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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전자가 혼돈과 몰락의 세계관이라면 후자는 질서와 재건의 세계관이다. 미래에 대한 상상력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디스토피아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도 유토피아를 그리지 않고 누구도 유토피아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유토피아는 말 그대 불가능의 다른 말 같다. 불가능을 꿈꾸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라지만 미래와 유토피아라니, 완전히 불가능해 보인다. 인공지능, 가상현실, 로봇과의 공존… 죄다 디스토피아적이지 않은가. 이때 몰락과 혼돈의 대상은 물론 인간이겠다. 인간성 훼손. 인간의 가치에 대한 경고. 죄다 인간 종말적이고 인간 파괴적이다. 보면 괴롭고 생각하면 슬퍼진다.

 

『우로보로스』는 좀 다르다. 마거릿 애트우드의『인간 종말 리포트』에도 없고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에도 없는 세계가 『우로보로스』에는 있다. 파괴되거나 훼손된 세계도 아니고 괴롭거나 슬픈 세계도 아닌, 그래서 더 강렬한 리얼리티가 느껴지는 미래 소설. 우주가 자신의 고유한 원리에 따라 질서 있게 진행되는 것처럼 인간의 미래도 인간의 고유한 원리에 따라, 가능한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질서 있게 진행된다. 디스토피아는 디스토피아인데 질서와 재건으로 꽉 차 있는, 완벽하게 설계된 미래. 그 빈틈없는 질서 안에서 인간은 왜소해지거나 파괴되지 않는다. 그럼 그게 디스토피아 맞나?

 

질서 정연한 미래에서 인간의 경계는 흐려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인간의 본질은 뭘까? 외모? 구분되지 않는다면! 정신?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면! 인간과 로봇이 공존한다는 건 함께 살아간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과 로봇이 뒤섞이며 기계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은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낸다. 『우로보로스』는 /PROLOG/ Q&A/ 아톰/ 지도에 대한 열정/ 스트럭처/ ROLLBACK/ 함수/ 인터뷰/ 바다/ 이렇게 아홉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 안에서 아홉 개의 이야기를 통해 미래에 나타날 새로운 존재를 독립적으로, 또 유기적으로 구성한다.

 

인간과 기계. 파괴와 재건. 혼돈과 질서가 뒤섞이며 만들어 낸 존재들이 각각 어떤 형태인지는 소설을 다 읽은 후에야 알 수 있다. ‘우로보로스’가 뜻하는 바 역시 소설을 다 읽은 후에야 추정 가능하다. 그때 발견되는 반전은 가히 뒷목을 잡고도 남을 정도이므로, 독자들의 뒷목 반전을 위해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아, 한 가지만 더. 그 반전은 소설을 읽는 독자로서 느끼는 감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미래를 살아갈 우리 인간들이 일상적으로 느껴야 할 감각이자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일상 감각이기도 하다. 『우로보로스』는 현재에 도착한 미래의 진실이다. 과장된 공포도 슬픔도 걱정도 없는, 그래서 더 강렬한 평범한 미래다.

 

민음사 편집부 문학2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