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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래빗 이야기」에는 말썽꾸러기 막내 피터가 주인공이다. 아기들은 보호자, 주로 엄마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신뢰를 쌓으면 정신적인 안정감을 유지하기 때문에 모험심이 강해진다고 한다. 쉽게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든 세상에이지만 토끼 가족에게는 사랑이 넘쳤는지, 피터가 바로 모험심 충만한 아이였다. 아빠가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맥그리거 부인의 파이“가 되었다는 그 무시무시한 텃밭을 기어이 들어가고 만 것이다.

 

당근을 뽑아 맛있게 먹고 또 다른 모험을 찾아 어슬렁거리던 피터가 맥그리거 씨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고는 줄행랑을 치게 된다. 그러나 길을 잃고 헤매는 급박한 상황에서 쥐 아줌마는 입안에 검정콩을 물고 있다는 이유로 대답을 하지 않자, 피터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린다. 옷까지 벗어 제치고 전 속력으로 줄행랑을 쳐서 겨우 빠져나온 피터는 집에 돌아와 엄마 말을 어겼노라 말도 못 하고 끙끙 앓다가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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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어린 피터의 모험은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사건이 되었지만, 훗날 피터가 더 힘겨운 일을 헤쳐 나갈 때 용기를 끌어낼 수 있는 큰 추억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는 우리도 어릴 적 경험하지 못했던 사건 앞에서 공포심을 느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비록 작은 모험들이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각인된 경험들은 진짜 약육강식의 세계를 살아나가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용기를 주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이야기’는 우리가 과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서 일종의 ‘밈(meme)’이다. 작가가 한평생 겪은 경험과 감정들이 이야기라는 형태에 잠재되어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파이와 파이 틀 이야기」에는 베아트릭스가 이웃 마을에서 고양이 리비와 포메리안 강아지 더치스와 마주치곤 했던 즐거운 경험들이 녹아 있고, 「제러미 피셔 이야기」에는 영국 작가 랜돌프 칼데콧에 대한 작가의 존경심이 깃들어 있고, 「톰 키튼 이야기」에는 레이크리드스릭트 지역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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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아이들을 사랑했던 베아트릭스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인간애’를 가르쳐 주고, 자연을 사랑했던 베아트릭스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자연애’를 가르친다. 또 삶의 고비마다 느꼈던 좌절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했던 작가의 용기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에게 ‘위로’를 전한다. 100년이 넘도록 고전이 된 작품들은 그렇게 우리 곁에 영원한 친구가 된다.

 

양희정 부장

연령 1세 이상 | 출간일 2018년 5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