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인공이 되는 법』 ‘여성’ 주인공은 이미 충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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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다 그러하겠지만, 한 권의 책을 만들다 보면 생각했던 만큼(혹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재밌을 때도 있고, 전혀 예상 밖의 내용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고, 일 자체가 힘들고 고단할 때도 있다. 『여주인공이 되는 법』을 편집할 때엔 어땠을까? 정말 괜스레 호들갑을 피우는 게 아니라, 검토에 착수했을 때부터 쭉, 아니 편집을 하면서 더욱 이 책에 푹 빠져들었다. 아무래도 잘 번역된 우리말로 거침없이 읽을 수 있었기에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흠뻑 취해 작업한 만큼 뭐랄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아 있지만 어쨌든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이 책을 소개하게 되어 그저 뿌듯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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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상상하길 즐기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빨간 머리 앤은 ‘왜’ 작가의 꿈을 포기하게 됐을까?

 

 

『여주인공이 되는 법』에는 인어 공주, 빨간 머리 앤, 엘리자베스 베넷, 스칼릿 오하라, 제인 에어와 캐시 언쇼 등 우리가 언젠가 한 번은 꼭 만나 본, 또 익히 알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사실 부제에 붙은 ‘11명의 여성 캐릭터들’이라는 문구는 대단히 절제된 표현이고, 실제로는 이 여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수십 명의 내로라하는 여성 인물들이 더 등장해 저마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서른일곱 해 내내 책과 함께 살아온 저자의 내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스스로 ‘책벌레’라 칭할 만큼 독서의 폭과 기억력이 정녕 비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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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의 리지 베넷으로 분한 키이라 나이틀리. 리지 베넷은 우리에게 ‘사랑은 스스로 성취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이 책의 묘미는 단순히 어마어마한 정보량에 있지 않다. 잘 정리된 독후감이라 하기에도 좀 어색하고, 문학 비평이나 해설서도 아니다. 이라크계 영국인(전쟁을 피해 사랑스러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이자 유대인, 페미니스트 작가인 저자 서맨사 엘리스의 자전적 독서 편력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여주인공이 되는 법』에 언급되는 여주인공들의 면면이 정겹게 느껴지면서도 완전히 새롭게 읽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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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의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로 분한 미아 바시코프스카와 마이클 패스벤더. 제인 에어의 사랑 고백은 여전히 아름답고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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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릿 오하라로 분한 비비언 리. 사람들은 (커튼으로 드레스를 지어 입을 만큼) 놀라운 사업 수완을 보이는 스칼릿 오하라보다 새침하고 제멋대로인 스칼릿 오하라만을 더 기억하는 듯하다.

 

 

페미니스트가 되어 다시 만난 여주인공들이라 해야 옳을까? 각각의 캐릭터뿐 아니라, 문화 전반의 ‘여주인공들’을 돌이켜 생각해 봐도 시대의 변화, 현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읽힌다. 유서 깊은(?) 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최신의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애니메이션, 텔레비전 드라마만 훑어봐도 ‘여성 캐릭터’의 존재는 여러모로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차츰 변화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여성 주인공의 수는 역부족하며, 단순히 산술적인 수치를 떠나서 작품 속 비중이나 캐릭터 성향에 있어서도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것은 단지 어느 쪽 성이 더 많아야 하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주인공을 가질수록 이 세계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이젠 ‘비혼주의자’가 되어 인생에서 결혼이 필수적이지 않음을 깨달은 저자 역시, 어린 시절엔 수많은 공주와 여주인공들을 바라보면서 금발을 꿈꾸고, 왕자를 바라고, 결혼이 해피엔드와 동의어라고 생각하곤 했다. 어느 책을 보든 여주인공은 결혼을 하거나 해야만 했고, 본래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으니까. 이런 관점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 여주인공들의 모습은 사뭇 다르고, 때로는 어색하기까지 하다. 인어 공주여, 뭍으로 올라가지 마소서! 빨간 머리 앤이여, 글 쓰고 상상하는 일을 멈추지 마소서! 에스터, 당신은 미치지 않았어요! 로체스터에게 굴복하지 않고 당차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제인 에어가 이렇게 멋있었던가?(남자와 여자가 아닌, 영혼 대 영혼으로 이야기하겠다니! 정말 명문이다.)

 


 

 

『여주인공이 되는 법』이라는 제목만 보면, “혹시 자기 계발서?”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어느 부분에선 그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분연히 일러 주는 책이니까 말이다.(여자라고 반드시 결혼에 목맬 필요가 없고, 가능한 모든 선택을 스스로 취할 수 있으며 그저 자신답게 살 수도 있다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여주인공이 등장하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 동안 분투해야 했을까? 물론 여전히 ‘진행형’의 문제이긴 하다.) 저자의 말대로 애초에 “주인공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전부 부단한 노력 끝에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끝으로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승복 연설문」에 나오는 한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EfAZ6resSxU

 

“그리고 이것을 시청하는 어린 여성들에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매우 소중하고 강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세상의 모든 기회와 가능성을 누려 마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대 의심하지 마십시오.(And to all of the little girls who are watching this, never doubt that you are valuable and powerful and deserving of every chance and opportunity in the world to pursue and achieve your own dreams.)”

연령 10~80세 | 출간일 2018년 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