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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편집한다고 해서 그 작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지는 않는다. 한 권의 책을 완성시키기 위해 교정지를 주고받으면서 책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있지만, 따로 시간을 내어 서로를 알아 가기 위한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가까워지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이 자리에서 『책기둥』의 담당 편집자로서 시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문보영 시인은 피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문보영 시인의 피자 사랑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시집에 피자가 등장하는 구절이 한 줄도 나오지 않는 게 살짝 신기할 정도로 문보영 시인에게 피자란 각별하다. 김수영 문학상의 시상식과 시집 낭독회를 겸한 날에는 뒤풀이로 자리를 옮기지 않고 피자를 시켜 먹었다. 문보영 시인이 아니었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시인들과 함께 배달된 피자를 먹는 뒤풀이는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보영 시인의 원고를 처음 받아 읽어 보았을 때는 알쏭달쏭하고 재치 넘치는 수수께끼 모음집 같았다. 특수 기호나 수식 같은 것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고, 직접 그린 귀여운 아이콘까지 들어 있었다. 독자였다면 그 하나하나에 박수를 치며 좋아했을 테지만, 편집자로서는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시 한 편에서는 좋을지 몰라도, 그 한 편이 시집 전체의 인상을 좌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사랑스러운 아이콘들에게는 작별을 고했다. 그래도 시인과 편집자 둘만의 비밀처럼 묵혀 두기엔 아까워서 문보영 시인의 허락을 얻어 이 자리에서만 살짝 공개해 본다.

 

캡처

 우스갯소리 삼아 저 원숭이로 핀뱃지를 만들자고 이야기했다.

 

초교를 끝냈을 때 시인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시집 편집에 관한 제안과 시 자체에 대한 궁금함, 무엇보다 등단 후 최단 시간에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났다. 그래서 처음으로 시인에게 교정지를 보내는 것이 아닌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약속을 잡았다. 함께 저녁을 먹었고 카페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교정지를 꺼내 준비해 두었던 질문들을 마구잡이로 쏟아 냈다. 문보영 시인은 커다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의 별것 아닌 질문들이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어 주었는데, 나눴던 대화 중 극히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앙뜨완이라는 이름은요, 영화 「400번의 구타」에서 따온 건가요?”
“아뇨, 그냥 지었어요.”
“어…… 그러면 지말이랑 스트라인스는…….”
“걔네도 그냥 지었어요.”

『책기둥』에는 젊은 시인들이 등장하는 연작시가 수록되어 있다. 앙뜨완, 스트라인스, 지말이라는 이름으로 각 부마다 한 편씩 등장한다. 나는 이 세 사람이 등장하는 시들이 너무 좋아서 내 마음대로 시인 삼총사라 불렀다. 어쩜 이름도 이렇게 절묘하게 붙였는지 궁금했다. 앙뜨완은 혹시 「400번의 구타」에서 데려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스트라인스와 지말은 어디서 왔을까, 도서관과 책에 대한 시가 많으니까 혹시 그 어딘가에 힌트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나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나는 이게 어디서 왔는지 알아! 이거 말한 거 맞지?’ 라고 자신만만하게 물었던 것이 살짝 부끄러워졌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해 버린 것 같달까. 그래서 실망했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 좋아졌다. 온전히 시인의 머릿속에서 나온 인물들과 이야기였다. 시인이 궁금하고, 알고 싶었다.

그렇게 교정지를 주고받으며 귤 한 바구니를 사면 몇 개 더 끼워 주는 덤처럼 질문을 주고받았다. 그 질문과 대답이 모두 시집에 관한 진지한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는 사이 시집이 나왔고, 시집이 나온 후로 시상식을 열었다. 2쇄를 찍었고, 나는 지금 편집 후기를 쓰고 있다. 문보영 시인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시인에 대한 궁금함은 여전하다. 앞으로 어떤 시를 쓸지, 그 시들이 『책기둥』에 수록된 50편과는 또 얼마나 다를지, 또 어떤 인물들과 어떤 이야기들이 튀어나올지…… 궁금해서 목이 빠져라 그녀의 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민음사 편집부 김유라

문보영
연령 15~60세 | 출간일 2017년 1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