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자연인인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날이지만 편집자인 나에게는 맞는 책을 추천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 그날이 오기 하루 전, 머릿속으로 몇 권의 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틀린 말을 하는 법이 없으신 마케팅부 과장님(a.k.a. 맞는말러)이 슥 메신저를 보내 오셨다.
“ㅇㅇ씨, 밸런타인데이에 추천할 만한 책 부탁해요.”
그리고 사심 듬뿍 담긴 목소리로(메신저이지만 저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덧붙이셨다.
“『해가 지는 곳으로』 넣어 주세요.”
이 책은 내가 말도 못하게 사랑하는 책. 때문에 나는 감동한 채로 암요 암요 넣어야죠, 하며 열띤 추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과장님, 『조이와의 키스』 넣어도 되나요?”
“……진짜로 어울리나요?”
과장님은 프로라서 단번에 그러라고 하지 않는다. 맞는말러를 설득해야 하는 나는 구구절절러가 되었다.
“그럼요! 『조이와의 ‘키스’』인데요, 과장님. 수록 시를 보시면 「청혼」에 「기념일」에 「고백」에……. 이거 2018 현재 유일무이 프러포즈 시집!”
“써 보시지요…….”
1인용 철제 침대에서 너와 포개어 자다가
잠이 깼어 홀로 일어나 네 발밑으로 가니
침대 난간 밖으로 길고 가느다란 너의 발이 빠져나와 있네(……)
나는 와락 눈물이 안기는 걸 뿌리친 채로
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란 눈썹을 꺼내 네 발에 시를 적었어―「오로라 꿈을 꾸는 밤」에서
선물 상자를 열면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온다
앵두들이 한 움큼 익어 가고 있을 거야
너의 안경이 하얗게 변할 동안
나는 눈을 세 번 깜빡깜빡하고
그사이 두 번 입맞춤을 할게―「청혼」에서
배수연이 써내는 문장들은 노래처럼 리듬을 지녔고 애인처럼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너를 보고 있어,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너와 약속을 하고 싶어, 하고 말하는 듯하다. 러브 송. 이 단순한 조어를 새삼 되씹게 한다. 그냥 추천만 하려고 했는데, 시집을 여러 번 들여다보다가 오히려 내가 아주 오랜만에 프러포즈에 대해 환상을 품게 되었다. 언젠가 이 시집에 담긴 말들처럼 프러포즈를 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