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용

 

고백하건대, 이 책의 편집을 맡기 전에 한 번도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어본 적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많은 문장들이 익숙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이 전 세계에서 1억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며, 여전히 수많은 결혼식장에서, 연애편지에서 그리고 SNS에서 ‘좋은 글귀’로 인용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편집 중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하여 읽어야 하는, 이 직업의 행운을 누리며 익숙한 것과 진짜 읽은 것은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Kahlil Gibran

 

 

칼릴 지브란은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흔히 생각하는 사랑의 즐겁고 아름다운 면이 아니라 고통과 슬픔을 봅니다. 그러나 그 태도는 비관과 거리가 멉니다. 그의 시에서 사랑의 즐거움, 아름다움과 고통, 슬픔은 서로 길항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과 슬픔은 사랑의 본질이며 그렇기에 고통과 슬픔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가능한 사랑의 방법입니다.

 

사랑이 당신을 손짓하여 부르거든 그를 따라가세요,

비록 그 길이 험하고 가파를지라도.

그리고 사랑의 날개가 당신을 감싸 안거든 그에게 몸을 맡기세요,

비록 그 깃털 속에 숨겨진 칼이 당신을 상처 입힐지라도.

그리고 사랑이 당신에게 말하거든 그를 믿으세요,

비록 그 목소리가 마치 정원을 폐허로 만드는 북풍과도 같이 당신의 꿈들을 산산조각 낼지라도.

― 「사랑에 대하여」에서

 

비단 사랑에 대해서만이 아닙니다. 슬픔과 고통이 곧 기쁨과 안식에의 길이라는 시인의 생각은 시집 전반에 매우 직접적으로 나타납니다.

 

당신의 기쁨은 당신의 슬픔이 가면을 벗은 모습에 불과한 것.

당신의 웃음이 솟아나는 그 우물은 종종 당신의 눈물로 가득 차 있던 우물이기도 했습니다.

어찌 아닐 수 있겠어요?

슬픔이 당신의 존재 속으로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당신은 더 많은 기쁨을 담을 수 있게 됩니다.

―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에서

 

삶에서 일어나는 매일매일의 기적에 경이로운 마음이 든다면, 당신의 고통 또한 당신의 기쁨만큼이나 경이로워 보일 테죠.

당신은 당신의 들판을 지나가는 계절들을 늘 받아들여 왔듯, 당신 마음의 계절들 또한 받아들일 겁니다.

― 「고통에 대하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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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낙관은 아마도 자신의 삶으로부터 얻은 통찰일 것입니다. 그의 삶에는 고통과 불행, 슬픔과 오해가 더 흔했습니다. 가난한 레바논 이민자 가족의 둘째 아들이었던 지브란은 일찍이 어머니와 형제자매의 잇따른 죽음을 겪었습니다. 예술에 대한 열망이 컸지만, 떨치기 힘든 가난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점 등은 무시할 수 없는 장애물이었습니다. 평생의 후원자 메리 해스켈을 사랑했으나 그녀의 집안에서 아랍계라는 이유로 청혼을 거절당하고, 그 후 누구와도 사랑의 결실을 맺은 적 없었습니다. 『예언자』의 출간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대중적 인기를 끌었지만, 주류 문단에서는 여전히 그를 무시했고, 또한 부동산 투자 실패로 경제적 부는 누리지도 못했습니다. 가난뱅이, 이방인, 의지 가지 없는 외톨이, 유명세에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상업 작가’……. 이것이 바로 칼릴 지브란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예언자』에 가득한 낙천성이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되도록 시 전체를, 가능하다면 시집 전체를 찬찬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고통과 불행으로 더욱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쁨과 자유, 슬픔으로 더욱 맑아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작은 책을 위해 나는 평생을 보냈다. 나는 이 책의 단어 하나하나가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신하고 싶었다.”

― 『예언자』에 대하여 칼릴 지브란이 남긴 말

 

민음사 인문교양팀 이한솔

연령 8세 이상 | 출간일 2018년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