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이지 않은 보편적 정신

오늘의젊은작가18_보편적정신_입체북

이 작품을 편집하며,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또 다시 읽으며 가졌던 의문은 실로 본질적인 것이었다. 그러니까, 대체 보편적 정신이란 게 뭐야? 소설이라는 게 어떤 답을 향한 빠른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라기보다는, 조금 돌아가는 길을 선호하는 장난꾸러기에 가까워서, 본질에 의문을 가지면 가질수록 답에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우리를 패배시킬 거라는 그 원칙은 뭔가?”라는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릴 수 있겠는가? 패배는 무엇이고 원칙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대체 누구를 뜻하는지? 소설의 첫 문장은 그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넌지시 티낸다.

“창업주의 유일한 손녀, 그러니까 붉은 페인트의 제조 비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알려진 다섯 명의 원로들 가운데 가장 나이 어린 그녀가 죽었을 때, 회사는 비상 경영 체제를 선언하고 사업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짧은 도입부에서 눈치를 챘을 독자는 많지 않겠지만, 이 소설은 이른바 ‘마술적 사실주의’의 계통에 서 있다. 서구 유럽과 영미권에서 구태여 한정지었던 소설의 한계를 온몸으로 부딪쳐 뭉개버렸던, 스페인어를 쓰는 상상기계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이사벨 아옌데…… 그리고 김솔. 이렇게 적으면 겸손하고 점잖은 작가는 화들짝 놀라고 말겠지만, 나는 그 뒤에 김솔의 이름을 붙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이 소설을 설명할 다른 도리가 없다.

한국인은커녕 한국어를 쓰는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한국 소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붉은 페인트의 비밀. 역사적으로 기록되지 아니한 역사적 순간들. 마르케스의 ‘마콘도’처럼 불가능성 속에 분명히 실존하는 ‘회사’. 이 모든 소설적 구성과 장치를 이미 만들어진 대가들의 작품에 대한 흉내 내기로 폄하할 필요는 없겠다. 무엇보다 『보편적 정신』은 반복되는 ‘회사’에 대한 서술과 ‘정신’에 대한 진술로 지금 여기의 현실을 일깨우니까. ‘보편적 정신’이 무엇인지 궁금한가? 소설에는 답이 있다. 『보편적 정신』을 읽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해답일지도.

 

 

편집자 서효인

김솔
출간일 2018년 1월 5일