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너무 연애에만 빠져 있지 말고

테리 이글턴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사랑에 대한 분석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사랑에 빠진 인물들이 가장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이고, 가장 진실하면서도 가장 허위적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사랑은 궁극적인 자기 인식이며, 제일 소중하고도 유일한 존재 양식이다. 그렇지만 사랑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해 왔고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또 하게 될 지겹게도 진부하고 평범한 것이기도 하다.

─ 테리 이글턴, 김창호 옮김,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46쪽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는 두 여자와 두 남자가 등장한다. 허미아를 사랑하는 라이샌더와 드미트리우스는 오베론의 숲 속 요정들의 마술에 의해 갑자기 헬레나를 사랑하게 된다. 헬레나는 드미트리우스를 사랑하는데, 두 남자가 구애해 대자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해 허미아에게 화를 낸다. 허미아는 라이샌더와 사랑하는 사이였으니 연인을 빼앗았다고 헬레나에게 화낸다. 라이샌더와 드미트리우스는 헬레나를 둘러싸고 결투를 하겠다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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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요정 여왕 티타니아는 당나귀 머리를 한 보텀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줄거리 정리가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처음 읽을 때는 네 사람의 사랑의 화살표가 어떻게 되는 건지 무척 헷갈리지만, 위대한 셰익스피어답게 읽다 보면 빠져들게 된다. 이 한바탕 소극은 사랑이 얼마나 혼란스러우면서도 진부한 것이며, 무차별적인 욕망으로서 모든 고정된 것을 뒤흔들어 놓는 무정부적인 것인지 보여 준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은 어떤 차원에서는 언제나 인용문이다. 즉 자아는 순수한 본질적 가치와 접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대사와 마주쳐서, 맹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지극히 상세한 대본을 넘겨받은 자신을 발견한다. 자아가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랑이란 지루하게 반복되는 인간의 성행위 역사 속에서 가장 고상한 사상과 가장 꾸밈없는 애정을 통해 언제나 ‘묘사되고’ 기록되었으며, 비개성적인 규칙과 관습에서 다행히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규칙과 관습에 종속되고 만다는 것이다.(46~47쪽)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를 편집할 때 내 친한 친구들은 왼쪽 귀로 오른쪽 귀로 끊임없이 자기 연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다들 알겠지만 연애 이야기란 사랑의 시작에서 실연을 거쳐 잊는 데 이르기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몰입해서 듣기도 하고 이 얘기가 언제 끝나지 생각하기도 하면서 나는 친구들에게 그렇지만 이글턴에 따르면……이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사랑이란 지루하게 반복되는 우리의 성행위 역사 속에서 바로 그 순간에 규칙과 관습에 종속되고 만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너무 연애에만 빠져 있지 말고 다른 중요한 일도 하라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처럼……. ㅠㅠ

 

다들 짐작하겠지만 이런 얘기는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잘 들리지 않는다. 이건 마치 테리 이글턴의 비평이 문학에 빠진 사람에게 잘 들리지 않을 것과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글턴의 셰익스피어 비평을 읽을 시간에 셰익스피어를 읽겠지. 비평이란 무엇일까? ‘그 작품을 더 잘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하는 비평가가 있고, ‘그 작품을 더 잘 비판하는 것’이라고 답하는 이글턴 같은 비평가가 있다. 비판의 태도에 대해 이글턴은 이렇게 쓴다.

 

요컨대 우리는 여러 면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이 보수적인 위인과 헤어졌어도, 그를 열심히 따라가야 할 길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 테리 이글턴, 김창호 옮김,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머리말 중에서

 

이 문장은 가만히 보면 우리가 이 ‘보수적인 위인=셰익스피어’와 헤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중 많은 경우는 셰익스피어와 제대로 만났다고 하기도 어려운데 말이다. 그리고 헤어졌어도, 그를 열심히 따라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가다가 헤어지는 게 아니라 헤어졌는데 따라간다는 거꾸로 된 이 말에 이글턴의 스타일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방점은 어쨌든 헤어진다는 데 있다. 헤어져야지만, 그러니까 혼자 서야지만 볼 수 있는 게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셰익스피어에 대해, 존경하는 스승님에 대해,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대해 거리를 둘 때에만 나는 내 머리로 생각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없고 두렵더라도 내가 판단하고 판단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그 사람이랑 헤어지라고 말한 건 아니다. 맨날 ‘이젠 끝이야’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새로운 사랑과 헤어지지 말고, 차라리 사랑 자체에 거리를 두었으면 했다. 이글턴에 따르면, 사랑이란 효용성을 초월한다고 낭만화하는 부르주아는 바로 그 순간에 사랑을 상품으로 변조한다. 그보다 사랑의 바탕에 있는 성적 욕망을 직시하고, 그 욕망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 사람의 것만이 아니라 내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옳다. 이렇게 사랑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건 새롭게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다. 대상과 손쉽게 동일시하면서 내 환상 속에서 나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과 거꾸로 말이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글턴의 비평을 끈질기게 여러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민음사 편집부 신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