녀를 따라가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를 따라가지 않았다. -본문에서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미국의 도시. 휘트니는 자신의 형인 퀸과 연락이 닿지 않자 형수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는 함께 사는 내내 형의 위협에 시달리다가, 형의 결혼으로 겨우 폭력의 그늘을 벗어난 참이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와 안 그래도 형에게 잔뜩 주눅이 든 탓에 형의 가정생활에 참견하는 데 주저한다.

 

“휘트니!” 그런데 막상 저택에서 그를 맞이한 것은 형이 아닌 형수다. 형수는 평소 남편의 취향에 맞춰 흐트러지지 않는 외모를 유지하고, 말투 또한 외운 듯 부자연스러운 여자지만 오늘따라 모든 것이 어수선해 보인다. 비닐로 덮인 소파, 돌돌 말려 있는 카펫, 코를 찌르는 냄새에 의아해 하는 휘트니에게, 그녀는 형이 긴 출장을 떠났다고 말해 준다. 휘트니는 가족 연회에서, 형이 형수에게 굴욕을 주는 모습을 홀로 목격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형이 갑자기 사라진 이 순간이, 반드시 다시 떠오르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문학 1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