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 이상협 시인 인터뷰

“검색창에 ‘망명’ 같은 단어를 넣어 보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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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책은 민음의 시 247번으로 출간된 이상협 시인의 첫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입니다. 첫 시집을 묶어 낸 시인은 시인인 동시에 현직 아나운서로 활동 중인데요. 이상협 시인은 그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체험을 바탕으로, 앵커로서 데스크에서 미처 전달하지 못한 뉴스에 대해 느끼는 괴리를 미세하고 섬세한 시어로 빚어 냅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듯 첫 시집을 사귀어 달라고, 독자 여러분께 소개할 때 시인의 목소리가 함께 들리면 좋을 것 같아 이상협 시인과의 10문 10답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이라는 제목에 끌린 분들, 그래서 이 시집을 곁에 둘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지닌 분, 지금 첫 시집을 낸 이상협 시인의 대답에 주목해 주세요.

 

 

1. 등단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첫 시집이 나왔습니다. 시집을 내기까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검사가 필요했습니다. 시 안의 감정이, 태도가, 수사가 거짓인지 참지 확인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했죠. 이별 말고 시간은 시에도 큰 약인 듯해요. 감정은, 감정이 녹아 든 문장은 시간을 두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가짜들을 툭 뱉어 내거든요. 내가 시작한 문장이지만 자기들 끼리 이야기를 만들고 문장과 단어가 저절로 자리 잡아 나가는 걸 지켜보며 즐기는 시간이 좀 길었는데요. 무엇보다 제가 많이 게으릅니다.

 

2. 시집을 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건 무엇이었나요?

 

지구엔 너무나 훌륭한 시와, 자기 영역을 공고히 구축한 시인들이 셀 수 없이 많죠.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에 집중했습니다. 예를 들어 뉴스 앵커로서의 얘기나 누군가를 인터뷰한 경험을 저보다 정확하게 쓸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이었죠. 가끔 아나운서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보면서 많이 웃거든요. 속으로 ‘누가 볼펜 물고 발음 연습하냐’, ‘라디오 방송할 때 피디가 무슨 수신호로 큐를 주나’ 하며 피식 웃죠. 그럴 듯한 가짜인거죠. 시는 그럴 것 같은 개연으로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확해야 한다고 김소연 시인에게 배웠어요. 추체험을 녹여 내는 건 소설에서 가능한 일일 테고 시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잘 아는 걸 쓰고 싶었습니다. 제 시 소재에 방송 이야기, 출장이란 기묘한 여행에서 얻어 온 내용이 많은 이유에요.

 

3. 시인에게 개인적으로 소중하거나 특별한 시가 있는지도 궁금한데요! 가장 애착이 가는 시 몇 편을 그 이유와 함께 골라 주시겠어요?

 

허밍처럼 저절로 흘러나온 시가 있고, 어려운 퍼즐 맞추기로 가까스로 완성한 시가 있는데, 둘 다 소중하지만 전자를 애정해요. 이를테면 「오하이오 오키나와」나 「은행나무 헬리콥터」 같은 시들. 시는 원래 노래였잖아요. 노래는 흘러나오는 것이 좋지요.

 

4. KBS 파업이 치열하고 지난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셨고, 그 시간과 활동이 시 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언 십년을 북만 쳤네요. 진짜 앞에서 북치는 사진만 남았어요. 북소리가 밖에선 안 들렸던 게 문제죠. 날갯짓도 없이 추락하더군요. 역병이 돈 거죠. 적폐들이 일순 KBS 꼭대기를 뒤덮었고 부역자들이 아래를 튼튼하게 받쳤죠. 무기력했어요. 방송에 쏟을 에너지를 이상한데 쓰는 게 너무 싫었어요. 인터넷 검색창에 ‘망명’ 같은 단어를 넣어 보던 시절이었어요. 웃기는 얘기지만 몇 년 전엔 ‘에스토니아’ e-시민권을 취득하기도 했고요. 도망갈 곳이 필요했나 봅니다. 근데, 비겁하지 않게 도망가는 법도 있더라구요. 그게 시였고, 집착했고, 본능적으로 분노와 무기력의 나쁜 기운을 치환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낙법처럼 말이죠. 「민무늬 시간」, 「비대칭 행성」, 「앵커」같은 여의도 3부작이 그때 나온 시들이에요. 솔직히 이제 이런 시는 그만 쓰고 싶네요.

 

5. 첫 번째 시집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이미지나, 묶을 당시 시인님께서 사로잡혀 있던 생각 같은 게 있을까요?

 

‘사이’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좋아하는데 그런 대사가 있어요. “사랑이 있다면 아마 나나 당신 안이 아닌 우리 사이에 있을 거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물들은 각자의 관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간격으로 배치되어있죠. 텔레비전과 나의 거리, 전등과 나의 거리……. 그게 무너질 때 다양한 감정이 생겨나죠. ‘사이’에 파동이 생긴달까요. 그런 생각으로 시를 엮긴 했는데 아무래도 첫 시집은 아름다운 누더기 같아요. 좋게 말해도 퀼트 정도랄까. 버리고 싶은 시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남아야겠다고 시위하는 시들은 남겨 줘야 해요. 시도 생물이고, 나름 제 시 쓰기에서 지분이 있는 아이들이라. 제 맘대로 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뭔가 맥락 없이 보이기도 하고 맘에 안 드는 점도 있지만 또 그런 게 첫 시집 아닐까요.

 

6. 시 쓰기에 영향을 받은 시인들이 있다면 작품과 함께 알려 주세요.

 

장석남, 김소연, 이병률. 이름 석 자가 ‘시’인 사람들이죠. 시에 순교한 분들 같아요. 장석남의 시집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은 제 시의 시작이자 방황의 시절 O.S.T이고, 김소연 시인에겐 시 쓰는 태도를 뼈저리게 배웠구요. 여행이 질병인 제겐 중증 여행 환자인 이병률의 시는 범접 못할 로망인데, 여행 갈 때 『바람의 사생활』을 들고 다닌 지 오랩니다.

 

7. 「잘 있어」 「인사」 「모서리 기별」 등 주로 만나고 헤어지는, 그 중에서도 헤어지는 장면과 상황의 정서가 와닿는 시들이 많습니다. 이런 시들을 쓰게 된 배경이 있나요?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는 관계 안에서 좋은 간격이 있고 멀다 가깝다 하는 존재잖아요. 사물하고도 마찬가지로 만났다 헤어지고요. 만남을 시로 바꾸는 법은 잘 모르겠는데, 이별은 감정의 안팎이 좀 잡혀요. 서른 즈음에 노래 가사처럼 매일 매사 이별하며 사는 중이기도 하고요. 근래 다방면에서 죽음에 관해 생각 중인데 그게 또 이별의 대서사시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헤어짐을 다룬 시가 곳곳에 배치된 듯합니다. 단지 연애, 이별, 사랑 이런 관점에서만 해석되지 않았으면 해요.

 

8. 시집 제목은 어떻게 정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긴 시간 써온 시를 한 울타리에 부려놓다 보니 시끌벅적한데, 김민정 시인이 얘네들을 줄 세워 주셨어요. 제목 받고 바로 납득했죠. ‘아 너희들 이 동네에 살았구나, 동네 이름이 이거구나.’하고 말이죠. 시에 은근 ‘우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김민정 시인 덕에 정확한 주소가 생겼어요.

 

9. 시집을 내기 전과 내고 난 후, 어떤 점이 변했나요?

 

이제 진짜 옛날에서 도망갈 수 있구나, 시원하다 싶어요. 예전에 쓴 시들도 각자 자리에서 의미 있겠지만, 먹여 살릴 식솔 많은 집 첫째가 홀가분히 출가해 나온 기분이랄까요. 이제 다른 것 신경 안 두고 쓰고 싶은 것만 써도 되겠구나, 맘대로 써야지, 하는 맘에 좀 후련해요. 무엇보다 시집을 엮는 동안 다음 시집의 형태가 희미하게나마 그려져서 기뻤구요.

 

10. 낭독회나 라디오 등에서 이상협 시인이 직접 읽는 시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나요? 있다면 알려 주세요.

 

곧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 에서 낭독회를 할 거구요. 어디 허름한 술집에서 게릴라 낭독회도 해 보고 싶어요. 술 많이 먹고 진지하게 낭독하다 막 웃고 다 취하고 이런 자리요. 라디오 출연의 경우는 직장의 이점을 누리고 싶진 않아서 조심스러운데, 이리 저리 불려 다니긴 할 것 같아요. 아마 못 이기는 척하면서 시집 홍보에 열을 올리겠죠. 독자들에게 많이, 정확히 읽히고 싶은 마음은 시인 누구나 같을 테니까요. 문득 문득 KBS 라디오에서 시 읽는 목소리를 만나게 되실 듯하네요. 반갑게 들어 주세요.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보여 줄 수 있다면

가장 멀리 가는 표정까지 배웅하자

 

얼굴들이 켜진다 가등처럼

가루어 선 벽과 벽 사이에서

우리의 군중들은 마지막 햇빛으로 얼굴을 지운다

무표정이 웃음처럼 보일 때까지

 

―「거울 가면」(『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에서

 

민음사 편집부 김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